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성 Oct 22. 2017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스트들의 시대

<포퓰리즘의 세계화> 존 주디스


정의할 수 없는 포퓰리즘


카진은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포퓰리즘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그 사람들이란 보통의 사람들을 계급으로 협소해서 구분하지 않고 고귀한 집합체로 여긴다. 또한 자신들과 대립하는 엘리트를 자기 잇속만 차리여, 비민주적이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그 엘리트에 대항하도록 집결시키고자 한다.: (포퓰리즘의 세계화, 메디치, p.22)


좌익 포퓰리스트는 엘리트나 기득권층에 맞서는 국민을 위해 싸운다. 그들의 포퓰리즘은 상류층에 대항해 정렬된 하류층과 중간층의 수직적 정치다. 우익 포퓰리스트도 엘리트에 맞서는 국민을 위해 싸우는데, 이때 국민은 이 엘리트가 제 3그룹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편애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다. (포퓰리즘의 세계화, 메디치, p.23)


하지만 포퓰리스트는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들의 등장은 지배적인 정치 이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리가 필요하다는 신호이자, 표준적인 세계관이 고장났다는 신호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트럼프와 센더스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포퓰리즘의 세계화, 메디치, p.27)


2017년 JTBC 신년 토론회에 유시민 작가, 전원책 변호사, 유승민 당시 대통령 후보자, 이재명 성남 시장이 참가했다. 이때 전원책 변호사 대중의 욕이란 욕은 다 먹었는데, 유승민 후보에게 좌파라고 명명하고 이재명 성남 시장에게 포퓰리스트 정치를 일삼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때, 포퓰리스트라는 말을 어렴풋하게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존 주디스의 <포퓰리즘의 세계화>를 읽고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가치중립적인 단어라고 이해했다. 사실 책에서는 포퓰리즘을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카진이라는 학자의 포퓰리즘에 대한 논의를 빌려오는데, 내가 이해한 바로는 포퓰리즘은 대중이 원하는 요구를 정치인이 엘리트와 보통 국민이라는 이분법을 통해 무리한 공약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사실, 전원책 변호사가 사용한 포퓰리스트는 반의 포퓰리즘을 이해한 것 뿐이었다. 여하튼, 존 주디스는 카진의 정의를 조금 더 세분화한다. 좌익 포퓰리스는 엘리트와 보통의 국민이라는 이분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트럼프와 같은 우익 푸퓰리스트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제 3의 약자를 타깃으로 잡아 사회적 문제가 이들에 대한 엘리트 집단의 관용 때문이라고 몰아 붙인다. 존 주디스는 포퓰리스트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구분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전체주의적이고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포퓰리스트들이 말하는 대중의 요구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잘 보여준다는 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총공급곡선


신자유주의 의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주장은, 오래된 뉴딜 자유주의가 소비자의 수요를 늘리고 불평등을 줄이는 데 집중함으로써 성장을 억제하고 미국인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자유주의의와 공급 중시 의제는 경제 불평등과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으며,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해 모든 미국인이 이득을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포퓰리즘의 세계화, 메디치, p.68)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정치 현상이라고 못을 박는다. 즉,  이 말을 잘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 우리 시대가 아닌 시대에는 민주주의 체제 내에 포퓰리즘이 부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와 과거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 즉 신자유주의의 도래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총수요곡선과 총공급곡선에 사이에서 총공급곡선을 움직이는 체제다. 과거 케인지안들이 총수요곡선 즉, 정부지출을 움직였다면 지금은 총공급곡선을  감세를 통해 움직인다는 논리다. 먼저 신자유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려면 우리 나라의 사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이후 MB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우리는 MB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은 7.4.7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률을 7%까지 끌어 올린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은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정부와 감세를  통해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를 증가시키고, 환율에 장난을 쳐서 환율을 올리고 순수출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감세나 상속세를 줄인다고 해서, 기업의 투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작은 정부를 통해 정부지출을 줄인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은 불투명했다.

이런 신자유주의는 미국 레이건 정부에서 레퍼 곡선으로 유명한 레퍼가 레퍼 곡선을 휴지에 써서 보여주며 사람들은 세율이 올라가면 일을 덜 할 것이라는 감세론자들의 이론의 근거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레이건 정부는 법인세, 상속세를 내리자 그들이 예측한 것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의 재정적자가 일어났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이자율을 올리고 돈을 빌린다. 이자율이 올라가자 유럽과 중동의 돈이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고 달러의 값이 상대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달러가 올라가면 당연히 수출을 감소하게 되고 미국 내의 물가는 올라가게 되어 무역적자가 일어난다. 그리하여, 미국 내의 쌍둥이 적자가 일어난다. 이후, 클린턴 정부에서는 이를 겨우 회복시켰지만 아들 부시 정부에서 레이건 정부보다 더 큰 쌍둥이 적자를 가속화 시켰다. 이런 신자유주의는 미국 내의 양극화를 촉진시켰다. 존 주디스가 주장하는 것은 수많은 나라들이 신자유주의의 입장을 취하자 세계적으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양극화의 갭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현상과 함께 나타난 것은 바로 포퓰리즘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포퓰리즘


트럼프 지지 유권자 중 61퍼센트가 미국 경제 체제가 불공평할 정도로 권력층에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포퓰리즘의 세계화, 메디치, p.117)


사실, 책에는 휴이롱, 센더스, 영국의 브랙시트와 같은 것을 다루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트럼프만을 다루겠다. 왜냐하면 하나의 사례로 모든 것을 일휘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트럼프가 이용한 것은 대중의 분노였다. 바로, 침묵하는 다수, 백인 하류층과 중산층의 분노가 트럼프의 포퓰리즘에 응답한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느끼는 분노는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양극화 문제였다. 그리하여, 트럼프의 중심 공략은 규제를 완화하고 세율을 줄이며 보호무역지를 펼치고 이민자들을 때려 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특징상 트럼프의 공략은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사이다 같은 일을 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규제를 완화하고 세율을 낮추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론 모형일 뿐이다. 보호무역주의의 경우, 미국은 GDP 대비 수출과 수입의 비율이 약 7.5%와 8.5%이다. 즉, 보호무역지를 한다고 해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단기적으로는 약간의 이익을 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변화를 이룩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끌어 온다고 했는데,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제조업 종사자의 비율은 8%이다. 그에 비해, 서비스업 종사자는 약 80%의 비율을 차지한다. 즉, 아무리 제조업을 활성화시킨다고 해도 미국의 양극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바보같은 소리다. 그와 더불어 미국 내의 이민자들을 때려 잡는 것은 미국 내의 힘 바로 지적인 힘을 감소시키는 행위다. 미국을 이끄는 힘은 당연히 미국인 지식인층도 존재하지만 이민자들의 지적 능력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트럼프의 정책은 대중이 느끼는 분노를 잘 사용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엘리트에 대한 분노만 불러 일으켰을 뿐, 현실적인 해결책은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들이 지적한 이런 문제들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들어냈으며 이런 포퓰리즘이 차기 정부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부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의 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