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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Oct 05. 2016

<안티고네> 소포클래스

나는 사회에 저항하고 죽었다 그리고 나는 영웅이 되었다.


<오이디푸스>에 이어지는 작품이 <안티고네>이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여동생 이스메네와 아버지 오이디푸스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난 이후 오이디푸스가 죽자 다시 왕국으로 돌아온다. 그때, 왕위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녀의 오빠들인 에케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왕위쟁탈전을 치룬다. 이때 폴뤼네이케스는 외국군을 이끌고와 싸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왕자는 죽게 된다. 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는 장사를 잘 치뤄주라고 하지만 외국군을 불렀던 폴뤼네이케스는 무덤에 묻지말라고 한다. 서사에서는 자신의 가족인 폴뤼네이케스를 장사지내려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이스메네의 대립이 프롤로그의 주된 내용이다. <오이디푸스>에서도 보았듯이 이는 나중에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을 보여준다. 이스메네는 매우 현실적인 여성으로 나온다. 그녀는 처음에 현실적으로 남성의 세계에서 여성이 대항하기가 힘들다고 판단을 했었고 더 나아가 사회 속의 권력과 싸워봤자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안티고네는 분노를 한다. 안티고네의 입장에서 이스메네의 행동은 너무나 현실타협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안티고네가 오빠의 매장에 대해서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죽은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이렇게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더 이상 돌아오질 못할 강을 건너고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난다. 그 다음 코러스가 등장하면서 1막이 시작된다. 코러스에서는 그동안의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보여준다. 



권력가이자 남성인 크레온과 사회적 약자이자 여성인 안티고네의 갈등 


1막에서는 파수꾼이 등장해서 누군가가 폴뤼네이케스를 매장했다고 한다. 크레온은 반역자를 누가 매장했냐고 분노하고 파수꾼을 위협하여 범인을 잡아오라고 한다. 그리고 2막이 시작이 되는데 코러스들이 부르는 제1정립가는 <인간 찬양의 합창>이라고 유명하다. 아마, 이 노래는 안티고네를 지지하는 노래이다. 땅의 법과 신들에게 맹세하는 것을 지킨다는 것은 안티고네가 신의 뜻을 따르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크레온은 지금 시대에서 보면 매우 합리적인 인물이다. 비극을 읽다보면 도시라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도시는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폴리스라는 곳은 민주주의를 행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도덕시간에 보면 언제나 민주주의라고 하여서 요즘의 민주주의와 비슷하다고 배우지만 차이점이 존재한다.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자들만 참여를 하였고 각각의 개성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각각의 개성이 필요 없는 것은 일종에 폴리스가 공동체주의였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러가면 전우애가 생기고 매일 광장에 모여서 민주주의를 이끌어간다. 그들의 삶은 정치와 매우 밀접했다. 그리하여 폴리스에서 추방당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공동체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즉, 폴리스는 공적인 영역의 속성이 강한 곳이다. 크레온은 국법(폴리스의 법)을 내세우며 폴리스의 법에 따르면 배신자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그래도 자신의 가족이고 하늘의 섭리가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반대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을 조금 확장시키면 크레온은 인간의 법을 내세우는 존재이고 안티고네는 하늘의 법이자 신의 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들의 대립은 신들의 대립이기도 한데 크레온은 자신을 이끌어주는 제우스 신을 자신의 신으로 모신다면 안티고네는 죽는 것은 이득이라고 생각하며 지옥의 왕 하데스와 연관이 되어 있다. 즉,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은 다면적이다.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의 갈등이고, 인간의 법과 신의 법이 갈등을 빚으며 마지막으로 제우스와 하데스의 갈등이기도 하다.


신의 법, 가족의 윤리, 정의 VS 인간의 법, 국가의 법, 악법


국가는 법을 만든다. 그러나 국가가 모두 만드는 법이라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즉, 국가가 만든 법이 정의와 동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법이 정의가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어 버린다. 만약에 정말로 신의 아들이 공평하게 통치를 하고 법을 만든다면 그것은 정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선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크레온은 독재자가 되려고 했으며 그가 법을 만든다. 그러나 크레온은 선한 왕도 아니며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법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법이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안티고네>는 법 위에 정의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크레온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절대적인 권위에 놓여있으면서 자신의 힘으로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폴리스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하늘의 뜻이나 윤리 같은 것들을 무시해 버린다. 그것은 그의 오만함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 하이몬의 말도 씹어 버리며 합리화를 시키지만 안티고네의 죽음을 알고 하이몬은 자살을 하고 하이몬의 죽음을 보고 크레온의 아내마져 죽어 버린다. 그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고 하지만 그는 너무 그것을 늦게 깨달았다. 



크레온이 완전히 삽질을 해서 안티고네가 멋져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안티고네 또한 오만함을 가지고 있는 소녀이다. 그녀는 신의 법이자 대의라는 명분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행한다. 이스메네에게 있어서도 냉철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는다. 그녀는 이상을 위해서 현실의 그 어떤 것도 무시해 버린다. 고집이 있다는 것이다. 크레온이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만으로 파멸했다면 안티고네는 자신의 신념과 윤리를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 추락했다가 영웅이 되어 버린다.


안티고네 : 나의 가장 고통스러운 근심을 그대가 건드리셨군요. 아버지에 대한 거듭 돌아오는 괴로움을 그리고 우리들, 이름난 랍다코스 자손들 모두의 운명에 대한 괴로움을. 아아, 어머니의 침상에서 비롯된 재난이여, 불운한 어머니가 같은 혈족인 내 아버지와 나눈 잠자리여, 이러한 이들에게서 불행한 내가 태어났도다! 함께 살기 위해 그들을 향하여, 저주받은 나는 결혼도 못한 채 떠나갑니다. 아아, 상서롭지 않은 결혼을 했던 오라버니, 그대는 죽어서, 아직 살아 있는 나를 쓰러뜨렸군요. (오이디푸스왕 민음사 170-171)


여기서 그녀가 자살을 하는데 안티고네의 모습에서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자신은 저주받은 핏줄이지만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받으들이겠다는 그 담담함이 그녀를 명예롭게 만든다. 그녀는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 저주받은 존재였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영웅이 되어 버린다. 그녀는 그녀의 신념을 지키는 것 그것은 바로 신의 뜻과 법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명예로운 영웅이 되었다. 그녀가 죽음으로 그녀는 영원한 영웅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안티고네는 왜 오빠의 장례식에 집착을 했을까?


안티고네는 그녀의 대사를 통해서 이렇게 밝힌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나 아들이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자신은 그들을 위해서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남편은 다시 결혼을 하면 되는 것고 아들은 또 낳으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라버니는 자신의 부모가 낳았기 때문에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부모는 이미 죽어있기 때문에 또 다른 오라버니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종에 그녀의 오라버니는 안티고네의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녀의 족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오라버니를 욕보이고 장례식을 치뤄주지 않는다는 것은 안티고네가 딛고 있는 정체성의 땅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티고네는 매우 오만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것, 신의 법을 따르는 것은 그녀가 그녀의 오빠의 장례식에 집착을 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정항할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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