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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Sep 15. 2017

이별한 연인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터널 선샤인> 리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하나를 꼽는다면 '기억의 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 기억을 가진 동물들이 당연히 있겠지만 기억을 가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기억을 전승하는 것은 아마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억은 특히, 인간의 마음과 사랑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령, 한 사람이 연인과 잘 만나다가, 이별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사람의 제일 아픈 기억은 무엇일까? 아마, 길을 걸으며 함께 웃고 떠들고 밥먹고 싸우고 했던 공간이 눈에 밟힐 것이다. 남들에게는 보통 공간이 연인 사이에서는 특별한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연인과 연인 아닌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 연인 즉 둘 만이 아는 공유된 기억의 유무일 것이다. 나는 사랑이나, 인간의 마음을 구성하는 것은 상대방과 함께한 추억 즉 기억이 축적된 것이라고 믿는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만남, 연인들의 만남과 갈등 그리고 사랑의 감정


사실 영화를 볼 때 편집이 잘못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인내심을 가지고 보니 쫌 복잡한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원래 연인이었지만 둘이 엄청 싸우고 클레만타인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에서 조엘의 기억을 지워버린다. 이에 따라, 조엘 또한 자식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연인이 된다는 것은 모두 호감을 통해 만나게 된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때는 상대방의 좋은 것만을 보고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상대방의 실수 따위는 일종의 귀여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자동적으로 용서가 된다. 아니, 단점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속설로 3개월이 연인간의 첫번째 고비라고 한다. 당연히 안 싸우는 커플도 있지만, 3개월이 왜 고비가 될까? 우수갯소리로 사람들은 김태희를 만나도 3개월이면 김태희나 누구가 같다고 한다. 이처럼 약 3개월 정도로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은 조금씩 현실감각이 살아나는 것이다. 사실, 연인이 갈등을 마주하는 것은 매우매우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다른 환경, 다른 삶의 궤적을 살아가며 자랐기 때문에 가치관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다. 신혼부부들이 싸우는 일이 큰 문제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칫솔을 어떻게 놓는가, 치약을 어떻게 짜는가 와 같은 사소한 문제를 통해 서로 싸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들을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 싸우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연예다.



함께한 기억의 집합이 사랑일까?


<어린왕자>를 보면 여우와 왕자는 어느 날 만나서 친구가 된 것은 아니다. 서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추억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별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별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두 가지로 크게 압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함께한 둘만의 추억, 두번째는 일상의 변화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친해질 때 밥을 함께 먹었다. 제자들과도 밥을 함께했고 세리(이스라엘인들에게 세리는 거의 친일파 수준으로 여겨짐)와도 밥을 드시고,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와도 밥을 드셨다. 밥을 먹는 다는 것은 상대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 점점 쌓이고, 놀이공원을 가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 사이에 서로 우연하게 웃기도하고 재밌는 상황을 만난다. 그 기억의 총합은 서로의 친밀감을 강화시킨다. 그 기억은 절대로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으며 오로지 연인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을 하면 힘든 것은 바로 이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지, 상대방과 같던 음식점을 가면 과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현상을 느끼는 것이다. 두번째로, 연인들은 서로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이 다르다. 어떤 이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떤 이는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생활방식이 서로 갈등하고 화해를 거듭하며 각각의 개개인이 새로운 생활을 공유한다. 그 생활 방식을 공유하면서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그 생활방식에 적응을 한다. 하지만 이별을 하면 그 생활 방식은 더이상 유요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허감을 느낀다.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자신의 기억을 지우려는 행위는 바로 이런 것에서 귀인된 것이다. 너무 아프기 때문에 기억을 지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란, 사랑의 감정과 연인들의 축적된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별한 인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조엘은 기억을 지우며 <인셉션>같은 경험을 한다. 영화를 보며 눈여겨 본 것은 조엘의 기억의 공간이 점점 어두워진다. 조엘은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것은 막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그가 제일 행복했을 때가 바로 클레멘타인과 함께 했던 기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기억을 지우기 시작하면 그것은 멈출 수 없다. 그렇게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기억은 사라진다. 하지만 나중에 둘은 서로 연인일 때 싸우던 음성파일을 듣게 되고 서로가 연인이었음을 기억은 못해도 알게 된다. 그들은 다시 만나며 사랑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끼지만 조엘은 둘은 변하지 않았음으로 다시 만나더라도 똑같은 우를 법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에 대해 클레멘타인은 쿨하게 '괜찮아'라고 답하며 영화는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러한 것이다.


'누구가를 사랑할 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때가 있다. 마음으로는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으로 볼 때 만날 수 없는 상황이면 어떻게 할까요?'


감독은 쿨하게 사랑한다면 쿨하게 다시 만나라고 주장한다. 비록, 그 관계가 똑같이 결말을 맞더라도 말이다. 사실, 이별한 인연이 재결합을 하는데 다시 깨질 위험이 있는 것은 바로 '기억' 때문이다. 아마 서로 이별을 할 때 상했던 마음이나 상처가 치유가 되지 않았다면 둘은 다시 만나도 파멸하게 될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을 보며 느낀 것은 연인에게 있어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 당연히 결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서로 다시 만날 것이라면 기존의 자신을 버리고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자신이라는 것은 단점을 말하는 것도 있겠지만 서로 다투며 불만이 쌓였고 상처받은 '나'를 말하는 것이다. 그때, 사랑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어떻게 만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지 않을까? 그들에게 다가올 상황은 언제나 바뀌고 있고 그때마다 새로운 기억을 만들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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