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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Jul 08. 2017

대한민국 보수의 멘탈리티를 말하다

<건국과 부국> 김일영


이 모든 생각들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를 따르는 사람과 정치세력을 기리키는 용어로는 '이념형 보수'가 적당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주의 국가론은 강령한 경쟁력을 지닌 이론이다. 논리적으로 매우 단순명료해서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내부 혼란과 침략의 위험이 상존하는 국민국가의 시대, 더욱이 이데올로기적, 군사적 대결을 동반한 한반도 분단체제가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에서 홉스의 국가론은 앞으로도 긴 세월 위력을 떨칠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돌배게, P.43)


2017년 한국의 보수는 망했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의 판을 열어보자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2위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의 입장에서 시국의 책임을 져야할 보수당이 아직도 대통령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홍준표 대통령 후보가 개인적인 문제와 도덕적 결함이 있는데도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한국의 보수당과 보수지지자들의 사고를 읽어 낼 수 있다. 유시민 작가는 대한민국의 보수를 이념적 보수로 정의했다. 이념적 보수는 국가주의적 보수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보수 후보가 내거는 공략은 매우 간단하다. 경제와 안보를 통한 사회 안정이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보수라는 타이틀, 북한과 좌파 세력의 척결 그리고 경제만 잘 살게 해준다면 표를 던진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된 것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가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 때문이었다. 젊은 세대는 보수를 이해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보수의 멘탈리티와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특수한 상황에 놓였는데, 보수가 먼저 형성되고 진보가 이에 대한 반격을 가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런 행태는 대한민국의 특수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수의 형성 과정을 하나 하나 뜯어 보아야 한다.



체제 선택의 정치 : 광복부터 이승만 대통령이 세워질 때까지!


한편 미군정은 일제하의 한국인 관료와 경찰을 상당 부분 유임시켰다. 미군정은 이들을 행정과 치안 및 질서유지를 위한 기능적인력으로만 생각했지 그것을 둘러싼 한국인들의 민족적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36)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태극기 집회에서 눈여겨 볼만한 장면은 태극기와 미국의 성조기를 동시에 들고 나타났다는 점이다. 태극기 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겠다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이해는 간다. 그렇지만 거기에 왜 성조기가 나타났을까? 최초의 선거인 5.10 선거가 있기 이전,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인 무력을 사용할 수 있던 집단은 바로 미군정이었다. 8.15 광복 이후부터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수많은 정치 세력이 있었다. 여운형을 필두로 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성수와 송진우를 필두로한 한국민주당, 김구를 필두로한 임시정부 그리고 조선공산당 등이었다. 하지만 혼란의 시기 속에서 이 정치세력은 국가의 핵심인 합법적 폭력을 가지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광복을 맞은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군정의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좌파 세력은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미군정과 좌파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미군정은 일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친일 세력을 대부분 유임시키며 국가를 돌렸다. 미군정은 자신들과 일할 수 있는 보수를 선택했다. 미군정의 지지를 얻었던 민족개량주의자들은 자신의 친일 행적의 약점을 미군정의 지지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민당 계열이 행정 일을 맞게 되었다.


그러던 중,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신탁통치를 결정하게 되었다. 신탁통치를 공표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반응하기 시작했다. 우파 세력은 신탁통치에 대해 반대했다.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과 같은 좌파도 처음에는 반탁을 했지만 신탁통치를 기능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생각해 찬탁이라 말하지 않고 '3상회의 결의사항 전폭 지지'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이에 대해 많은 민족이 분노를 했다. 신탁은 마치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많은 민중이 미군정과 좌익 세력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미군정은 난처했다. 그동안 손을 잡았던 우파 세력이 반탁을 외치하고 좌파 세력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군정은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한다. 좌우합작운동이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미군정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통치 방식을 바꾸고 이 문제를 UN에 상정했다. UN은 남한에게만 단독 정부 수립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이승만은 미국의 정책을 지지했고 한민당 또한 반탁 진영에서 나와 지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5.10 선거가 치러줬다.


(5.10선거의) 선거권은 23세, 피선거권은 25세 이상의 성인 남녀에게 모두 주어지지만, 민족 반역자나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 및 고위 친일 관리는 자격을 박탈했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체택했으며, 기표는 입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쓰는 자서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이북 출신의 월남자를 위한 특별 선거구를 두도록 했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68)


하지만 5.10선거도 지리적으로나 이념적으로는 한계가 있는 선거였다. 좌파(남노당)는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고, 중간파(민죽자주연맹)와 우파의 일부(한독당)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선거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가운데 한민당과 이승만 세력(독촉) 그리고 무소속이 대거 참여하여 남한에서만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이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69)


대한민국이 국가의 형태가 된 5.10 총선은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보수가 먼저 형성된 것은 미군정의 통치 방식 때문이었다. 미군정의 입장에서 한국에서 일을 해야하는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보수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보수의 개념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다만, 이념적 보수가 등장할 수 있는 땅은 마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를 이해할 때, 미국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은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통치자들과 관리들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정치를 한다. 



6.25 전쟁과 한국인의 탄생


이 무렵 '한국'의 국민적 정체성 확립과 관련된 대표적인 계기는 농기개혁과 한국전쟁 그리고 반공이었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171)


이승만 정부가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꽃피운 것은 분명 아니다. 당시 정치는 권위주의적이였고, 시장은 경제를 움직이는 부분적 메커니즘에 불과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권위주의가 전체주의보다 나으며, 부분적으로 작동할지라도 시장이 전면적인 통제와 계획보다는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83)


수능 시험에서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은 시험 밭이다. 그 만큼 농지개혁은 중요하다. 6.25 전쟁이 터지기 전 이승만 정부는 대대적으로 농지개혁을 펼친다. 농지개혁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번째로 지주들의 지배 구조를 무너트려 버린 것이다. 두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 소유의 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두번째가 중요한데 바로 자신이 지켜야 할 자신의 재산 즉 소유물이 생긴 것이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땅을 받은 농민들은 이승만 정부에 대해 지지를 표하게 보수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이승만 정부는 농지개혁 이전에 땅이 없는 농민들을 선동하던 좌익 세력의 힘을 빼놓고, 지주들의 지지를 받던 한민당의 힘 또한 빼버린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남한으로 처들어 오고 6.25 전쟁이 시작된다. 휴전이 있고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택한다. 북한에게 가족을 잃었던 농민들에게 반공정책은 더욱 이승만 정부를 더욱 지지하게 만든다. 외부에 적이 생기면 내부는 단결한다. 6.25 전쟁 이후 조선인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획득한다.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보수적인 국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중도파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편 아니면 나쁜 놈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중간파가 설 자리는 없었다. 이렇게 이승만 정부는 안정기를 맞이했지만 무리한 정권 연장과 비선 실세들이 등장 그리고 일본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이승만을 지지하지 않는 미국의 태도가 합쳐져서 4.19혁명 이후 이승만 정권은 무너지게 된다. 이승만 정부 시기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보수층의 멘탈리티의 기본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개막과 경제 발전


발전국가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기본 원칙으로 하면서도 방어적 근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시장에 대한 장기적이면서 전략적인 개입을 하는 국가'이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319)


이러한 반전국가적인 시장개입의 과정에서 관치 금융이 발생했고, 정경유착이 싹텄으며, 비효율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이렇게 한정된 자원을 특정분야에 몰아주는 방식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이때 정북가 추구하는 것은 단기적인 효율성 보다는 중장기적인 효과성이였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320)


저자는 이승만 정부에서 산업화를 이룰 재료는 준비가 되었지만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고 국면은 바뀌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획득한다.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획득한 조직의 문제는 바로 지지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군정은 처음에 인기 영합주의를 시도한다. 반공 태세를 강화하고 3.15 부정선거자를 처단하고 화폐 개혁을 실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더 큰 그림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박정희 군정은 정치와 경제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정치적으로는 자신을 지지할 당을 만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선거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졍제 개발 우선 정책을 추진한다. 그리하여, 한일국교 정상화를 추지하고, 배트남 파병을 하며 저자가 말하는 발전국가의 완전한 틀을 만들었다. 경제 발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지며 박정희 대통령은 많은 국민에게 지지를 받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경쟁, 특히 1967년 선거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경쟁에서 이겼다 해도 이들 세력의 핵심인 박정희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더 이상 출전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데 이들의 고민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발전국가를 사회 내의 여러 계급뿐 아니라 의호 및 정당정치로부터 자율성을 지닌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이것은 정치가 실종되고, 오로지 행정적 효율성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의미했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P. 378-379)


이러한 의회 및 정당정치 위축, 공화당의 자율성 상실, 당내민주주의 소멸 등과 같은 현상들은 유신체제가 출범하면서 그 절정에 달했다. (중략) 이 모든 과정의 절정이 유신이었지만 , 그것의 시발은 삼선개인이었다. (건국과 부국, 생각의 나무, P.391)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갈린다. 바로 '경제를 일으킨 훌륭한 대통령인가 아니면 독재자인가'라는 의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근본 문제를 과연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이 함께 갈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지적해 주었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선진국들이 발전할 때 민주주의가 먼저 발전하나 아니면 산업화가 먼저 이루어지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산업화가 먼저 이루어지고 그 후에 제도적 민주주의가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아마 저자도 이에 착안을 했던 것 같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바로 산업화와 민주주의는 동시에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 우리에게 많은 문제를 안겨 주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발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여하튼 <건국과 부국>은 여기서 끝난다. <건국과 부국>은 두 가지 점에서 마음에 든다. 비록 절판이 되었지만... 첫번째로 저자가 자신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앞에다 설명한 것이다. 사실 역사를 배울 때 교과서나 선생님들이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자신의 역사관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겁한 짓이다. 두번째로, 한국 보수의 이념적 멘탈리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깊은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신체제에서 책을 끝내는 것은 보수의 멘탈리티가 광복 이후 박정희 정권에 따라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마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다음에는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어 봐야겠다. 한국의 보수에 따라 진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봐야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큰 틀을 형성할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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