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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김 Nov 22. 2016

동남아여행의 裏面

20대 초반에 필리핀을 처음으로 동남아여행에 나섰다. 더운나라라는 인식이 강했고 해가 쨍쨍한데도 비를 쏟아부어 버리는 '스콜'은 내가 동남아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필리핀에서는 큰 쇼핑몰마다 총을 찬 경찰이 있었고 들어갈 때 마다 짐검사를 했다. 지금의 유럽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내가 묵는 호텔에서 보이는 뷰는 멋진 카지노들과 더 좋은 호텔로 화려했었다. 산미구엘light를 마시며 호핑투어를 하며 마사지를 받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늘 전용버스안과 대형쇼핑몰은 시원했고 안락했다.


그게 내 첫 동남아여행이었다.


20대중반 라오스를 갔을 때, 자유여행으로 함께 여행을 갔다. 숙소도 우리끼리 정하고 일정도 우리끼리 정했다. 패키지에서 한단계 발전한 순간이었다. 방비엔의 리조트에서의 첫날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산책하고 있었다. 하우스키퍼로 보이는 남자는 맨발로 다니고 있었고 나를 보자 엎드려 인사를 했다. 원래 이런 곳인가?

나도 갑작스레 맞절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내 라오스의 기억이다. 그리고 마지막날 루앙프라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마음내키는 대로 달렸다. 2시간쯔음 시골길에서 쓰레기차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덥기도 더웠고 짜증도 날대로 난 상황. 일단 기다리고 있는데 큰 쓰레기차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4명의 가족.


아버지와 엄마는 열심히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고 3살쯤 되어보이는 남매는 놀이터 삼아 놀고 있었다. 나는 내평생 그렇게 해맑은 눈과 즐거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렇게 한참을 울고만 있었고 힘없이 패달을 저어 다시 호화로운 호텔로 돌아왔었다.


동남아는 휴양지, 리조트, 풀빌라, 카지노등등 많은사람들에게 이미지는 이렇다.

나에게 동남아는 까만발, 마사지사, 파리날리는데서의 식사, 쓰레기차다.


나는 가진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가족이 다 건강하고 나는 팔다리도 다 있고 번듯한 직장도 있다. 삼시세끼 걱정해 본적도 없고 대학교까지 공부하는데도 전혀 문제없이 다녔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소년소녀 가장이 대가족을 이끌어야하고 책을 보기위해 몇십킬로를 걸어야하고 팔다리 없는사람도 많고 직장은 마지못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늘 먹는것을 걱정해야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여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힘든 사람들이 많다. 대학생 때 부산에 서면 롯데백화점에서 5분거리에 있는 동네에 연탄배달을 간적이 있다. 땀을 닦으려 고개를 들면 롯데백화점이 보이는곳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만약 다시 동남아에 간다면 봉사를 목적으로 가고 싶다. 나의 작은 도움하나에 돌아올 그 맑은 눈과 웃음을 생각하니 아련하다. 그들의 맑은눈에 어울리는 미소를 짓고 싶게 하고싶다. 그들의 맑은눈에 슬픔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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