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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Oct 11. 2016

인형의 집 : 여자는 섹스 인형이 아니다.

<인형의 집>과 <맨박스>를 읽고 남녀평등에 대해 생각해 보다.

노라 : 토르발, 잘 들어요.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아내가 남편의 집을 떠나면 남편에게는 그 여자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들었어요. 어쨌건 나는 당신을 모든 책임에 서 풀어 줄게요. 아무 데에도 매여 있다고 느낄 필요 없어요. 내가 아무 데에도 메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에요. 양쪽 모두가 온전히 자유로워야 해요. 봐요, 여기 당신 반지가 있어요. 내 반지를 줘요. (인형의 집, 민음사, p123)



헬메르 토브발(노라의 남편)과 노라의 삶은 달란한 인형의 집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중산층의 부부와 아이들과의 즐거운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과거에 노라가 헬메르를 위해, 돈을 꾸게 되었다. 그는 닐스 크로그스타드를 통해서 돈을 빌렸는데 그 당시에는 남자의 허락이 없으면 돈을 빌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아버지의 싸인을 위조해서 돈을 빌리고 그 돈을 갚는데 성공한다.  헬메르는 곧 은행장에 내정되어 있었는데 노라는 자신의 친구 린데 부인을 채용해 달라고 한다. 헬메르는 혼쾌히 그것을 허락해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헬메르의 부하 직원이었던 크로그스타드의 자리였다. 헬메르는 크로그스타드를 해고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익에 눈이 멀어 도덕적으로 비행을 했기 때문이다. 크로스그타드는 이 상황을 알고 노라에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달라고 협박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했던 과거의 죄(아버지의 싸인을 위조한 것은 그 당시 중범죄였음)를 밝히겠다고 한다. 노라는 헬메르에게 그의 부하직원을 해고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헬메르는 거부한다. 그리하여 나중에 헬메르는 노라가 했던 범죄를 알고 그녀에게 분노를 표한다. 그러나 크로그스타드는 린데 부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덮자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헬메르는 다시 기분이 좋아하지만 그의 사랑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노라는 집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백치미의 노라가 어떻게 집을 박차고 나왔을까?


<인형의 집>을 보면 노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중산층 마님으로 등장한다. 헬메르는 노라에게 귀여운 새나, 다람쥐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녀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는 린데 부인이었다. 린데 부인은 노라의 친구지만 극에서는 노라보다 매우 노안으로 묘사된다. 린데 부인은 남편과 사별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자신이 일을 하고 억센 아줌마로 변신하게 된다. 린데 부인의 모습은 극이 진행될 수록 노라와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의 보호를 살면서 남자와 가족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버리는 노라와는 달리 린데 부인은 남자들의 세상 앞에서 홀로 서서 그녀 홀로 자신을 지키고 남자들의 세상 속에서 살기위해서 몸부림치는 여인으로 나온다. 오히려 린데 부인이 주인공 같이 보이는데 노라를 협박하는 크로그스타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를 이해해주는 것도 린데 부인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도덕적 타락을 했던 남자를 이해해주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크로그스타드는 마음을 바꾸게 된다. 여하튼 린데 부인은 노라가 따라야 할 모델이기도 하다. 린데 부인은 오히려 노라에게 거짓된 과거를 맞딱드리게 만든다. 남편이 자신을 소유물 것을 깨달은 노라는 남편의 세계를 박차고 나온다. 그녀는 이제 남자와 가족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보다 세상에 홀로 서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노라라는 캐릭터가 재밌는 점이 있다. 그것은 노라가 갑자기 바뀐다는 것이다. 즉, 지금 그녀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여전히 있다. 그런데 이런 여성이 한 번에 바뀌다니... 그런데 이것은 입센이 노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노라에게는 임기웅변의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즉, 노라가 집을 박차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과 세상을 살 때 지식은 없지만 사태에 대응하는 임기웅변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녀가 이성적이었고 그랬다면 그녀는 인형의 집에 계속 머무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형의 집>의 남자들 헬미르, 크로그스타드 그리고 랑크 박사


헬메르 : 당신은 나의 행복을 모두 부서뜨렸어. 나의 모든 미래를 당신이 망가뜨렸지.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야. 나는 양심이라고는 없는 사람의 손안에 들어 있어. 그는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나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지. 나는 이제 아무 소리도 못해. 나는 이제 이렇게 무너져서, 경박한 여자 때문에 망해야 해!


<인형의 집>에서 헬메르와 크로그스타드는 랑크 박사와 대비를 이룬다. 헬메르의 경우 변호사에서 이제는 은행장이 되는 남자이다. 그는 남자의 세상에서 자신의 명예를 중시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남성이다. 그런데 크로그스타드도 헬메르와 비슷한 남성이다. 그러나 과거에 부도덕한 대출을 해주어 헬메르는 크로그스타드를 경멸하고 그를 잘라 버린다. 그런데 크로그스타드가 완전히 악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또한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노라에게 협박을 했던 것이다. 헬메르는 노라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겼다면 크로그스타드는 노라를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크로그스타드는 린데 부인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마음으로 대화하자 사람이 바뀌게 된다. 크로그스타드도 노라를 협박하고 괴롭게 했지만 그 또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즉, 헬메르나 크로그스타드는 겉으로는 멀정해도 안은 사회 속에서 썩어들어가는 인물들이다. 그에 비해 랑크 박사는 의사이자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물이다. 그가 헬메르와 크로그스타드와 대치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병이다. 랑크 박사는 몸이 아파서 죽어가고 있고 극의 말미에서 죽을 것을 예고한다. 그이베해 헬메르나 크로그스타드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인형의 집에 있는 인형들이다.


노라 : 토르발, 잘 들어요.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아내가 남편의 집을 떠나면 남편에게는 그 여자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들었어요. 어쨌건 나는 당신을 모든 책임에 서 풀어 줄게요. 아무 데에도 매여 있다고 느낄 필요 없어요. 내가 아무 데에도 메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에요. 양쪽 모두가 온전히 자유로워야 해요. 봐요, 여기 당신 반지가 있어요. 내 반지를 줘요. (인형의 집, 민음사, p123)


<인형의 집>에서 작품을 겉으로 봤을 때는 여자만이 사회 속에서 인형처럼 보인다. 노라는 남자의 세계를 넘어 여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그런데 위의 노라의 대사처럼 이 사회에서 인형은 노라 뿐만 아니라 헬메르 또한 인형의 집의 인형이다. <맨박스>를 쓴 토니 포터는 맨박스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맨박스는 남자들이 맨박스라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남성중심주의를 학습하고 자신도 모르게 여성을 비인격화할 뿐만 아니라 여성 학대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성폭력을 여자들의 문제라고 보며 남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나, 이런 생각이 깨지지 않는 이유는 폭력을 가한 남자를 탓하고 그를 비난함으로 폭력을 가하지 않은 남자들은 그들과 거리를 두며 그들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헬메르를 보면 그는 자신의 평판과 체면을 중시하는데 그 체면은 남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기싸움이다. 남자들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평판을 중시한 나머지 남자들은 여자들이 당하는 괴로움이나 고초에 대해서는 방관한다. <맨박스>를 쓴 토니 포터는 그가 남녀평등을 중시하고 그가 왜 이렇게 울부짖는지를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가 할렘에 살 때 그의 친구들은 한 여성을 겁탈했다. 포터에게는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그 당시 자신의 평판을 중시한 나머지 그녀를 방치했었다. 그 사건이 포터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맨박스의 십계명


1) 남자는 울지 않는다.

2) 남자는 분노 이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3) 남자는 쫄지 않는다.

4) 남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5) 남자는 약한 것들을 보호한다.

6)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

7) 남자는 여자처럼 울지 않는다.

8) 남자는 게이처럼 굴지 않는다.

9) 남자는 여자를 소유한다.

10)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남성들은 헬메르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여자친구, 부인, 여자 연예인, 모델들을 모두 성적 대상화를 시킨다. 그리하여 그녀들의 성적인 매력과 섹스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성적 대상화는 여성을 자신들과 다른 급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들이 감정을 조절하고 잘 울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남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감정을 표출하고 우는 것은 지양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양하는 것을 여자들이 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여성을 열등하다고 본다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남자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를 하여 그녀들이 옷을 잘 입고, 꾸미고, 화장을 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런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서 여자들이 저항한다면 어떨까? 이런 극단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꾸미지 않고 사는 여자들은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지만 그 만큼의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 그 여자는 결혼하기도 힘들어지고 직업을 가지기도 힘들 것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을 재생산한다. 남자들은 맨박스를 통해 남성다움을 익혔고 그것이 재학습되는 것은 같은 교육을 받았던 남성들의 대화 속에서 여자를 계속적으로 성적 대상화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계속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오히려 남자들의 반발심을 야기시킨다. 정말로 남녀가 평등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이 마주하기 싫은 맨박스부터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들을 하나의 인격체이고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남자들은 여성을 무시하는 남성이 있다면 그에게 그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 남자는 눈물을 흘릴줄도 알아야 하고 감정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포터가 말하는 남녀평등 운동의 시작이다.


솔직히, 나는 페미니즘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과 <맨박스>를 읽고 내린 결론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적어도 하나의 인격으로 대화와 갈등을 하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약자들까지 품을 수 있는 운동이다. 나는 <맨박스>를 읽으면서 포터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만약에 당신의 딸이 남자들에게 '따먹고 싶다' '아다를 뚫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분노하지 않겠는가? 당신의 딸에게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남녀평등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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