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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Aug 30. 2017

우리는 '편의점'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에 일본판 이방인이 등장했다.


편의점 점원으로 태어나기 전의 일은 뭔가 어렴풋해서 선명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교외 주택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평범하게 사랑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좀 이상해 보이는 아이였다. (편의점 인간,살림, p.15)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은 후루쿠라 게이코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36살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의 시선에 약간의 압박은 느끼지만 그렇게 크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유년 시절을 설명할 때 후루쿠라는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죽어있는 새를 보며 잡아 먹고 싶다고 하기도 하며, 괴롭히는 아이를 삽으로 두들겨 패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홀로 고독하게 지낸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작가가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후루쿠라 게이코는 비슷한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그녀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게이코의 동생이나 그녀의 친구들은 게이코가 정규직을 가지지 못한 것, 남자를 한 번도 사귀지 않고 관계를 맺지 않은 것,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하자가 있는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게이코가 겪고 있는 문제는 우리가 모두 겪는 문제다. 현대인은 시간의 틀에 갇혀사는 존재다.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취직을 해야하고, 적절한 나이에 결혼을 해야한다. '적절한' 시기에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하지 못하면 주위 사람들은 사회의 요구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루저로 생각하며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즉, 사회가 요구하는 '적절한' 시기에 사회가 주는 미션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사회에서 배제된다. 



우리는 편의점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태어난 것이다. (편의점 인간,살림, p.31)


육체노동자는 몸이 망가지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성실해도, 분발하여 열심히 노력해도, 몸이 나이를 먹으면 나도 이 편의점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될지도 모른다. (편의점 인간,살림, p.105)


편의점에 계속 있으려면 점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간단한 일이에요. 제복을 입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돼요. 세상이 석기시대라 해도 마찬가지에요. 보통 사람이라는 거죽을 쓰고 그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무리에서 쫓겨나지도 않고, 방해자로 취급당하지도 않아요. (편의점 인간,살림, p.116)


<편의점 인간>에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게이코와 사회의 경쟁에서 도태된 남자, 시라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이코는 이 세상이 마치 기계와 같아서 사회의 부품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부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고풍스러운 말로 '사회화'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군대가지 않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 있다. '군대가면 철이 들어서 돌아온다' 이 말을 들어보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화 과정이고 조직에 무비판적이며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에서 군필자를 중시하는 것은 군필자들이 조직에 충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이 사회와 회사의 부품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회와 회사에는 자리가 한정되어 있다. 경쟁은 필수적이다. 경쟁에서 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배제된다. <편의점 인간>에서 시라하는 경쟁에서 완전히 패배한 인간이다. 그는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보통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삶을 못 누리며 세상에 대한 한탄만 할 뿐이다. 그는 현대 사회가 석기 시대라고 욕을 한다. 석기시대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 까지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 살아가고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사회에서 배제되고 도태된다. 사실 한국의 경우 죽어라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것은 대학이 곧 나의 생존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의 인간은 인류 최대의 경쟁 시대에서 살고 있다. 그 경쟁의 승리자는 세상에서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될 뿐이다.



자본주의 세상 속의 편의점 이방인


편의점의 목소리가 들려요 (편의점 인간,살림, p.192)


게이코는 여동생과 친구들이 그녀를 결혼 문제와 직장문제로 귀찮게 굴자 시라하와 동거 아닌 동거를 제안한다. 게이코는 편의점 알바를 하며 시라하를 집에 부른다. 게이코는 시라하를 집에 들여놓으며 사람들의 갈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시라하는 숙식을 해결하게 되어 이상한 동거는 시작된다. 시라하는 자신이 사회에 편입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게이코에게 편의점 일을 때려 치고 직장을 가지길 원한다. 시라하는 게이코의 자소서를 쓴다. 그러던 중, 한 회사에 게이코의 면접이 잡히고 게이코는 18년동안 다녔던 편의점을 그만둔다. 편의점을 그만 둔 게이코는 자신의 기준이 없어졌다며 불안해 한다. 면접 당일, 시라하와 게이코는 면접장으로 간다. 가는 도중 시라하는 화장실에 가고 게이코는 편의점에 들어간다. 그 편의점은 편의점 전문가인 게이코의 눈의 어설퍼 보였다. 그녀는 손님이지만 갑자기 자신이 편의점 점원인 것처럼 진열대를 고치고 오히려 알바를 가르친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시라하는 기겁을 하며 면접장으로 가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게이코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을 면접을 포기하고 편의점 알바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이렇게 소설은 끝난다.


사실, <편의점 인간>이 <이방인>의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아류작은 아니다. 오히려 이방인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인간을 발견하게 해준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죽음 앞에서 진정한 이방인이 되었다. 마치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게이코 또한 초인의 모습이 보인다. 시라하는 보통의 인간이 되는 것, 사회의 일원이 되길 원했다. 그러나 게이코는 시라하의 제안을 거절하고 편의점 알바라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되기로 결심한다. 마치, 뫼르소가 이방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번 뒤집어 생각해보면 게이코가 된 이방인, 초인 그리고 편의점 인간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초인이다. 니체나 알베르트 카뮈는 인간이 자신이라는 진정한 실존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오로지 '나'라는 존재 때문에 나의 실존이 완성되는 것 말이다. 그러나 <편의점 인간>에서 말하는 초인이나 이방인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실존을 찾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진정한 나의 실존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주입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이코는 분명히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 바로 보통의 존재가 되지 않고 자신의 실존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의 실존은 자본주의가 말들어 놓은 편의점 인간이라는 실존이었다. 사실, <편의점 인간>은 가볍게 읽히지만 현대인의 진정한 실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무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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