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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Oct 17. 2016

셰익스피어가 사랑한 비극3 : 리어왕

분노의 왕 리어... 비극에 놓이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리어왕>은 그가 권력에 앉아 있었고 그 권좌와 함께 그의 독선적인 행동과 분노로 인하여 그는 비극을 맞게 된다. 그의 독선이 나왔던 것은 그가 늙도록 그는 왕궁에서 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는 평안한 삶을 살고 있었다. 니이가 들면서 그의 눈과 귀는 점점 어두워지고 그에게 남은 것은 권력과 분노 뿐이었다. 리어왕은 그의 왕권에 취해서 이성적이고 계략적인 인물들에게 버림받게 되는 것이다.


궁정의 삶 그 권력이 사람의 눈을 멀게한다.


코딜리어 : 안타깝게도,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입까지 끌어낼 수 없습니다. 폐하를 사랑합니다만 자식된 도리에 따르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리어왕, 펭귄북스 p16)

리어왕 : 짐의 성격으로나 짐의 지위로 보아 결코 참을 수 없다. 짐의 권능을 발휘하여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리어왕, 팽귄북스, p21)


리어왕은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의 땅을 분할하여 자신의 딸들에게 분배해주려고 한다. 땅을 분배해줄 때 조건은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라는 아첨을 하라는 것이었다. 첫째 딸 거니릴과 둘 째 딸 리건은 리어왕에게 아첨을 한다. 왕은 그 말에 기뻐하고 그녀들에게 땅을 허락한다. 마지막으로 리어왕이 제일 사랑했던 딸 코딜리어는 아첨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입을 놀리지 않는다. 그러하자 리어왕은 갑자기 분노를 하게 되고 그는 코딜리어를 자신의 가족에서 인연을 끊겠다고 하고 추방해 버린다. 그리하여 그녀는 프랑스 국왕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충신인 켄트도 바른 말을 하다가 추방되어 버린다. 여기서 배경이 되는 왕정이라는 사회는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이다. 권력을 가지고 싶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진심은 아니나 거짓을 고하고 오히려 켄트나 코딜리어처럼 진실하게 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 궁정에서 세익스피어는 주제를 한 번 더 주제하기 위해서인지 또 다른 삽화를 넣는다. 그것은 귀족들의 이야기로 글로스터 집안의 이야기다. 글로스터는 적자인 에드거가 있고, 서자인 에드거가 있다. 에드거는 자신이 서자라는 것에 분노를 하게 되고 계략을 펼쳐서 적자인 에드거를 쫓아내고 글로스터를 거짓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처럼 리어왕이나 글로스터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에 눈이 멀어 거짓에 속아 넘어간다.



광야 속에서 광대와 대화하고 깨달음을 얻는 리어왕


리어왕 : 아니 미쳤구나!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눈이 없어도 볼 수 있다. 네 눈으로만 보아라. 저기 저 재판관이 저 좀도둑에게 호통치는 것을 보아라. 네 귀로 잘 들어라-자리를 얼렁뚱땅 바꾸는 거다. 그러면 누가 재판괸이고 누가 도둑이더냐? 농부의 개가 거지에게 짖어대는 것을 본적이 있느냐?


글로스터 : 예, 폐하.


리어왕 : 그 버러지 같은 인간이 개한테 쫓겨 달아는 것도? 거기에서 네 권위의 위대한 이미지를 볼 수 있었을 거야. 관직이 있는 개한테는 복종하는 거지. (중략) (리어왕, 팽귄북스 p190)


1막부터 등장해서 광대는 코딜리어가 사라지자 기가죽어 있다. 하지만 그는 리어왕을 따라다니면서 이상한 소리를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가 은근히 해석하기가 힘들지만 그는 우매한 리어왕에게 진실을 고하는 인물이다. 리어왕이 자신의 두 딸에게 쫓겨났을 때도 리어왕을 쫓아다닌다.  그런데 리어왕이 미쳐 날뛰다가 조금 이성을 되찾고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을 때 광대는 사라져 버린다. 즉, 광대라는 존재는 우매하고 독선적인 리어왕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존재이다. 다만, 그가 코딜리어나 켄트처럼 숙청당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광대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계속 리어왕에게 풍자를 하니 리어왕은 그것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하여 광대는 계속 리어왕을 따라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종에 코딜리어가 사라지고 리어를 지키는 수호자이며 리어왕의 양심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리어왕이 광야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광대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광야로 가서 리어왕은 천둥과 비바람을 맞는다. 그동안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던 리어왕, 궁중의 권력 속에 살던 리어왕에게 이 폭풍우는 그가 처음 맞는 세상의 시련이다. 그 폭풍우 속에서 리어왕은 잠시 실성한다. 하지만 그 광야 속에서 그는 미친척하는 에드거를 만나고 에드먼드의 계략에 의해 눈이 뽑혔던 글로스터 백작을 만나고 그의 무지함을 깨닫게 된다. 이 광야 속에서 에드거는 세상을 보지 못하는 리어왕과 글로스터 백작을 눈뜨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광야 속에서 시련을 겪는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깨달음을 얻는데 도움을 준다.



자신의 신분을 뛰어 넘은 에드먼드


에드먼드는 새로운 귀족이 되려고 몸부림친다. 그가 서자라는 것이 그에게 최고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막부말의 사람으로 하급무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진급할 수 있던 그 한계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을 뛰어넘기 위해서 서양의 문물을 공부하고 종국에는 사무라이의 시대를 무너트리고 문명개화론을 펼치며 일본을 자신의 입맛으로 바꾸어 버린다. 에드먼드의 경우도 이러하다. 그는 자신의 신분으로 볼 때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집안도 물려 받지도 못하고 그냥 그러한 귀족으로 죽을 팔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 에드거를 몰아내고 자신의 아버지의 눈을 뽑아 버린다. 그런데 이 인물이 조금은 흥미롭다. 세익스피어가 그의 극을 썼던 시기는 르네상스 시기로 당연히 문화의 발전이 눈부셨겠지만 르네상스 시기에는 권력의 이동이 있던 시기였다. 자본을 가지고 있던 신흥 귀족들이 기존의 봉건질서를 무너트렸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에드먼드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흥 귀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와 더불어 그는 자신의 지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군대를 장악하고 두려운 존재가 되려고 마음 먹었던 사람이다. 세익스피어 시대에 일종에 왕족은 하늘과 자연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리어왕의 두 딸이나 에드먼드는 자연보다는 자신을 내세우여 자연의 질서인 가족들을 파괴한 인물이기도 하다.


올버니 : 오 거너릴, 당신은 무례한 바람이 당신 얼굴을 향해 불어대는 먼지만도 못하오. 나는 당신의 기질이 두렵소. 자연이 자신의 근원을 경멸하면 스스로의 경계와 한계를 확정할 수 없는 것이오. 줄기에서 자신을 잘라내고 수액을 제공하는 가지를 부러뜨리는 여자는 반드시 시들어 죽어 땔나무로 사용될 것이오. (리어왕, 펭귄북스 p165)


그동안 유약한 인물이었고 존재감이 없던 거너릴의 남편 올버니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보면 아마도 이것은 작가의 목소리일 것이다. 즉,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자들은 비극을 맞을 거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사랑한 코딜리어... 그녀는 아버지 때문에 죽었다.


리어왕 : 내 불쌍한 바보가 목매달려 죽었다. 아냐, 안 돼, 생명이 없어! 어찌하여 개나 말이나 쥐는 살아 있는데 너는 숨을 쉬지 않느냐? 너는 다시 못 오는구나. 결코, 결코, 결코, 결코, 결코 제발 이 단추 좀 풀어주게. 고맙네. 이것이 보이는가? 이 애를 봐! 봐, 이 애 입술을 ! 여기를 봐! 여기를 보라고! (리어왕, 펭귄북스 p238)


<리어왕>이 비극인 이유는 리어왕이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지만 그 깨달음으로는 그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깨닫기 했지만 너무 늦은 때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코딜리어도 죽고 리어왕도 죽었다. 악인이었던 리어왕의 두 딸과 에드먼드도 죽었다. 리어왕은 해피엔딩을 이루지 못했다. 리어왕의 왕정은 무너지고 말았다.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는 기존의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자본가들과 귀족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모든 것이 비극이 되어 버렸다. 세익스피어는 르네상스 시기의 정치적 변화를 리어왕을 통해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탐욕적으로 권력을 원했던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을 맞이했던 주변인물들까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처럼 세익스피어가 살 던 시기에는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자연과 우주에 영향을 미쳐 종국에는 그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인물들은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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