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성 Dec 14. 2016

에드가 엘런 포와 도플갱어

<어셔가의 몰락>, <윌리엄 윌슨>, <검은 고양이>

18세기 영국은 산업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그로 인해서 도시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 사건은 당시 영국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일로 느껴지게 되었다. 특히나,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사람들은 소외당하고 목가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특히나 이 시대에는 고딕소설이 유명해졌는데 고딕 소설은 고딕풍의 소설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일들을 보여준다. 특히나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서는 고딕풍의 성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다. 사람들은 이런 초자연적인 것들에 대해서 겁을 먹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성으로 설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이런 공포를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첫번째로는 호러(horror)였고 두번째는 테러(terror)였다. 전자는 설명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공포였고 후자는 규명하는 대상의 공포였다.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들을 보면 고딕풍의 소설이며 기괴함이 묻어나온다. 그의 소설에서 느끼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공포는 마치 18세기 영국인들이 겪는 변화 속의 공포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애드거 엘런 포의 세 소설을 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더블'이다. 우리에게는 도플갱어로 잘 알려져 있는 개념이다. <어셔가의 몰락>에서 쌍둥이 남매가 나오고, 윌리엄 윌슨에서는 두 명의 뮐슨 그리고 <검은 고양이>에서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나온다. 더블이라는 개념은 독일의 낭만주의로부터 나온 개념이다. 낭만주의 시인들은 자신들과 투쟁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넘어서기를 원했다. 즉, 더블이라는 것은 현실에 투영된 에고와 자신의 본성인 자연과의 끝없는 투쟁의 상태이다. 특히나 문학에서 더블은 인간이 무한에 대한 갈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들에서는 자아를 두개로 쪼개어 버리는데 첫번째 자아는 도덕적 존재이고 또다른 자아는 영원과의 초월적 조화를 이루려는 자아이다. 영원과 초월을 이룬다는 것은 일종에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이 상대방의 마음 속에 회자가 되어 추종자들이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초월이다. 포의 소설에서는 현실의 자아와 이상적 자아가 서로 투쟁을 한다. 이렇게 더블이 이러났을 때, 결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쪽을 제거하고 파괴되거나 아니면 자아의 내면에 있는 양심을 고치게 만든다.


<어셔가의 몰락>


<어셔가의 몰락>은 로드릭 어셔라는 사람이 서술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소설의 처음 부분에 기괴한 어셔가를 세셋하게 묘사해준다. 특히나 호수에 비친 어셔가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대칭적으로 묘사되는 부분은 압권이다. 주인공인 로데릭 어셔는 민감하고 히스테릭한 사람이다. 그는 공포를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쌍둥이 동생 메들렌이 계속 병에 시달리고 있다가 죽고만다. 로드릭과 서술자는 그녀를 지하에 매장해 놓는다. 그 이후 서술자와 로드릭은 시간을 때우는데 그때부터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비명소리였다. 처음에 그 소리를 듣는 것은 로드릭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서술자도 그 소리를 듣는다. 소설의 마지막에 지하실에서 부셔지는 소리가 들리고 피에 젖은 메들렌이 그녀의 오빠를 노려보며 그녀의 오빠 로드릭을 덮친다. 그 후 둘은 죽어 버리고 서술자는 집을 뛰쳐 나오자 어셔가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솔직히 메들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나중에 집이 무너지는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남으로 여기서는 그녀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것으로 생각을 해본다. 애드거 앨런 포는 그의 소설 속에서 매들렌의 비명을 계속 묘사한다. 그의 소설 속에서 계속 나오지만 그는 인간이 죽은 후 몸은 죽지만 마음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죽음 속에서 괴로워하는 그 울부짖음 말이다. 그 울부짖음은 다시 살고 싶은 생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로드릭 어셔는 민감하고 힘이 없고 죽어가는 존재로 계속 보인다. 로드릭 어셔와 메들렌은 쌍둥이여서 이 모습을 더블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로드릭 어셔는 자신의 생의 의지를 땅에 묻어 버리지만 그 생의 의지는 죽음까지 초월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로드릭 어셔로 표현되는 죽음과 메들렌으로 이어지는 삶의 의지의 싸움은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것이다. 둘이 서로 싸우면서 둘은 죽고 하나가 되어 버린다. 일종에 죽고 싶은 의지와 살고 싶은 의지가 인공적으로 건축된 성 안에서 싸우고 둘은 하나가 되면서 성은 무너진다. 그 성이 무너진 다음에는 자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즉, 삶과 죽음의 의지가 싸우면서 그들은 자연이라는 불멸성의 속성으로 돌아간 것이다.


유령이 사는 궁전


푸른빛 짙은 골짜기에

천사들 깃들여 살던

아름답고 웅장한 궁정,

빛나는 궁전 우뚝 솟아 있도다.


'사상'의 제국에

거기 궁전은 솟아 있노라!

천사도 이같이 아름다운 궁전에는

내려온 적 없으리라!


노랗게 빛나는 황금빛 깃발들

지붕 위에 휘날렸도다.

'이는 모두 아주 먼 옛적'

그리운 그날

엄숙하고 창백한 보루를 스쳐

솔솔 부는 부드러운 바람

향기로운 깃을 달고 살며시 스쳤노라.


행복의 골짜기를 헤매는 방랑의 무리들

빛나는 두 개의 창으로부터

은은히 들리는 비파 소리에 따라

춤추며 옥좌를 돌고 도는

신들을 보네.

옥좌에는 남빛 옷 입은 하늘나라 임금!

그럴 듯한 위엄을 띠고

하늘나라 임금, 내려오심이 보이도다.



아름다운 궁전의 문은

진주와 루비 빛으로 비치고

그 문으로 흐르고 흘러

또 영원히 번쩍이는

산울림의 무리 뛰어들어오도다.

세상에도 드문 아름다운 소리로

임의 크신 공덕을

친미함을 오직 하나의 의무로 삼고.


악마들은 슬픔의 옷을 입고

하늘나라 임금의 옥좌를 부수었도다.

'아, 슬프도다,

하늘나라 임금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

궁터에 떠도는

빨갛게 피어오른 영광도

이제는 다만 묻힌

남은 옛추억의 한 줄기.


골짜기를 지나는 여행자 무리들

이제는 다만

빨강빛 비치는 창으로부터

미친 듯 터져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희미하게 흔들리는 커다란 그림자를 볼 뿐

무서운 급류와도 같이

파리한 문을 지나

괴물의 무리 영원히 터져나와

큰 소리로 웃는다.

미소는 벌써 볼 수도 없구나.


<윌리엄 윌슨>


<윌리엄 윌슨>은 더블을 가지고 이야기한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자신이 죽어가기 이전에 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하고 자신이 타락해 나가는 모습을 글로 써내려 간다. 그런데 그가 왜 이 편지를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가칭으로 윌리엄 윌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이름이 매우 서민적이라서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윌리엄 윌슨을 만난다. 그들은 생긴 것도 같고 모든 것이 닮았다. 윌리엄 윌슨이 지배욕이 강하다고 한다면 다른 윌리엄 윌슨은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 같고 윌리엄 윌슨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윌리엄 윌슨은 다른 윌리엄 윌슨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잠자는 그의 방을 찾아가는데 그 모습은 자신이 알고 있던 다른 윌리엄 윌슨의 모습이 아니었다. 공포를 느끼고 그는 학교를 떠난다. 그는 이튼 학교에 가서 쾌락에 빠져도 다른 윌리엄 윌슨이 나타나서 그에게 나타나고 윌리엄 윌슨이 옥스퍼드를 가서 사기 도박을 쳐도 다른 윌리엄 윌슨이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서 그를 고발한다. 윌리엄 윌슨이 가는 곳 마다, 다른 윌리엄 윌슨은 계속 나타났다. 마지막에 무도회장에서 윌리엄 윌슨은 다른 윌리엄 윌슨을 만나고 그를 죽인다. 그러자 다른 윌리엄 윌슨은 크게 소리치고 사라진다.


"네가 이겼고, 내가 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너 또한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넌 세상과 천국과 희망에 대하ㅐ 죽은 존재니까! 넌 여태까지 내 안에서 존재해 왔으니까. 너의 모습과 똑같은 내 모습을 보면서, 나를 죽임으로써 네가 얼마나 철저하게 너 스스로를 살해한 것인지를 똑똑히 보라고" (P117)


윌리엄 윌슨은 매우 나르시스트이다. 그는 모두를 지배하려고 하고 자신의 휘하에 두려고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이런 지배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또다른 윌리엄 윌슨을 창조한다. 바로 더블이 탄생한 것이다. 다른 윌슨은 윌슨의 양심이다. 또다른 윌슨은  권력과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즉,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더블을 만들면서 자신이 막나가는 것을 보호하는 것이다. 사실은 윌리엄 윌슨의 자아분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게 된 것은 바로 윌리엄 윌슨이 자신의 다른 자아의 방에 들어갈 때였다. 그동안은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있던 존재를 윌리엄 윌슨은 그곳에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또다른 자신을 보고 윌리엄 윌슨은 도망을 친다. 그 이후 다른 윌슨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윌리엄 윌슨이 도덕적이지 않은 행동을 할 때 마다 그것을 못하게 만든다. 나중에 둘은 무도회장에서 결투를 하고 현실의 윌리엄 윌슨은 자신의 도덕적 윌슨을 죽여버린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완전히 도덕적 자아가 파괴되었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독자들에게 글을 쓴 것이다.


<검은 고양이>


사형 집행을 하루 앞두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임을 강조하며[8] 마음 속의 무거운 짐을 덜고자 하는 심정으로 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옛날, 주인공은 대단히 온순한 성격으로 동물들을 무척 좋아했으며, 후에 맞이한 부인도 그의 취향과 맞아 집 안에는 애완동물이 많았다. 그의 애완동물들 중에선 검은 색의 고양이도 한 마리 있었는데 이름은 플루토. 그는 유난히 이 고양이를 아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면서 주인공은 점차 타락하기 시작한다.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동물들을 학대했고 아내에게도 가정폭력을 휘둘렀다. 플루토만은 한동안 예외였으나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주인공은 플루토가 자신을 피한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손으로 플루토를 붙잡으려고 한다. 플루토가 놀라서 그의 손을 깨물자, 화가 난 그는 충동적으로 플루토의 한 쪽 눈을 칼로 도려내었다. 그 이후 플루토는 주인공을 피해다니게 된다. 예전처럼 살갑기는커녕 서로 눈치를 보면서 겉도는 사이가 되자 주인공은 이제 플루토가 자신을 정말로 싫어한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날 아침, 주인공은 끝내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플루토를 나뭇가지에 목매달아 죽인다.


그 후 집에 큰 화재가 일어났는데, 그의 침대 머리맡 벽만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었고 거기엔 고양이가 목이 매달린 형상의 그을음만 남아있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후 주인공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 집으로 이사를 했고, 새로 기를 고양이를 찾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술집에서 예전의 그 플루토와 너무도 닮은 또다른 검은 고양이를 보게 되고, 고양이 쪽에서 그에게 부비적거리며 친근하게 다가오자 기뻐하며 집에 데려온다. 아내 역시 기뻐하며 그 고양이를 아낀다. 그러나 주인공은 차츰 예전 플루토와 너무도 닮은, 심지어 똑같은 눈이 애꾸인 그 고양이의 모습에 차츰 꺼림칙함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를 괴이함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건 그 고양이의 가슴에 난 하얀 반점인데, 마치 교수대의 밧줄을 연상케 하는 모양새였다. 날이 갈수록 그 고양이에 대한 불길함에 그는 신경질적으로 난폭하게 변해간다. 그래도 예전 일이나 그 고양이의 목에 난 반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속으로 억누르며 참고 또 참아 직접적인 학대는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하실 계단에서 그 고양이 때문에 넘어질 뻔했던 주인공은 결국 참다 못해 고양이를 죽이려 했고, 그 과정에서 말리던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이에 그는 지하실 한 쪽 벽 속에 아내를 세우고 벽을 새로 발라 시신을 숨기는데...


이후 주인공은 자신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한 그 고양이를 죽이려 찾았으나,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겨우 안식을 얻게 되었고, 그의 생활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아내를 죽인 것에 대해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며 아주 좋아라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아내가 안 보인다고 이상하게 여기니 결국 아내의 실종을 조사하러 경찰 6명[9]이 찾아오고, 가택수사와 심문이 이어지지만 주인공은 차분하게 잘 넘긴다. 결국 별 증거를 찾지 못한 경찰들은 떠나려 하고, 무사히 넘겼다는 쾌감을 참지 못한 주인공은 경찰들을 불러세운 뒤 아내를 묻은 벽을 두고 무척 단단하지 않냐며 자랑하다가 손으로 힘껏 두들기는데...

벽 속으로부터 마치 지옥에서나 들릴 법한 기괴한 우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주인공은 물론 경찰들까지 얼어붙는다. 잠시의 패닉이 흐른 뒤 경찰들은 장비를 들고 부리나케 벽을 부수기 시작했고, 거기서 발견된 건... 부패한 아내의 시체 위에서 새빨간 입을 벌리며 울고 있는 그 검은 고양이였다. 주인공은 아내를 암매장 할 당시 그 검은 고양이도 같이 넣어 매장한 것이다. 이리하여 그 자리에서 구속되어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검은 고양이 스토리 출처 : 나무위키)


<검은 고양이>에서 애드거 앨런 포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그는 <검은 고양이>를 통해서 가정을 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누구나 어떤 조건이나 자극이 일어나게 된다면 비이성적인 행동과 광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검은 고양이>는 주인공이 알콜중독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포기 말하는 광기라는 것은 일종에 단계를 걷힌다고 보는 것 같다. 원래 주인공은 아내와 고양이 플루토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하이드)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가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서 그 사랑은 사라지게 된다. 원래 고양이는 중립적인 준재였지만 주인공이 술을 먹으면서 고양이의 눈은 주인공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 급기야 고양이의 눈을 파내는데 포의 소설에서 눈은 일종의 자아를 상징한다. 한 쪽 눈을 파냈다는 것은 포의 소설들을 보았을 때, 도덕적인 부분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외눈박이가 된 고양이는 주인공의 파괴를 암시한다. 그는 이미 도덕적인 자아가 파괴되었음으로 미쳐가고 급기야 아내를 죽인다. 아내의 시체를 벽에 묻어 버리지만 그곳에서 고양이 소리가 난다. 그곳을 파보니 아내의 시체와 외눈박이 고양이가 살아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씻을 수 없는 죄애 대한 다른 자아의 분노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론에 찢어져 버린 그녀의 명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