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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01. 2016

순수한 피터팬은 선한 아이일까?

<피터팬> 제임스 매튜 베리


<피터 팬> 원작을 읽었다. 초록색 옷을 입은 소년, 꿈과 희망의 네버랜드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 소년 너무나 천진난무하고 코믹한 후크 선장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원작은 놀랍고 신비한 네버랜드는 나타나지 않으며 광기의 피터팬과 고민하는 후크 선장이 나온다.


죽음과 망각이 살아 숨쉬는 네버랜드


피터팬은 네버랜드의 제왕이다. 네버랜드는 꿈과 희망의 섬이 아니라 죽음의 향기가 나는 곳이며 망각의 장소이다. 피터 팬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전쟁을 하며 살육을 하는 존재이다. 네버랜드의 또다른 법은 어른이 되면 잃어버린 아이들에서 아이들을 추방한다는 것이다. 전면적으로 않나온 것이지만 피터 팬의 재미를 빼앗거나 법을 어길 경우 잃어버린 아이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잃어버린 아이들 중에 한 명이 웬디를 모르고 활로 저격해 버렸다. 피터 팬은 그 아이를 칼로 찌르려 했으나 웬디가 살아 있어서 피터 팬의 손을 잡아 그 아이는 목숨을 구제하게 된다. 즉, 피터 팬은 네버랜드의 왕이며 자신이 만든 법을 어기면 처벌하는 아이다.

그와 더불어 피터 팬은 망각을 잘하는데, 그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로만 존재하며 과거는 없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 집을 나갔지만 맘이 바뀌어 집으로 갔으나 어머니의 옆에는 새로운 아기가 있었고 그는 그 마음 속의 슬픔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 과거라는 것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를 잊어버린다. 그는 언제나 즐거움을 찾는데 그것은 과거를 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네버랜드는 곧 피터 팬의 세계로 팅커벨도 그곳에서 사라지고 여기서 잃어버린 아이들도 다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네버랜드는 죽음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후크가 피터 팬을 죽도록 싫어했던 이유는 바로 건방짐 


후크는 원작에서 입체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피터 팬을 증오한 이유는 바로 건방짐 때문이었다. 후크의 과거를 돌아보면 그는 품행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악의 길을 걷지만 악기를 연주하고 교양을 중시한다. 이와 더불어 전통을 중시한다. 전통을 고수하고 교양을 떠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이다. 그에게 있어 피터팬은 자신에게 어린시절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증오와 악의 길을 걷지만 그것이 과연 올바른 길인가를 고민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그의 증오라는 감정에 묻혀 버린다. 후크는 어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누구나 아이처럼 순수한 떄의 모습이 있고 청춘의 열정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픈 것은 어른이 될 수록 우리는 그것을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모두 자신의 과거를 그리워 하지만 그 길로 돌아 갈 수없다는 것을 슬퍼한다. 다만, 이런 향수는 일종의 자신의 모습을 동정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합리화 일 수 있다. 후크 선장의 갈고리는 우리에게 또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갈고리는 피터팬을 기억하게 하는 매계물이다. 누구나  우리 모두 후크  선장의 갈고리가 있다. 바로 과거의 어린시절의 모습이다. 절대로 우리는 그 과거의 어린시절을 자신이 세상에 젖어가는  것을 합리화시키는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 모습을 과거의 추억이 되어야 하며, 그 시절의 모습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피터팬의 순수성과 어른의 사회


피터팬은 자신의 그림자가 떨어져 나갔을 때 슬퍼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인 그림자가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림자를 꿰매준 것은 바로 웬디다. 웬디는 비록 어린 아이지만 네버랜드에서 모성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웬디도 언제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녀의 피터 팬에 대한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그리하여 피터 팬은 네버랜드를 지배한다. 바로 자신의 규칙으로 말이다. 피터 팬의 모습을 보면 어린이의 순수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네버랜드에서 그의 통치방식은 지금 사회의 어른들과 다를게 무엇인가? 오히려 순수한 존재는 광기의 극단까지 갈 수 있고 폭령성을 가질 수 있다. 피터 팬의 강점은 바로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 죽이는 것을 벌레 죽이듯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피터 팬>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순수한 것이 곧 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피터 팬>에서는 후크가 절대 악이고 피터 팬이 순하기 때문에 선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순수함이라는 것은 가치가 중립적인 것이다. 순수함은 때묻지 않은 인간의 본성이다.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흐뭇해한다. 당연히 많은 매체에서 순수함과 선을 동등 관계로 많이 설정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는  반대쪽으로 향할 수 있다. 바로 악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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