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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김 Sep 01. 2020

마추픽추의 기억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이 기나긴 코로나 시대 덕에 생각이 많아졌다. 여행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리라. 당장의 생계가 급함도 그러려니와 늘 이곳저곳 다니다가 집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비행기에 몸을 싣을 때면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머무를 때면 비행기의 탈 때의 설렘이 그립다. 늘 모순 속에서 산다.


침대에 누워 사진을 뒤적거리던 중 마추픽추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았다. 유럽 인솔을 3년 가까이하고 오래되진 않았지만 늘 같은 공간 속에 점점 갇히던 찰나 좋은 기회로 남미에 가게 되었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그 사진 한 장에 나는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 남미 여행은 유럽여행에 비해 고객층의 연령대가 높았다. 보통 은퇴하신 분들이 많이 신청하였고 내가 이끄는 팀들도 마찬가지였다. 쿠스코부터 시작해서 고산병은 그분들을 괴롭혔고 여행 내내 코카잎을 질겅거리며 씹었었다. 마추픽추로 가는 날 우리의 목적지는 아구아깔리안떼스다. 그곳은 마추픽추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였고 쿠스코보다 시골이지만 가는 길도 좋고 해발 또한 낮아서 잠시 머물기엔 충분했다.

이 작은 시골마을엔 마추픽추의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마추픽추의 오늘을 보고 내려온 사람들로 뒤섞여 있었다. 호텔 뒤 작은 식당에서 쭈그려 앉아 닭죽 한 그릇을 먹고 '잉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본체 마사지를 좋아하기도 하고 잉카 마사지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2만 원에 1시간. 가격도 아주 맘에 들었다. 잉카인들은 어떤 마사지를 받았을까. 보통의 마사지와는 똑같지만 핫스톤 마사지가 주를 이룬다. 그냥 핫스톤이 아니고 거의 달궈진 돌을 가지고 몸을 문지른다. 잉카인들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후끈한 등을 식히며 찾은 펍에서는 마추픽추 칵테일이 팔고 있었다. 주문을 하니 형형색색으로 층이 쌓인 칵테일이 나온다. 첫맛은 달콤하고 끝 맛은 여운이 감도는 맛이다. 왜 이 칵테일 이름이 마추픽추인지는 다녀와서 알게 되었다.

아구아깔리안떼스 마을의 모습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는 그 이른 새벽부터 줄이 길게 서있었고 그만큼의 버스로 길에 나열되어 있었다. 줄 서 있는 옆으로는 간단한 샌드위치가 팔고 있어 아침을 먹기에는 충분했다. 마추픽추의 입장은 오전과 오후로 나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전 시간대를 찾는다. 그 이유는 올라가 보면 안다.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는 전속력으로 올랐다. 잠시 멈추는가 싶으면 아찔한 낭떠러지 옆을 다른 버스가 스쳐 지나간다. 다시금 헛바퀴를 돌리며 올라가니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했다. 마추픽추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을뿐더러 음식물도 제한되므로 화장실 이용과 아침을 해결했다. 2500m 가까이 되는 고산지대는 안개로 꿉꿉했고 싸온 샌드위치는 흐물 했다. 식사하는 곳 옆에 마추픽추를 기념하는 여권 도장이 있는데 이건 본인 여권에 절대 찍어선 안된다. 나라마다 다르긴 하나 인증되지 않은 도장이 있을 시 입국이 거부될 수 있다. 여권과 입장권을 확인한 후 미지의 도시로 드디어 발을 내딛는다.


영어가이드를 따라 마추픽추의 곳곳을 보며 설명을 듣는다. 영어가 짧은 이유에서도 있었겠지만 이런 돌만 가득한 유적지엔 원래 관심이 별로 없었다. 카메라를 연신 들이대며 고객분들의 니즈를 충족시켜드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개가 꼈다가 사라짐을 반복하며 관람에 계속 방해를 해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쿠스코에서도 보았던 돌벽이 눈에 띄었다. 설명에 따르면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당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 뛰어난 운전실력을 가진 버스기사가 없었을 텐데 이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들고 오며 어떻게 반듯하게 깎아냈을지도 궁금했다.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하니 외계인이 와서 만들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참나... 어이가 없..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돌 벽을 이후로 궁금함과 대단함과 신기함이 동시에 밀려왔었다. 그 와중에 더 눈길을 잡는 것이 있었으니

마추픽추를 집 삼아 여유롭게 노니는 라마였다. 쿠스코부터 계속 봐왔지만 쿠스코 시장에 묶여 사진의 배경이 되어주던 라마와 시골 상점 옆에 묶여서 호객을 하던 라마와는 비교가 안되게 행복해 보였다. 라마의 존재의 이유는 제초작업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우렁이 농법처럼 친환경적인 요소라 생각 들었지만 내 생각엔 관광객을 혹하게 하는 요소가 더 클 거라 생각 들었다.

투어를 마치고 2시간가량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전망대도 가보고 다시 한 바퀴 돌아보며 미처 놓친 포인트들을 둘러보는 시간이었다. 자유시간을 주고 난 뒤엔 인솔자에서 여행자로 변신한다. 가방끈과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마추픽추 전망대로 올랐다. 혼자 이곳에 왔다면 오기 전에 와이나 픽추 등정을 위한 신청을 했겠지만 그러지 못함이 아쉬웠다. 더 아쉬운 것은 전망대에 올라가는 내내 안개가 자욱했고 그 덕에 온몸은 땀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들로 흠뻑 젖었다. 전망대에 다다를 때쯤 외국인들도 나와 같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간단한 몇 마디를 나누고 잠시 땀을 식히고 있는데 골짜기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정말 거짓말처럼 안개는 바람을 타고 1~2분 만에 골짜기를 타고 내려갔고 그 사이로 마추픽추의 모습이 드러났다.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를 질렀다. 부둥켜안을 사람이 없던 나는 멍하니 그곳을 내려다만 보고 있었다. 수백 년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던 곳을 발견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얀 안개가 걷히고 그 위대한 역사를 만남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놀래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가슴 깊이 뭔가 차오르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스페인의 침략에 의해 이곳으로 도망 왔다는 설,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 외계인이 만들어졌다는 설은 중요치 않았고 내 앞에 마추픽추가 있다는 것만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사진 몇 장 찍고는 가슴속 깊이 담아두었다. 자연의 위대함과 문명의 담대함에 한없이 공손해졌다. 

울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손님들을 만났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나보다 훨씬 인생선배이신 분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들은 더 깊은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 놓은 듯했다. 우리는 비탈지고 구불거리는 내리막길에서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다시 마을로 내려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안개가 자욱했다.


마치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꿈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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