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존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책의 내용도 어렵기도 하지만 번역이 퍽퍽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만한 외로움과 고독을 다윈의 연장선상에 놓인 진화론에 입각해서 볼 수 있어서 나름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지금 시리즈 파이널을 맞이하는 <뱀파이어 다이어리>와 <오리지널스>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는 클라우스 마이클슨이었다. 클라우스는 1세대 뱀파이어 가족 중 최악의 뱀파이어로 사람들을 속이고 심지어 가족에게 까지 뒷통수를 치는 인물이다. 그는 드라마가 진행될 수록 자신의 고독을 이야기하며 고독한 존재로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표한다. 하지만 스핀오프 드라마 <오리지널스>에서 의심도 많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기는 하지만 그에게 진실된 가족이 생기고 가족의 유대를 회복하면서 그를 지배하던 고독감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자신만 알던, 그는 희생을 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질적인 사회적 유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모든 것은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인간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다.
사실 <인간은 왜 오리움을 느끼는가>는 유전자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작용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았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의 저자들이 다윈의 후계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에 다윈에 대해서 사전 지식을 가지고 글을 시작해야 겠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제창한다. 지금 우리는 인위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벼나 밀을 재배하는 것은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종을 키우는 것이다. 사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또한 인위선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집에 코뿔소나 하마를 키우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 속에서 선택이라는 것은 일종에 다윈의 자연선택과 맞아 떨어진다. 자연선택은 생존에 유리한 개체를 자연이 선책하고, 개체는 무작위로 변위하며, 보존되고, 그 특성이 유전이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다만, 자연선택은 목적이 없는 맹목적인 현상이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사회에 큰 방향을 일으켰다. 몇몇 사람들은 뛰어난 사람들을 결혼시켜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을 만들자는 우생학이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윈은 이런 우생학에 대해서 긍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윈이 발견한 자연선택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기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윈은 그의 다음 저서에서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만은 아니라고 밝힌다. 그것을 깨트리는 것이 바로 집단선택이다. 생존 경쟁과 자연 선택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집단선택에서 희생과 이타성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다윈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윈이 보는 인간관은 성악설이 아니다. 다윈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타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자 이타적 존재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아무 것도 없다. 이기적인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을 지칭하고 이타적인 행위는 연탄봉사를 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의미한다.
외로움은 인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는 친절하게 책의 주제를 말해준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의미있는 사회적 유대감의 부재로 일어난다. 인간이 집단 생활을 저버리고 홀로 행동하게 되면 생존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인간이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 인간은 부정적 사고를 하게 되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도 무뎌지며 그것은 인간의 행동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고독감에 빠져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열린 마음과 관대함 즉 이타적 행위를 통해서 타인과 질적인 유대감을 쟁취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저자들은 고독함에 대해서 진화적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주된 요소로 들었다. 인간은 각자 성격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른 것처럼 외로움의 유전자 또한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잘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은 외로움에 대한 기대감이 낮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그 누구나 고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외로움을 잘 탄다고해서 외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의 발현은 바로 환경적 요소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외로움의 크기가 적은 사람이라도 폐쇄적인 사회나 공간에 있게 된다면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즉, 외로움이라는 것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나온 부산물이며 동시에 사회적 요소와 상호작용을 통해 개개인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유대를 키우며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윈의 진화론의 논의를 끌어오면서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라고 상정을 한다. 홉스는 자연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비슷한 욕망 즉 이기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싸우는 이유는 자신의 생존과 관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획득했어야 한다.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라는 것은 국가도 없고, 질서나 선악판단의 기준이 없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는 합법적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강한 국가 <리바이어던>을 꿈꾸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홉스의 논의가 잘못 되었으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라고 인간관을 설정한다. 이 지점에서 존 카치오포와 윌리엄 패트릭은 다윈의 제자들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이타적이기 때문에 쉽게 고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연대와 희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비록, 홉스의 논의가 틀렸던 지점에서 시작을 하지만 누여겨 볼만한 것은 홉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국가와 같은 공동체가 있어야 생존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관계를 맺고 사는데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개인적 관계, 동호회나 학교 같은 상관적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과 같은 집단적 관계에 속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성의 가능성은 인간이 교감을 할 수 있고, 가치를 공유하며, 감정이입을 하며 이를 바탕으로 팀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있는 팀워크를 통해서 인간은 사회적 유대를 형성한다. 의미있는 사회적 유대야말로 인간의 고독감을 제거할 수 있는 요소이다. 아까 저자들은 인간의 외로움이란 유전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라고 하였다. 유전적 요소는 고칠 수 없지만 인간은 사회적 의미있는 연대를 통해서 고독을 이겨낼 수 있다. 저자들은 Extend yourself, Action plan, Selection, Expect the best를 제시하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사회적 신호를 보내며 질적인 관계를 맺으며 관계에 대한 기대를 하라고 해결책을 내려준다.
왜 현대인들은 고독을 더 느낄까?
현대인들은 모두 고독감에 휩쌓여 삶을 살아간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의 논의를 따르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외로움 유전자가 발달했고 사회적 요소에 따라 외로움의 발현은 각기 다르고 하였다. 그렇다면 현대인이나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나 유전적으로는 비슷한 유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과거에 비해 고독감을 느끼는 이유는 환경적 요소에 따른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 시대로 가서 생각을 해보아야 하는데 책에서도 데카르트의 인간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논의가 틀렸다 할지라도 그가 창안한 것은 바로 '주체'의 개념이다. 남들과 다른 나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런 논의는 서양의 인간관을 형성했다. 서양인들은 누가 뭐라고 하던, 자신의 개성과 개인의 행복과 성공을 중시한다. 아무리 사회에서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하여도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감을 느끼고 만족하면 그 삶은 성공한 삶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이런 인간관의 문제점은 인간이 자신에게만 집중을 하여 타인과 공감과 유대를 맺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인들은 고독하다. 이것은 근대인의 숙명이다.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그 이유 중 주된 것이 바로 고독감이다. 우리는 고독감을 제거하기 위해 클럽을 가고, 보정된 셀카를 보며 행복해 하며, SNS에 자신의 행복한 사진을 올린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이는 고독감에 대한 몸부림일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서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번 촛불 집회가 의미가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사회를 바꾸기 위한 생각으로 온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이권을 침해당했다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나온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의도로 나왔던 집회 현장에서는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사람들이 다칠까봐 장애물을 치우던 사람들, 어린 아이들을 배려하던 사람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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