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르포라이터 도전기> 집필과정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 먹으면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 자신의 글을 평가받는 것에 괜한 자존심을 부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오류를 범했다. 글을 쓰는 사람의 90%는 자신의 글이 평가 받길 원한다. 나머지 10%는 프란츠 카프카 같은 부류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나는 9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당부드리는 것은 내가 한 실수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 글을 쓸 때, 글에 몰두하기 때문에 자신이 쓰는 글이 정말 슈퍼 짱짱맨 잘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 아름답게 썼다고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얘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먹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럴 때, 두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꺼져, 너가 내 글을 어떻게 알아, 너가 무식한거야'
라고 분노를 하거나,
'아 그래요? 어떤 분야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나요'
라며 자신의 글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재수 때, 9월 모의고사를 망치고 눈물 흘리는 나에게 찾아온 신선같은 친구
입시 공부를 하거나, 고시 공부를 하면 사람의 시야는 좁아진다. 당연한 것이다. 매일 독서실에 틀어 박혀 재미없는 책만 보면 아무리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입시를 보는 이에게 평가원 9월 모의고사의 점수는 매우 중요하다. 그 점수가 실질적으로 수능과 연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을 망치면 절망스럽다. 재수를 하는데도 시험을 망치자 나는 침울했다. 내가 1년동안 삽질을 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너무 속이 상해서 놀이터에 앉아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신선같은 친구였는데, 그때 그는 대학생이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찾아와 옆에 앉았다. 내가 한 숨을 푹푹 쉬자 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분이나 흘렀을까? 그 친구가 입을 열었다.
"친구야, 속이 많이 상했을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 모습을 보면 너무 초조해 보인다. 당연히 공부를 하면 사람 시야는 좁아지게 되있어. 좁은 공간에서 책만 보니까 작은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친구야, 가끔 공부하다가 하늘을 좀 보길 바래. 매일 독서실이나 자습실에 있으면 세상이 이렇게 큰 지 까먹는다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하늘 좀 보면서 공부해"
그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돌로 팡 맞은 것 같았다. 요즘, SNS에 고시생 클라스라는 글이 올라왔다. 정말 일반인들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고시생들은 불편해 하고 민감해진다. 당연히 공부를 하다보면 부담감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초조해서 마음의 넉넉함도 없어지는 것 당연하다. 나도 입시공부할 때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런 것이 시험 준비생에게만 있는가? 아니다. 글쓰는 사람 또한 그렇다. 자신의 글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자신의 글을 계속 보다보면 나의 글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제 3자의 눈에는 바보 같은 글로 보일 수 있다.
누나가 감히 내 글에 테클을 걸다니!
첫번째 원고를 끝냈다. 5월부터 시작해서 9월 쯤 글이 났을 것이다. 그때까지 출판사에서는 아무런 터치가 없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원고를 지인들에게 보여줬다. 누나에게도 글을 보여줬다. 누나가 초고의 일부를 읽어보고 이렇게 말했다.
"음..... 문장이 너무 꼬여있고, 재미가 없어, 너는 재밌을지 몰라도 나는 전혀 재미가 없어"
나는 분노했다. 그때 이성이 뒤틀려 버려서 '누나가 이해를 못하는 거야!'라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 다음 날, 기분을 풀고 나의 초고를 다시 읽었다. 누나의 말이 적중했던 것이다. 재미가 없다. 그리고 취재한 소재를 단순하게 배열했던 것이었다. 누나에게 미안했다. 전화해서 누나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 글을 보아야 한다. 약간 가벼우면서 너무 가벼우면 안 되는 글을 써야만 했다. 이는 매우 스펙타클한 것을 나 자신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그 당시 왜인지는 몰랐지만 책을 빨리 출판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빨리 쓰다보니 당연히 내용이 부실해지는 것은 당영한다. 나는 내가 써 놓았던 글을 하나 하나 뜯어 보았다. 될 수 있으면 글을 풀어 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새로운 순례의 길을 걷는 상황이었다.
작가는 비판에 더 귀를 기울어야 한다.
작가는 비판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비판은 좋은 것이지만 작가에게 비판이 썩 내키는 것은 아니다. 글쓰는 사람들에게는 묘한 프라이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글이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면 괜찮겠지만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이라면 제 3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무작정 따라가서는 안 된다. 이럴 때 마음가짐은 이 사람이 A라는 관점으로 이야기하면 그것을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A라는 관점으로 글을 한 번 바라보는 것이다. 바로 글을 객관화해서 보는 것이다. 사실, 홀로 글을 객관화시켜서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글을 뜯어 고쳤다. 쉽고 재밌는 이야기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사건에 봉착하게 된다. 그 이름하여 '이화여대 정유라 부정입학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