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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Oct 29. 2017

일본의 오타쿠들, 그들은 누구인가?

<TOKYO IDOLS> 다큐멘터리


Netflix를 구경하다 <Tokyo Idols>라는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일본에서 요즘 유행하는 것은 아이돌 (우리나라의 아이돌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일본의 경우, 가수나 아티스트의 느낌 보다는 부족하지만 성장해 나가는 캐릭터이며 오디션을 보며 메인 스트림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공연을 하면 다양한 스팩트럼의 남성팬들, 마치 삼촌팬들이 아이돌의 공연을 따라 다니고, 자신이 버는 수입을 아이돌들의 굿즈에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삼촌팬들을 오타쿠라고 한다. 사실 이런 문제를 오타쿠들의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치부해버리지만, 일본에서는 아이돌과 오타쿠들의 관계가 사회적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오타쿠라 불리는 일본의 남성들은 누구인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아이돌과 오타쿠들의 관계는 마치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 같았다. 예수는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에게 따라오라고 하자, 베드로는 자신의 생업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오타쿠 남성들은 아이돌을 보면서 그들에게 빠지게 되고, 셀러리맨의 길을 버리고 자영업을 하며, 아이돌을 따라 다닌다. 오타쿠들의 탄생은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1980년에,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미국을 거의 따라 잡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하게 된다. 일본 사회는 디플레이션이 지속되자, 소비가 적어지게 되고,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당연히 실업률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일본 사회에서 일본인들의 자존감은 떨어지게 되었고,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재밌게 보았던 점은 오타쿠들이 아이돌과 사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오타쿠들은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현실적이다. 경제가 악화되며, 경제적 양극화는 심화가 된다. 주류층에 들어가는 사람과 주류층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하게 된다. 주류층에 들어간다는 것은 셀러리맨이 되는 것이다. 사실, 주류층에 들어간다고 돈을 막 많이 버는 것은 아니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타쿠들의 대부분은 주류층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취직을 못하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연애와 결혼을 하지 못하며, 결혼을 하지 않으니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남성들은 아이돌에 열광할까? 오타쿠들이 아이돌로부터 소비하는 것은 바로 청순함(처녀성에 대한 숭배)이다. 오타쿠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에서 처녀성을 상실한 여성은 '강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타쿠들은 '아이돌이 청순하기 때문에 좋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그들의 처녀성에 대한 숭배는 조금 비틀어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자신은 우위에 설 수 없고 미약한 존재이지만, 아이돌이라는 여성 앞에서는 삼촌의 이름으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쾌락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오타쿠들은 노력없이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어떤 이는 과거 여친에게 차였거나, 자신은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규정을 해버린다. 사실, 연애를 하면 시간이 들고, 감정도 쏟아야 하고, 개인적 시간을 가지는 것도 쉽지 않으며, 돈도 나간다. 오타쿠들은 현실의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차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를 맺는 두려움 말이다. 아이돌 사업은 오타쿠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움직이며 그들로부터 돈을 빨아들인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돌


사실 나는 AKB48인가 그런거 잘 모른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몇 백명이 AKB48이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우리나라 버전으로 가져오면 아마 <프로듀스 101>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돌 사업은 소녀들의 꿈을 인질 삼아 돈을 삼키고 있다. 일본에 있어서 여자가 주류가 되고 주인공이 되는 사업은 바로 아이돌 대회가 유일하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이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것은 오타쿠들의 숫자와 응원이다. 아이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오타쿠들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함께 찍는다. 한국에서는 별로 부각되지 않지만 일본에서 악수회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다루고 있다. 오타쿠와 아이돌의 악수는 일종의 성적 접촉을 의미한다. 오타쿠는 악수를 하며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실현시키는 것이고, 아이돌은 악수만으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다. 아이돌들은 아티스트라는 주류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을 한다. 일본에 아이돌의 숫자는 2017년 기준으로 1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아이돌들은 자신을 계속 훈련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이 모습에 오타쿠들이 열광을 하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조용한 사회다. 큰 꿈과 희망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다이나믹함이 없다고 느낀다. 오타쿠들이 아이돌에게서 보는 것은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아이돌에게 투영하는 것이다. 오타쿠들에게 있어서 아이돌에게 빠지는 두 기둥은 앞서 말했듯이, 순수함과 자신의 꿈을 투영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꿈을 이뤄주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이 바로 오타쿠다.



자본주의라는 무대 위에 있는 아이돌과 오타쿠들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은 아이돌과 오타쿠들이 팬사인회를 하는데, 아이돌이 타이머를 1분간 켜놓는 것이었다. 1분간만 아이돌과 오타쿠가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은 오타쿠와 아이돌의 관계는 모두 자본주의적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돌이 타이머를 켜놓고 1분을 측정한다는 것을 까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자본주의는 꿈과 욕망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잠식해 나간다. 아이돌이 되고 싶은 아이들의 꿈을 목숨처럼 잡아 부를 쌓는 도구로 이용하며, 오타쿠들의 성적 욕망과 자아실현 투영을 통해 돈을 갈취한다. 오타쿠들이 아이돌을 만나는 것은 먼저 가상에서 만나고 현실에서 그들을 따라 다니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돌을 따라 다니며 사생팬이 되고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모임 속에서 오타쿠들은 유대감을 느끼고, 자신이 사랑받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일본의 사회학자에 따르면 예전에 오타쿠 문화는 주류 문화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주류 문화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자본주의가 발전해 나갔으며 그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사회로 변모했다. 나는 오타쿠들에게는 자신이 사회의 주류가 아니고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이돌을 따라다니며 아이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알고 있다. 진정으로 오타쿠들이 사랑하는 것은 아이돌을 따라다니며, 아이돌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이런 일본의 아이돌과 오타쿠들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미래를 볼 때, 일본을 참고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10년 이후에는 약간의 다른 형태이지만 Sex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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