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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Feb 16. 2022

커피 향기에 잠 못 드는 밤

나는 커피 향기가 좋다


맛없는 커피 한 잔이,
커피가 아예 없는 거보다 더 낫다
_데이비드 린치 감독



나는 커피를 즐겨마시지 않는다.

집에 커피가 없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남편과 손님을 위해 커피를 준비해둔다. 녹차, 루이보스, 얼그레이, 허브티, 콤부차, 코코아 등 음료 외에도 4종의 커피가 있다. 고객 선물용으로 낱개 포장해서 우편 발송할 때 넣어 보낸다. 집에 손님이 오면 '뭐 마실래요?'라고 자연스레 묻는다. 우리 집 거실은 종종 홈카페가 된다



내 주변에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말이면 남편이 커피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여 아메리카노를 타마신다. 커피 향기는 왜 그리 감미로운지. 나는 커피 향기를 좋아하는 걸까? 향기를 이기지 못하는 날은 아메리카노 티백 반포를 타서 보리차처럼 마신다. 하지만 빈속에 마시지 않는다. 뭐든 먹고 난 후에 마신다. 오후 서너 시 이전에 마시려고 노력한다. 한 잔 이내로 마신다. 그래야 잠 못 드는 밤을 면할 수 있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데도 

이런 원칙이 만들어진 이유는 뭘까. 

커피와 마주할 일이 그만큼 많아졌는 거다. 바깥세상에서 카페와 커피는 소통의 도구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삶을 공유하는 매개체다. 집 밖에서 혼자만의 공간을 허락하는 향기로운 깃발이다. 오늘 문득 깨달았다. 나는 커피 맛이 아닌 커피 향기를 좋아하는 거였다. 그러니 커피숍에 들어가면 메뉴 앞에서 선택 장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커피 향기만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라떼를 마실까?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허브티를 마실까? 뜨아를 마실까? 아아를 마실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제는 바깥세상의 카페가 아닌 친구 집에 가는 길이었다. 마침 새로 생긴 김밥집이 보여 치즈김밥 두 줄을 사 갔다. "뭐 마실래?" 친구가 묻길래 "원두커피 연하게 내려줘"라고 답했다. 언젠가 이 친구가 "김밥엔 커피지"라고 웃으며 말하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하지만 물 대신 원두커피를 두 잔이나 마신 건 용량 초과였다.



어젯밤 원두커피 두 잔에 밤새 뒤척였다.

아, 커피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이라니. 숙면을 취하지 못해 몸은 괴로운데, 마음은 커피 향기의 흔적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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