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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Sep 09. 2016

2. 성장과 방황 : <호밀밭의 파수꾼>

어른들이야말로 방황을 해야하는 존재이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감을 느껶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제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같겠지만 말이야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보면 기분이 좋다. 내가 은근히 낯을 많이 가려서 인사를 잘 못하는데 그 아이는 나를 보고 언제나 활짝 웃으면서 '안녕하세요'를 외친다. 나도 그 아이에게 '어 그래 안녕'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 아이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나도 저 아이처럼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랑 친했던 두 친구와 샤브샤브 무한리필집에 한 번은 간 적이 있었다. 식성이 넘쳐나던 나이였기 때문에 셋이서 정말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교복을 입고 있던 세 남자들은 밥을 다 먹고 배부른 배를 뚜들기며 잡담을 했었다. 그냥 밥만 먹어도 행복했고 친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우리는 점점 머리가 명석하게 돌아가기 시작하고 관계에 있어도 이득을 따지기 시작한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순수한 것은 바보로 취급당하며 성인들에게 '너 순수하네'라는 말의 뉘양스는 약간 비꼬는 듯한 느낌이 담겨 있다. 가끔 나는 내가 너무나 머리로 계산을 할 때 내 자신이 미워질 때 책 꽂이에서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꺼내든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콜피드 홀든은 순수한 소년이다. 홀든은 미국의 중산층으로 살며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순수한 눈을 괴롭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른들의 세상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어른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가면을 쓰고 허영심 많은 어른들에 대해 분노감을 가진다. 홀든이 경멸스럽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은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살아내고 있다. 우리는 대학에 가면 선배들과 교수님들에게 언제나 호의적으로 대한다. 회사에 가면 상사와 회사를 위해 가식의 가면을 쓴다. 만약에 우리가 순진하고 아무 거짓없이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행동을 한다면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 찍히는 것이 두려운 것임을 알고 모두가 가면을 쓴다. 그것이 바로 사회생활이라는 이름하에 말이다. 대학만 가도 인간관계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다 모두가 나이를 먹었고 사회의 시선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때문에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순수한 홀든의 눈에는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모습이 비열하고 치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순수성을 잃어버렸으니까 말이다.


학교에서 홀든은 자신의 친구들 마져 순수성을 상실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학교를 나오고 집을 가출해 버린다. 그는 어느 호텔에 묵는데 그곳에서 창녀를 부른다. 나는 이 부분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여기서 홀든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술을 먹고 담배를 피더라도 그가 순수하다는 것을 느꼈다. 홀든은 창녀를 부른 이후 그녀와 관계를 가지지 않고 그녀와 대화를 한다. 서로의 모습은 마치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창녀의 나이는 짐작하건데 홀든과 동갑 아니면 홀든보다 조금 위일 것이다. 여하튼, 두 남녀는 반대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홀든은 순수한 청년이지만 창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판다. 창녀라는 존재는 가식의 존재이다. 창녀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의 성을 팔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미지를 파는 존재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창녀들은 드레스를 입고 찐한 화장을 하고 다닌다. 즉,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파는 것이다. 창녀를 사는 남자들은 창녀들을 인격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 단지, 물건 취급을 할 뿐이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홀든은 그녀의 건강을 걱정해준다. 서로 완전히 대칭되는 속성을 가진 홀든과 창녀가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세상의 끝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홀든의 순수함은 사회에 적합하지 않으며 나이를 먹으면서 버려야할 속성이었다. 창녀의 경우도 인격적 대우를 받지도 못하고 세상의 변방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마 홀든은 자신과 완전히 대칭이 되지만 세상의 변두리에 서로 서있다는 그 동질감에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었던 것 같다.



세상의 뒷거리를 전전하며 홀든은 홀로 방황을 하며 타락해 가기 시작한다. 그는 어른들의 세상이 추악하고 자신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다. 그는 세상을 떠나서 낙원으로 떠나려고 마음을 먹는다. 그는 낙원으로 떠나기전 자신이 많이 사랑하는 여동생 피비를 보러간다. 피비에게 자신이 낙원으로 떠난다니까 피비는 홀든과 함께 떠나겠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홀든은 역에서 피비를 놓고 떠나려고 하지만 피비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 그의 결심을 접어 버린다. 왜냐하면 그는 피비의 순수성을 지켜줄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홀든은 피비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버린다. 가끔 만약에 홀든이 피비를 떠나서 낙원으로 여행을 하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상상을 해본다. 그냥 홀든이 낙원으로 간다해도 그가 말한 호밀밭은 이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에 어떤 곳에 정착한다 한들 지금 홀든이 겪고 있는 문제나 그곳에서의 문제나 비슷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홀든은 낙원에 도착했다. 바로 피비가 존재하는 이 세상이 그가 꿈에도 그리던 바로 호밀밭이었던 것이다. 나는 피비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자신이 그렇게도 바라던 호밀밭이라는 것을 깨달은 홀든이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이상향을 찾았다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 거 같다.


나는 홀든의 작은 모험을 보면서 홀로 생각에 잠긴다. 홀든의 방황은 어른이 된 우리가 한 번씩은 고민을 해봄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가식적인 사회 속에서 괴로워하고 사회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워 한다. 그 고통을 술과 섹스와 도박과 같이 쾌락적인 것으로 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홀든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어른들은 홀든처럼 방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와 타락한 나 사이를 오가며 어른들은 방황을 한다. 그 방황의 시간이 지겹고 괴롭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방황의 시기를 쾌락으로 눈을 가려 버린다. 그러나 방황은 인간이라면 한 번은 돌파해나가야할 문이다. 방황하는 시기에 가족도,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그 고민을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방황은 어찌보면 뼈를 깎는 아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려워하면 안 된다. 다만, 방황과 고민을 할 때, 삶에 타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본분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해야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홀든처럼 방황과 고민의 괴물에 먹혀서 자신의 삶을 못 돌볼 때가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젊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고민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남는 시간에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처절하게 찾아라, 그리고 처절하게 답을 갈구해라. 그러면 어느 순간 당신은 투명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투명한 어른이 되어 거울을 바라 볼 때, 당신을 향해 나이든 홀든이 웃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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