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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Feb 23. 2022

믿는 마음,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하나님과의 동행


여덟 살에 처음으로 교회 문 앞에 섰다. 아랫집 사는 언니가 교회에서 선물을 준다고 해서  따라갔다. 시골집에서 2킬로 정도 되는 거리로, 들판을 지나 산 너머 읍내에 있었다. 늦을까 봐 달음박질해서 교회 문 앞에 다다랐는데 아랫집 언니가 문을 열고 혼자 들어가 버렸다. 당연히 내가 뒤따라 들어올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닫힌 문 앞에 뻘쭘하게 멈춰서 버렸다. 목조 건물 위로 올려다보이는 십자가바라보며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뒤돌아섰다. 다시 산 너머 들판을 지나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나는 열세 살까지 깡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산과 들 사이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논농사 밭농사로 먹고사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간혹 어느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굿판을 벌여 온 동네에 울려 퍼지기도 다. 우리 집은 근심거리가 있을 때면 할머니밥상 위에 물 한잔을 떠놓고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다. 어떤 날은 절에서 내려온 스님이 대문 앞에서 목탁을 두드렸다. 그러면  할머니가  쌀 한 바가지를 듬뿍 내어주며 두 손을 모았다. 그중에서 가장 의아했던 기억은 돼지우리 앞에서 내가 소원을  다. 시골 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 재래식 변소(화장실)였다. 저녁을 먹은 후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할머니 손을 붙잡고 플래시 빛에 의지해 마당 끝에 있는 변소에 다다랐다. 변소 옆에 붙은 돼지우리와 닭장에서 인기척을 느끼고는 꿀꿀 꿀꿀, 꼬꼬댁 꼬꼬꼬, 시끄럽게 울어댔다. 볼 일을 보고 나면 할머니가 돼지우리 앞에서 소원을 빌게 다. 한밤중에 변소(화장실) 오는  일이 없도록 소원을 빌라는 내용이었다.



할머니가 믿는 방식에는 딱히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귀동냥으로 들었거나 전해져 내려오는 걸 따라 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역학을 배워 마을 사람들 대소사에 재능을 기부했다. 결혼 날짜를 잡는다던가 아이 이름을 짓는다던가 산소(묘지) 터를 잡는다던가, 이러저러한 일도왔다. 아버지는 새해가 되면 책력이라는 사서 신년운세를 봐주셨다. '너는 인복이 있어서 잘  거야.' '너는 직업운이 있어.' 좋은 내용마음속 쏙쏙 담아두었다. 운세 보는 일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성인이 된 후로 철학관, 점집, 타로점 등 운세 보는 걸 취미처럼 즐겼다. 어느 해에는 사주를 잘 본다는 스님을 만나러 절에 갔다가 불교를 종교 삼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지나, 내 나이 마흔 되었을 때 하나님을 만났다. 자영업에 실패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였다. 불행이 예고 없이 찾아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듯, 믿음 또한 소리 없이 찾아와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었다. 친구의 지속적인 전도로 하나님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불현듯 어릴 적 아랫집 언니를 따라 달음박질해 달려갔던 교회가 떠올랐다. 교회 앞에 멈춰 서 있던 나의 내면 아이도 비로소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메마른 내  영혼의 갈급함이 하나님 사랑으로 조금씩 채워졌다. 물론 갈등의 순간들도 많았다. 친정 부모님과 위아래층에 살던 때라 종교적인 부침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럴 때마다 기도와 찬양 음악에 의지하며 극복해나갔다. 믿음 안에서 내 삶이 서서히 상향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불행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회복되어 온 삶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때론 극과 극을 오가며 널뛰기를 하 인생이. 삶은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다.  의지를 붙들달려왔예측불허의 백기를 들었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길, 내 의지만 믿고  않기로 했다.  의지를 내려놓는 일이 뻘쭘했지만 하나님의 세계로 내딛으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믿는 마음,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이런 걸까. 믿음이 수록 내 안에 꿈틀대던 의지가 사그라들며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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