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성 Jun 12. 2017

박열의 여친 가네코 후미코? 아니 나는 가네코 후미코야

<나는 나>(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가네코 후미코

영화 <박열>의 티저 영상을 보면서 기대가 된다. 당연히 박열이라는 인물의 항일 운동에 대해서 극적으로 조명되겠지만 티저 영상에서 눈여겨 볼만한 여성이 있었다. 바로 최희서씨가 연기한 가네코 후미코였다. 예전에 가네코 후미코의 <나는 나>를 쓰윽 봤는데, 영화로 나온다니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영화에서 어떻게 어떻게 그려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읽으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사실 가네코 후미코를 조선 독립 운동을 위해 살았던 사람, 박열의 일본인 여친으로 조명이 될 것 같지만 나는 그녀의 옥중 수기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왜 그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했고, 아나키스트가 되었으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심이 있다.



무적자로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


왜 나는 무적자인가? 표면적인 이유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왜 입적되지 않았을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이모에게 들은 내용이 가장 납득할 만한 사정이라 여겨진다. 이모 이야기로는, 아버지는 처음부터 어머니와 인생을 함께할 마음이 없었고, 좋은 사람이 생기면 버릴 작정이었기에 의도적으로 입적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나, 산지니, pp27-28)


할머니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고 쏘아보며 말했다.

"설마 잊지는 않았겠지. 너는 무적자야. 무적이란 건 말이야, 잘 들어. 무적자라는 건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거야." (나는 나, 산지니, p98)


가네코 후미코의 <나는 나>를 보면서 느낀 것은 정말 이 사람 힘들게 살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지만 아버지가 후미코의 이모와 바람이 나고 아버지는 떠난다. 어머니는 대장장이와 동거를 하기도 하고 부두에서 놈팽이로 사는 남자와 동거를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후미코를 유곽에 팔아 버리려고 하기도 했으며 학교에서 월사금을 내지 않는다고 선생님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다. 조선에가서 친 할머니와 고모에게 노예처럼 사는 가네코 후미코... 정말 쉽지 않은 인생이었다. 그 중에서 그녀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무적자라는 신분이었다. 무적자는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존재는 하는데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혜택을 누릴 수도 없으며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책을 보면 후미코가 어린 시절 이사를 가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자신의 존재적 몸부림을 치는 인생이다. 가네코는 언제나 혼자였다. 아버지는 바람나서 도망가고 어머니도 후첩으로 들어가 가네코를 버렸다. 가네코는 중세의 마녀처럼 혜성에서 뚝 떨어진 존재였다. <나는 나>는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가네코 후미코가 어떻게 하여 자신을 찾아가는지에 대한 여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할머니와 공부


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인가. 나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이 얼마나 평화로운 고요함인가.

"아아, 이별이다. 산과도, 나무와도, 들과도, 꽃과도, 동물과도, 이 매미 울음과도, 모두와 헤어진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찰나, 갑자기 슬펐다. 할머니와 고모의 무정함과 냉혹함과는 이별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사랑해야 할 것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사는 세상은 할머니와 고모네 집만이 아니다. 세상은 넓다. (나는 나, 산지니, p.146)


가네코 후미코의 삶의 최악의 정점은 바로 조선의 삶이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하자, 외가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친할머니와 고모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무적자는 입양이 안 되었기 때문에 외할머니의 딸로 호적에 올리고 후미코는 조선으로 간다. 충청 북도 쪽에서 생활했던 가네코 후미코는 학대 그 자체였다. 학교에 준비물을 챙겨주지 않는 고모와 고모부, 언제나 약자에게만 강하게 구는 기득권 친할머니...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의 친가에서 노예처럼 생활을 했다. 후미코는 할머니를 불합리한 구조 그 자체로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을 보다보면 조선인 머슴 고씨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고씨를 골리며 갑질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악마처럼 묘사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가네코가 고씨를 보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선에 대한 연민을 보인 것은 아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보는 모습은 고씨나 자신이나 약자가 되어 약자를 착취하는 권력구조에 대한 불만을 보여준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에서 조선에서의 삶이 많이 그려지는데 대부분이 할머니와 고모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장면이다. 그와 동시에 책은 가네코가 학교를 계속 다니는 모습을 병치시킨다. 후미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아나키스트적인 사상을 가지게 된 것은 친할머니의 불합리한 폭력 때문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후미코는 계속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계속 공부를 하며 고달픈 삶 속에서 계속 고민하며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랑해야하는 세상에 대한 깨달음은 후미코가 무적자에서 자신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가네코 후미코다!


그래서 말인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는데, 당신은 배우자가 있으세요? 배우자는 없어도 누군가...... 그래요. 연인이 있으신가요? 만약 있으시다면, 나는 당신과 그저 동지로서라도 교제하고 싶은데요? 어때요? (나는 나, 산지니, p.336)


기다려 주세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우리 함께 합시다. 그때는 내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거에요. 결코 당신을 병으로 힘들게 하지 않을 거에요. 죽는다면 함께 죽읍시다. 우리, 함께 살고 함께 죽어요 (나는 나, 산지니, p.343)


가네코 후미코는 청년이 되어 홀로 도쿄로 상경해 고학생의 삶을 살아간다. 아침에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신문 팔이를 한다. 사실, 박열과의 연애 스토리를 듣고 싶다면 <나는 나>에는 박열의 등장이 거의 없다. 끝에 몇 페이지 정도 나온다. 도쿄에 와서도 가네코 후미코는 많은 남성에게 실망한다. 연애를 하지만 자신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남성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미코는 박열의 글을 읽고 그의 사상에 끌리게 된다. 책을 읽어보면 외모에 끌린 것은 아니였다. 아무리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다고 해도 사회주의 내에서 당연히 기득권이 생긴다. 즉, 언제나 사회적 기득권에 따라 민중은 착취를 당할 것이다. 그에 대해 박열은 아나키스트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 일본 내에서 할머니와 아버지, 외삼촌 같은 강자에게 고통받던 후미코였다. 후미코 만큼 구조적 폭력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사상에 매력을 느끼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책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가네코 후미코라는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여기서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가네코 후미코가 조선에 애정이 있어서 독립운동을 했다고는 생각 안 한다. 다만, 조선 사람들이 처했던 일본제국의 착취, 머슴 고씨가 당했던 착취당하는 모습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삶에서 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대하는 권력에 대해 반기를 들게 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분노한다 그래서 희생양을 만들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