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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Sep 23. 2017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파멸과 죄책감

<해외여행> F. 스콧 피츠제럴드

몇 년 전에 피츠제럴드의 <해외여행>을 리뷰한 적이 있다. 그때는 급하게 쓰기도 했고 대충 대충 읽어서 피상적인 리뷰를 썼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책을 읽어보니 <해외여행>은 참 무거운 단편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죄책감이 들어있고, 자신과 그의 부인 젤다가 왜 파멸했는지에 대한 기억의 단편이 들어 있다. 넬슨과 니콜로 표현되는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모습은 현실과 문학 사이에서 겹쳐보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슬프다.


https://youtu.be/4nJOhcIsmxM

Avril Lavigne - How You Remind Me



니콜과 넬슨 부부는 도시의 삶이 지쳐 장기 해외 여행을 떠난다. 부부는 아프리카 여행을 할 때 마일스 부부를 만난다. 처음에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부부는 마일스 부부의 탐욕스러운 모습에 대해 반감을 느낀다. 니콜과 넬슨 부부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며 행복, 즐거움 그리고 건강을 점점 일어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 즉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화려한 파티와 각 나라의 유력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하면 여행의 목적을 점점 망각해 나간다. 장기간의 해외여행은 삶으로부터의 탈출구가 되기 보다는 또다른 감옥이 되어 버린다. 소설 후반부에 니콜과 넬슨 부부는 이름 모를 부부를 계속 만난다. 소설 마지막에 니콜과 넬슨 부부는 그 이름 모를 부부가 바로 자신들의 도플갱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인생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보면 주인공이 과거의 파리로 가서 과거의 문필가들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살롱에서 한 부부를 만나는데 그 부부는 바로 피츠젤드와 젤다였다. 피츠제럴드는 미국을 떠나 젤다와 함께 유럽에서 살게된다.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머무는 여행이다. <해외 여행>은 피츠제럴드가 부인 젤다와 함께 해외에서 살았던 삶을 복기하는 소설이다. 그들의 꿈은 미국의 거대한 도시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은 점점 쾌락과 향락적인 것으로 변질된다. 이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이 공감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녀가 만나게 되고 서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이것은 마치 해외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레고 이색적인 것이다. 하지만 부부가 꿈을 잃고 향락과 호화스러운 파티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깨닫는다. 남녀는 서로가 편해지고 타성에 따라 설레는 만남은 일상이 되어 버린다. 일상이 되는 순간 해외 여행은 도시의 삶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진다. 남녀의 만남은 설레지만 그 여행 즉 만남의 기간이 길어지고,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그 관계에는 공허만이 존재한다. 그 공허를 매우기 위해 니콜과 넬슨 부부가 향락에 빠진 것처럼, 피츠제럴드와 젤다가 사치에 정신이 나간 것처럼 공허감을 욕망으로 채우려고 한다.



자신들을 만난 부부 


"봤어? 그들을 봤어?" 그녀가 울멱이며 속삭였다. 

"그래"

"그들은 우리야! 그들이 우리라고! 봤어?"

그들은 몸을 떨며 서로를 껴안는다. 구름이 어두운 산덩어리와 섞였다. 잠시 후 넬슨과 니콜은 사방을 둘러보면서 조용한 달빛 아래 자신들 단둘뿐인 것을 깨달았다. (피르제럴드 단편선, 민음사, P,259)


성찰 없는 관계는 언제나 파멸로 끝날 뿐이다. 도플갱어가 부부 앞에 나타난 것은 이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외국 소설에서 도플갱어는 두 자아를 의미한다. 첫번째 자아는 도덕적 존재이고 또다른 자아는 영원과의 초월적 조화를 이루려는 자아이다. 두번째 자아를 욕망적 자아로 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부부가 가는 곳마다 그들의 도플갱어가 따라다닌 것은 꿈을 잃고 목적성도 잃은 부부 앞에 나타난 도덕적 자아들이다.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두 사람 모두가 자신들을 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넬슨과 니콜 부부가 공허하고 건강을 잃은 것은 자신들을 돌아볼줄 몰랐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는 자신과 젤다의 삶을 <해외여행>에 담아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넬슨과 니콜 부부처럼 아름다운 파티만을 꿈꿨고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소설에서 적어도 넬슨과 니콜 부부가 자신들의 도플갱어를 만나자 도플갱어가 사라진 것은 그들이 적어도 자신들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피츠제럴드와 젤다에게는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젤다는 정신병에 걸려 정신병동으로 요양을 가게 되었고 피츠제럴드는 그 돈을 내느라 소설만 쓰게 되고 나중에는 파산지경에 이르게 된다.



피츠제럴드와 젤다처럼......


젤다와 피츠제럴드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돌아 봐야 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자신이 어떤 점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점에서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것이 인간이다. 이 점을 확장해서, 관계에서도 성찰과 고민은 필요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조차 홀로 자신만의 고민을 하는 것은 오류에 빠지고 이기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관계에서 자신만의 결론을 내릴 경우 그 관계는 반쪽짜리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피츠제럴드가, <해외여행>에서 부부가 각자의 도플갱어를 따로 만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만난 것은 이런 점을 시가한다. 바로, 관계에서 고민을 할 때는 그 사람과 함께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함께 할 때, 얼마나 서로가 상처를 주었고, 서로가 목표를 잃었으며, 서로가 이기적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고민이 없다면 그 관계는 병든 관계고 죽은 관계라고 나는 생각한다. 피츠제럴드가 <해외여행>을 쓸 때는 이미 젤다는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할 때였다.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은 미스테리하게 끝나는 것 같지만 나름의 희망의 메시지를 열어놓고 결말을 맺은 것이다. 그러나, 피츠제럴드와 젤다의가 처했던 상황을 염두하고 <해외여행>의 결말을 바라보면 피츠제럴드가 이 소설을 쓸 때는 이미 관계가 파탄이 났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이 겪었던 상황을 복기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는 비극이다. 마치,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관계가 비극적 결말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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