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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Jul 15. 2017

한국 진보의 멘탈리티를 말하다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부할 때는 먼저 대한민국 보수의 멘탈리티의 형성과정을 알아야 한다. 그 책은 김일영 교수의 <건국과 부국>을 보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수에 대한 진보의 반격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추천한다. <나의 한국현대사>는 두 가지 장점이 있는데, 첫번째는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이 책은 진보의 멘탈리티를 알게 되는 일종의 개론서의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진보의 형성과정을 나름 쉽게 알기 위한다면 이 책은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역사가들이 일하는 방식도 언론인과 다르지 않다.역사가도 각자 나름의 개성과 취향이 있고 서로 다른 욕망과 감정에 끌리며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사실 가운데 자신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선택해 자신의 시작으로 해석한다.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두 가지가 모두 주관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9)


서로 적대적인 두 세력과 그들이 대표하는 두 시대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는 모두 우리의 과거다.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시대와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둘 중 하나만을 긍정한다면 역사와 현실의 절반을 부정해야 한다. 이것이 온전한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일 수는 없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26)


산업화세력을 보수, 민주화세력을 진보라고 할 경우 대한민국 국민은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 확연하게 나뉘어 있다. 이것은 정치적 분립을 넘어서는 문화적, 철학적 대립을 내포한다. 삶에 임하는 자세,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견해, 그리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인식 등 모든 면에서 두 진영은 서로 다른다. 물론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한 사회의 동시에 존재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과 지향의 차이가 크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탓에 생긴 현상이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27)


나느 7차 교육과정 속에서 역사를 배운 세대다. 그 당시 시험에 대한 압박도 있었지만 역사를 시험의 수단으로 보았다. 내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불만이었던 것은 그 누구도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금성 교과서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집필진이 자신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앞쪽에 명시해주지 않았다. 집필진의 관점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은 정말 치사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역사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이 책의 내용이 진리라고 생각하며 배울테니까 말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현대사>가 참 마음에 든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쓴 역사책이 자신이 바라 본 역사를 주관적으로 서술했고 어떤 관점에서 책을 서술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작가주의 중 사실주의라는 것이 있다. 예전에 세상을 사실주의로 묘사만 한다면 왜 문학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때 교수님은 사실주의자들은 모두 주머니에 거울을 들고 다닌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거울로 세상을 비추는데, 거울의 각도와 높이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역사도 이런 것이 아닐까? 역사라는 사실이 있지만 역사책을 서술한다는 것은 거울의 높이와 각도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치판단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듯, 역사는 주관적인 시각이 필수적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보 지식이 쓴 현대사도 읽어야 하고 보수지식인이 쓴 현대사도 읽어야 한다.



이승만 정부와 4.19혁명


나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든 힘이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52)


그것은 환경과 능력이 달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거침없이 질주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환경이 조성되었으며 국민들은 개별적, 집단적으로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을 신속하게 터득했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59)


1959년 국민의 가장 강력한 욕망은 먹고사는 새온의 문제, 북한의 위협과 사회 내부의 혼란에서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이 욕망을 충족할 수 있게 해주기만 한다면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게도 복종할 뜻이 있었다. 4.19에서 5.16까지 1년을 제외하면, 국민들은 정부 수립 이후 1987년까지 40년 동안 권력에 굴종하며 살았다. 이승만 정부는 '멸공통일'을,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는 그와 더불어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힘으로 대중을 억눌렀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55)


4.19는 미완의 혁명이었다. 부정선거 규탄으로 시작해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를 출출하고 새 정부를 세웠다는 점에서는 분명 성공한 정치혁명이었지만 그 혁명을 완성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주체가 없었기에 혁명의 정치적 결과는 기존 정치세력 민주당의 집권으로 귀착되었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89)


보수 지식인들이 쓴 현대사의 대부분은 이승만 정부가 비록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모습을 보였지만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대한민국 근대화의 맹아를 만들고, 반공이라는 멘탈리티를 심어주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정부나 국가가 나라를 세울 때는 정부와 민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시민 작가는 이승만 정부 보다는 민중의 욕망에 대한민국의 발전을 설명한다. 이승만 정부 때 대한민국이 근대화의 맹아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의 욕망 때문이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조건이 나오는데, 첫번째로 생존과 안정의 욕구였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밥을 먹고 싶은 욕망과 북한으로부터 안정되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두번째로 대한민국의 환경적 요소다.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이 시기에 대한민국 사람들 사람들의 개개인의 욕망과 환경적 요소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대한민국이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이승만 정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그가 생각한 것은 바로 국가의 정통성을 통해 과연 이승만 대통령이 국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국가의 정통성이 있으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바로 역사적 대의명분, 경제적 효율성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을 조건으로 내건다. 이승만 정부의 경우 친일파 청산을 막았다는 것이 역사적 대의명분을 잃었고,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으며, 민주적,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는데서 이승만 정부는 국가의 정통성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4.19혁명이 일어났다. 그가 판단하기에 4.19혁명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의미는 있지만 지도부가 없어 미완의 혁명이었다고 평가한다.


박정희 시대와 경제부흥


그런데 혁명인지 쿠테타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쿠테타는 혁명과 달리 민중의 동의와 지지와 참여가 없이 폭력으로 국가질서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행위다. (중략)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5.16을 굳이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니 '결과적으로' 5.16은 잘된 일이었고, 잘된 일에는 군사정변이나 쿠테타보다는 혁명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운영을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5.16이 군사쿠테타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94)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부 이래 개발독자와 재벌 중심의 자본 축적,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낡은 경제구조를 혁신하지 못했으며,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른 정글접칙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104)


어느 쪽이 먼저일까? 민주주의를 이루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번영한 걸일까, 아니면 경제가 발전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할 수 있던 것일까? 어느 것도 먼저가 아니다. 이 둘은 선순환 관계에 있다. 어느 특정한 시점에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시적으로 보면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는 어디에서나 함께 진전되었다. (중략) 그렇게 살아갈아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유가 있어야 힌다. 장를 누리려면 물질의 결핍이 주는 억압을 극복해야 하고, 부당한 제도와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175)


1961년  5.16에서 1972년 10월 유신까지 민주화운동의 목표는 박정희 정권 타도라기보다는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고 바로잡는 것이었다. 정부는 언제나 주도권을 행사했으며 모든 싸움에서 이겼다. 하지만 손쉬운 승리는 아니었다. 4.19 혁명의 봉화를 올렸던 고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자라나 대학생과 사회인이 되었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191)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성공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생물학적 생명을 빼앗은 것은 총탄이었지만 정치적 생명을 앗아간 것은 그 자신이 이룬 성공이었다. 그는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대중의 욕망을 무제한 분출시키고 그 탁류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했다. 그런데 산업화의 성공으로 절대빈곤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대중은 다른 욕망에 끌리기 시작했다. 자유, 정의, 민주주의, 인간적 존엄성을 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욕망을 존중하지 않자 국민이 마음으로 그를 버렸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 하여금 방아쇠를 당기게 한 것은 그와 같은 민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10.26사건을 그렇게 이해한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P.221-222)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뜨거운 감자다. 그를 독재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경제를 살린 유능한 대통령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 보수의 이념은 이승만 정부로 시작해서 박정희 정부에서 완결이 된다. 이승만 정부에서 북한에 대한 반공 사상이 심어졌다면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경제 문제를 중시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의 멘탈리티는 바로 안보와 경제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명분을 위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압축적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정부로 중심을 모으고 재벌을 키웠다. 박정희 대통령과 재벌들은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켰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은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다. 

유시민 작가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을 망하게 만든 것은 바로 경제 발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의 핵심은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 중산층을 육성했다는 것이다. 중산층을 육성하며 이제는 배고픔으로 괴로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서 중산층은 새로운 욕구를 갈망한다. <나의 한국현대사>가 책 앞부분에 메슬로우의 욕구이론을 깔아놓은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하위 욕구가 만족되면 더 높은 욕구를 향해 달려간다. 이제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유신을 하면서 사람들을 억압했다. 그리하여 10.26이 터지기 직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투쟁을 시작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탄압하다 자신이 육성한 시민들에게 비판을 받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는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고 이와 동시에 사람들은 시민과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함께 펼쳐진 것이다. 



전두환 정권과 대한민국 진보세력의 등장


광주민주화항쟁은 민주주의 정치혁명의 가능성과 당시 민주화운동의 현주소를 명료하게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전제정치를 타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라는 것, 그리고 아직 대한민국 국민은 그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들어난 것이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235)


광주민중항쟁 이후 학생운동의 이념과 운동방식은 급진적 변화를 겪었다. 군복무를 하고 있던 나를 면회하러 온 친구들이 처음 듣는 행진곡풍의 '운동가요'를 불렀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일보직전 이보후퇴>, 마오쩌둥의 <모순론>, <실천론> 같은 논문을 읽는 게 기본이라고 했다. 노동자를 조직해야 혁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교내시위를 해서 구속되는 사람 빼고는 신분을 위장해 공장으로 갈 준비를 한다고 했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240)


사회주의 성향이 상한 사람들은 민중민주주의PD 노선을 받아들였다. 모델은 러이사 혁명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믿으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러시아 혁명사, 레닌의 전력, 전술을 연구했다. 노동자계급을 조직하고 정치적으로 지도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규정했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낡은 부르주아 사상으로, 북한을 민족주의 내세우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로 간주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세력은 민주화 이후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진보정파가 되었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242)


광주 학살의 배후에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점을 중시한 청년지식인들은 민족해방NL 노선으로 결집했다. 모든 사회악의 근원은 미제국주의다. 분단도 독재도 자본주의적 악덕도 모두 미제국주의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민주화도 사히정의도 통일도 이룰 수 없다. 러시아 방식의 혁명은 우리 설정에 맞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을 조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중산층과 소자산계급을 포함해 각계각층 모든 민중을 반미의 기치 아랭 결솜함으로써만 혁명을 이룰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북한은 민족자주를 최고의 가치로 표방하고 있는 만큼 북한 정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단파 라디오로 북한 대남선전조직인 한국민족민주전선이 송출한 '구국의 소리' 방송을 녹취해 학습자료로 삼았다. 한국은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라고 규정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이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P.242-243)


6월 민주항쟁도 4.19혁명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권력주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재야와 학생운동 세력은 민주주의 정치혁명을 이루기 위해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를 조직하는 데는 유능했지만 그 승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 능력은 없었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261)


지금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만참여의 시대다. 2008년 이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현개하 나오고 있지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헌번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핸태를 보이지만 권력의 제한과 분산, 상호견제를 통해 국가기관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국가운영의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정책과 행태를 보이는데, 그 기반은 불합리한 제도나 경찰과 군대의 폭력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거대 보수언론과 재벌, 공안세력이 반복 주입하는 반공 이에올로기에 휘둘리는 시민들의 의식이 그 기반이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276)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학생들은 이에 대해 반대 시위를 시작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4.19나 광주민주화항쟁을 겪으며 대한민국 진보의 맹아는 준비기간이라고 읽었다. 대한민국 진보가 나타난 것은 광주민주화항쟁 이후였다. <나의 한국현대사>가 흥미로운 점은 운동을 햇던 유시민 작가가 386세대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해주었다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에 밀려 학생들은 여러 운동을 하였다. 사실, 사회주의 서적을 읽은 386세대를 종북 빨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 모두가 종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수의 종북세력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회주의 노선을 취했던 것은 독재에 맞서 싸우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진보가 탄생한 것은 바로 안보와 경제를 무기로 삼아 독재를 하는 집단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6월 항쟁으로 386세대는 독재정권을 무너트렸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던 한계는 바로 싸움은 잘했지만 변화를 주도하는 주역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지식인들은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 정치로 입문하기도 하고, 민중운동가가 되기도 했으며 시민운동가가 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의 진보의 역사를 살펴보면, 4.19나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진보세력이 있었지만 구심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진보의 움직임이 생긴다. 바로, 386운동권 세대다. 이들이 진보의 맹아였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정국을 주도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그들이 빛을 보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기였다. 대한민국의 진보가 나타나면서 보수와 진보는 언제나 서로 티격티격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이루어지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종의 이념적 보수의 상징이었다. 그 상징을 시민들과 진보가 밀어 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가 드디어 정착했다는 생각을 했다. 즉, 지금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체제를 안정화시키는 단계다. 세상이 바뀌는 것 같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까? 다시 과거로 갈까, 아니면 더 민주스러운 국가로 갈까? 그것은 아마 시민들의 몫일 것이다.


6월 10일 오후 여섯 시, 나는 유인물 몇백 장을 품에 감추고 서울시청 광장에 서 있었다. 국본 지도부 인사들이 대회 개막을 선포하기로 한 성공회 본부를 경찰이 미리 봉쇄했지만, 미사에 참여할 피아노 반주자 등으로 위장해 성공회 교회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 몇몇 인사들이 여섯 시에 종탑으로 올라갔다. 종소리와 동시에 유인물 뭉치가 날아올랐고 구호가 터져나왔다.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P.255)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이 문장이 참 아름답다. 청년 유시민이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 서울시청 광장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이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참고) 진중권 교수의 NL노선 평


진중권['진보누리'에서] 2004.3.22.


PD란 인민민주주의의 약자입니다. 80년대 당시의 군부독재의 상황이 곧바로 사회주의혁명 을 허락하지 않기에, 먼저 군부독재를 무너뜨리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외세로부터의 자주화와 사회주의혁명으로 나가자는 이론이지요. 물론 오늘날 더 이상 이를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명칭이 계속 사용되는 이유는 곧 다시 설명을 드리지요.


NL은 민족해방의 약자입니다. 이들은 남한의 모든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외세에 의한 분단, 특히 미국의 남한점령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먼저 이 땅에서 미국을 몰아낸 후 북한과 통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단계에서는 당연히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 북한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정됩니다. 오늘날까지 이를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봅니다.


주사파는 NL 세력 내에서 확실하게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들은 글자 그대로 남한의 운동은 북한의 조선노동당의 혁명전략에 따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되, 그 중에서 김일성 숭배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부분은 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피곤하긴 마찬가지지요. 과거에 주사파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원조격인 강철 김영환이 간첩 잠수함 타고 북한에 갔다 온 다음에 자기가 거느리던 그룹들을 이끌고 집단으로 전향했습니다.


현재 이들은 극우파로 변신하여, 월간조선 조갑제와 함께 북한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 민주화에는 실제로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반공 이념 확산운동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PD와 NL이라고 하면 무장봉기로 사회를 뒤엎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좀 다른 것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이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냐는 데에서 의견이 갈리는 거죠. PD는 남한 내의 계층 문제, 말하자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의 해결을 중심적 과제로 설정합니다. 반면에 NL은 반미와 통일운동을 중심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지요.


두 노선이 부딪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과거에 정주영은 현대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지요. 말하자면 그는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노동자의 적, 악덕 기업주였습니다. 이게 PD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분이 어느날 소떼를 끌고 평양에 갔습니다. 그러자 NL에서는 이 분을 '민족자본가', '동포사업가', '통일운동가'로 칭송을 하더군요. 현장에서 구사대에 박터지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 들으면 당연히 머리에 꼭지가 열리겠지요.


정치적 맥락에서 PD와 NL의 대립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대개 NL은 선거 때에 민주당(지금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왔습니다. 이들의 사고에서는 남한 내의 계급적 대립보다는 남북이 연합하여 미국과 대항하자는 생각이 강합니다. 때문에 NL을 지지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민주당으로 가서 국회의원이 되거나, 의원 가방모찌가 되었지요. 김대중이 툭하면 얘기하던 "젊은 피"라는 게 대부분 이들로 채워져 있었지요. 지난 대선 때에는 다 노무현으로 달려갔습니다.


반면 PD는 민주노동당과 같은 좌파정당이 독자적인 길을 가기를 바랬지요.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사는 서민들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민족의 단합'이 아무리 중요해도, 같은 민족 내에 가진 자, 못 가진 자의 대립을 흐리는 것은 결국 지배 이데올로기에 놀아나는 결과에 불과하다고 보는 거죠. 그레서 이들은 대선 때에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졌던 것이지요.


최근 북한이 다 망해가서 존립이 힘들어지고, 김대중 정권도 미군을 철수시킬 정권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지자, NL들이 대거 민주노동당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중의 일부는 당에 녹아들어가서 훌륭한 당의 일꾼이 되었지만, 일부는 민주노동당을 '민족자주당'으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공작을 하고 있지요. 민주노동당에서 자주 일어나는 지구당 잡아먹기 사건은 대개 다 NL 애들이 일으킨 것이라 보면 됩니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을 북한조선노동당의 2중대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한 마디로 오늘날 PD와 NL라는 명칭은 과거의 혁명론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PD는 사실상 더 이상 PD라 불릴 이유가 없는데도, 그저 NL 애들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명칭이지요. NL도 과거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하지만 이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NL이라 불려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그 중에는 김일성을 추종하는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도 꽤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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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당 논평에서 북한을 약간 건드리니까 딴지가 들어오지요. 당내에 프랙션 하러 기어 들어와 있는 쥐사파 애들, 이 참에 확실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도대체 북한이 민중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조폭적 행태를 보이는 마당에, 그거 좀 비판했다고, 그것도 아주 완곡한 어법으로 비판했거늘, 저렇게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입니다. 저것들이 정상입니까? 아무리 북조선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핵무기를 들고 설치는 것을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것들, 미* 놈들 아닙니까? 저런 미* 놈들 하고 무슨 당을 같이 합니까?


지난 번 대선 때 저 넘들 하고 손 잡는 거 비판했다고,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난리를 한번 친 적이 있었지요? 그 후 그 넘들 어떻게 합디까? 바로 배신 때리고 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나가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쯤 되니까 비로소 '주사파'라는 욕이 튀어나오더군요. 민주노동당에 주사파 있는 거, 그제야 비로소 알았나 봅니다. 주사파 넘들, 평소에 어떤 넘들입니까? 당에 들어와서 하는 짓이라곤 맨날 미군부대 앞에서 데모하는 거, 아니면 지구당 장악하기 위한 종파사건이나 치는 거.... 얘들하고 도대체 무슨 정치를 한다는 겁니까?


이 친구들, 이제까지 얼마나 사기를 쳐 왔습니까? 처음에는 반전반핵 양키 고우 홈. 이렇게 가열찬 반전평화세력은 다시 없을 정도였지요. 그러더니 그 후엔 북에서는 핵개발 안 한다. 그건 미제의 모략이다. 그러더니 북에서는 협상 카드로서 핵 개발하는 시늉만 할 뿐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핵 개발은 자위용이다. 미국은 핵 안 갖고 있냐. 그럼 처음부터 미국도 핵 가졌으니 북조선도 핵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든지... 이게 바로 이 넘들이 하는 행태입니다. 이 짓을 장군님의 위대한 승리라고 떠드는 넘들입니다. 이런 넘들 당에 그대로 두고서 어떻게 당이 신뢰를 얻겠습니까?


도대체 전세계의 어느 진보세력이 핵개발에 찬성합니까? 원전 폐기물 처리장에도 그 난리를 치는 마당에, 아예 핵폭탄을 만들겠다는 데에 명색이 진보라는 넘들이 그걸 잘 하는 짓이라고 정당화를 합니까? 쥐사파 얘들은, 진보가 아닙니다. 우익입니다. 그것도 극우예요. 다만 조국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남이 아니라 북조선으로. 어느 나라 진보가 세습권력에 찬성하고, 어느 나라 진보가 인민 굶겨가며 자기들만 호강하는 넘들을 옹호하고, 어느 나라 진보가, 세상에, 핵 개발에 찬성하나요. 이게 말이 됩니까? 이걸 굳이 논쟁을 해야 합니까?


쟤들은 민족주의자도 아녜요. 그냥 북조선 국가주의자들이지. 어느 나라 민족주의자가 정권유지를 위해 제 민족 전체의 생명을 볼모로 잡는 걸 잘 하는 짓이라 하나요. 미국 이전에 러시아가 당장 북이 핵전쟁 할 '징후'만 보여도 바로 공격하다고 그러죠? 게다가 북조선 제 핵무기는 도대체 어딜 겨냥한 걸까요? 동해안에서 이리 저리 떠다닐 미 해군 항모요? 아니면 수 천, 수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미국 본토요? 그리고 설사 북한에만 핵이 떨어진다 해도, 그 피해를 김정일 식구들과 북한 애들만 볼까요?


명색이 진보정당이라는 곳에서 아직도 이런 헛소리 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이런 망언들이 삐작삐작 기어나오게 합니까? 도대체 진보정당이라는 곳에서 기껏 핵개발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논쟁을 해야 합니까? 게다가 그 논쟁이 대체 왜 필요합니까? 어디에 필요합니까? 그러잖아도 할 일 많은 당에서 북조선 노멘클라투라 항문 핥는 분들의 시비에 일일히 대응해야 합니까? 진보는 대체 어느 세월에 하려구요. 제 발 이 참에 깨끗하게 정리 합시다. 얘들이 나가줘야 민주노동당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저런 꼴통들 덱구 어디에다 '진보'의 명함을 내밉니까?


중앙당에서는 이 참에 이번 성명서 파동에 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지금 게시판 분위기를 보니, 저 넘들 다 들고 일어난 거 같은데, 마침 잘 됐습니다. 이 참에 저 넘들에게 민주노동당의 대북관을 확실히 밝히고, 그 넘들이 도저히 남아 있을 수 있는 성격의 당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걔들, 따로 민족자주당 꾸려서 당사에 장군님 사진 걸어놓고, 핵개발 정당하다, 자기들 맘에 쏙 든 논평 발표하며 살라고 냅두세요. 도대체 저 지진아들을 뭐하러 끌고 갑니까? 그러잖아도 바쁜 세상에....


쥐사파는 우리와 세계관이 다른 놈들입니다. 걔들은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전체주의자들입니다. 걔들은 자유주의자도 아닙니다. 남한의 국보법에는 지*해도, 북한의 사상탄압은 당연하다고 하는 넘들입니다. 걔들은 민족주의자도 아닙니다. 김정일 정권의 집권보장을 위해 민족의 생존권을 볼모로 잡는 넘들입니다. 걔들은 생태주의자도 아닙니다. 장군님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핵개발도 가능하다고 보는 넘들입니다. 쟤들은 운동가도 아닙니다. 운동하는 넘들이 대중들 앞에서 거짓말을 저렇게 밥 먹 듯 합니까?


얘들은 진보진영과 도저히함께 갈 수가 없는 애들입니다. 근데 왜 억지로 같이 가야 하나요? 민주노동당이 난지돕니까? 어차피 대중들에게 버림받는 애들, 왜 민주노동당이 구제를 해야 하나요? 솔직히 걔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선전의 공간에 불과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 당에서 뭐라고 하든, 당에서 뭘 결정하든, 걔들은 아무 상관없이 자기들 멋대로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대체 얘들을 뭐하러 달고 다니나요? 걔들, 내 보내서 따로 당 꾸리라고 하세요. 얘들 대신에 푸릇푸릇한 신세대와 스마트한 네티즌들이나 끌어들일 생각을 하세요. 마인드 좀 바꾸세요. 당이 무슨 정파연합 혹은 무슨 운동단체 연합입니까?


쥐사파와 NL은 다르다구요? 그걸 누가 압니까? 그들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나요?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입니다. 쥐사파와 NL이 다르다면, 쥐사파가 설칠 때 NL들은 비판적 거리를 두고, 그들을 잠재워야 합니다. 근데 이제까지 그래왔나요? 늘 쥐사파 애들 감싸기에 바빴지요. 그리고 솔직히 쥐사파와 NL이 어떻게 구별되나요? 북조선 추종하는 정도에 뭐 대단한 차이라도 있나요? 어떤 차이가 있는데요? 눈 가리고 아웅을 하세요. 혹시라도 자신이 쥐사파가 아니라고 믿는 NL들이 있다면, 앞으로는 언행을 쥐사파와는 좀 다르게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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