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셍텍쯔베리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도대체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하는가? 도대체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과학과 실증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이 전지전능하게 보여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 같이 보였고, 실증주의로 인해 모든 것을 증명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게 보였던 과학은 그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더불어 과학에 대해 반성을 하기 시작하는데, 과학은 그 자체로 선하지 않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과학이 신을 몰아낸 자리에는 공허감 밖에 남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책에 나와 있듯이 어른들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알아보지 못하고 모자라고 착각을 한다. 이와 더불어 조종사인 '나'는 왕자로부터 부탁을 받게 된다. 그 부탁은 양을 그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양을 그려준다. 하지만 우리의 까다로운 왕자는 '나'의 그림에 대해 늙었다고, 뿔이 있다고, 병이 들었다고, 버려버린다. 화가 난 '나'는 마지막에 큰 박스 하나를 그려준다. 그때, 왕자는 미소를 지으며 만족을 한다. 왕자가 이렇게 미소를 지은 이유는 상자 안에 있는 양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왕자는 상자 속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자, 과연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만한 용기가 있을까? 개인과 개인 사이에 믿음이라는 것이 사라져 점점 고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바호밥 나무의 비극
어린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6명의 어른을 만나게 된다. 솔직히, 이 6명의 각각의 특징을 잡아 보는 것도 좋지만 이들의 공통점을 뽑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6명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번째 왕은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다. 즉 명령만 내릴줄 알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독재자라고 볼 수 있다. 두번째, 허영꾼은 오로지 칭찬을 갈구하는 사람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은 텅비어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의 모자 내부가 비어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세번째 술꾼은 자기모순에 빠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술을 먹으면 수치심을 느끼고, 수치심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그 다음 사업가는 100억개의 하늘의 별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이 별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직접 손에 쥐고 있어야지 숫자로 존재하는 것은 그가 소유한 것이 아니다. 등대지기는 자신이 하는 일에 반복을 하는 사람이다. 노력은 하나 삶의 의미를 모르면서 행하는 사람이다. 즉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모르면 행동하는 것을 속된 말로 삽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지리학자는 이론적으로는 빠삭하지만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중에서 어린왕자를 등대지기는 나머지 5명 보다는 좋게 본다. 그 이유는 등대지기가 남을 위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나머지 5명의 공통점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나머지 5명이 나르시스트라는 것이다. 즉, 이들은 자의식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사람들은 외로워 보인다. 자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간은 외로워 진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와 티인의 이해관계에 깊은 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네. 이러한 자각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하루하루 예민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일거수일투족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 되는 것네. 윌리엄 어니스트라는 사람이 스티븐슨을 평가하기를, 그는 거울이 걸린 방에 들어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자기 모습을 비춰 보지 않으면 성치 차지 않을 만큼 한시라도 자기를 잊은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네. 오늘날의 추세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는가. 잠을 자도 나, 잠을 깨도 나, 가는 곳마다 이 내가 따라다니니 인간이 언동이 인공적으로 곰상스러워질 뿐이네. 자신도 갑갑해지고 세상도 고통스러워질 뿐이지. 그러니 마치 맞선을 보는 젊은 남녀같은 심정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살아야 하는 거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츠메 소세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모든 결정을 자기자신이 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라는 존재만을 생각하다보니 당연히 타인과의 거리는 늘어나게 된다. 이 모습은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고독감을 느끼는 모습 말이다. 이렇게 보면 바호밥 나무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아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점점 커질수록 자기자신은 파멸로가는 바호밥 나무처럼 지금 우리 마음 속에 바호밥 나무가 자라고 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할 때이다.
나와의 대화
사막과 하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비행을 하는 조종사와 사막에 추락한 조종사... 이 두 곳은 모두가 고독한 장소이며 죽음이 엄습하는 공간이 아닐까?
어린왕자와 조종사인 '나'는 하늘에서 추락한 존재이다. 하늘에서 추락한 존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마녀의 마녀성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녀라는 존재는 정체성이 불안정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마녀들은 혜성에서 떨어진 존재로 부모가 없고, 이 세상에 의지할 그 누구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뿐이다. 이처럼, 조종사인 '나'나 왕자는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가끔 조종사가 왕자에게 질문을 한다. 하지만 왕자는 조종사의 말을 자주 씹어 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해버린다.이것을 보았을 때, 왕자가 정말 싸가지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은 아주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민을 할 때, 자신이 혼자의 힘으로 하라는 것이다. 언제든 고민은 진지해야 하고, 절실하게 해야만 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고민이 트랜드가 된 사회이다.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나만의 특수한 모습을 찾고자 한다. '자기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면서 사는데, 이것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이라고 생각이 든다. 어떻게 내 안에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또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뭐, 예술가라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날뛰는 자기 계발서는 정말 거지같은 것들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또다른 나를 찾는 치료법을 제시하거나,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바꾸는 책들, 이것은 고민이 트랜드가 된 현대인들에 대한 상술일 뿐이다
관계
우리 세상에서 관계라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어린왕자도 어려움을 겪었었다. 왕자가 살던 행성에서, 왕자가 장미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장미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왕자가 장미로 처음보고 한 말을 "정말 아름답군요!"였다. 즉 왕자는 장미의 외면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장미꽃은 내면으로는 나약하고 사랑을 갈구하고 순진한 존재이지만 외면적으로는 자존심 때문에 허세를 떨고 강한척을 한다. 장미라는 존재는 겉으로는 심술을 부렸지만 그 심술 뒤에는 애정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깨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서로가 너무나 어렸고,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장미의 정원에서 왕자는 쇼크를 받는다. 내가 사랑한 장미들이 이곳에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왕자는 절망에 빠진다. 그동안 자신이 사랑했던 장미가 이곳에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왕자는 쓸쓸한 마음을 가지고 들판으로 나온다. 그곳에서 여우를 만난다. 왕자는 여우를 만나면서 '길들인다.'라는 개념을 배우게 된다. '길들인다'라는 것은 누군가를 자신의 마음에 통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타인에게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여우는 2가지 조건을 내놓는다. 약속은 꼭 지키야하고, 천천히 와야 한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천천히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의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고, 그 사람을 위해 헌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65억 명중 한 명이다. 우리는 평범한 존재이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우리의 역할은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하늘의 별이 될 수 있고, 사막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도 어떤 한 사람에게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준 다는 것은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왕자는 어디로 갔을까?
어린왕자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즉 각자의 몫이다. 나는 왕자가 더이상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라진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조종사가 진정한 자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조종사가 자신을 찾은 것은 진정으로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고민하는 조종사. 조종사가 고민을 해서 찾은 자신은 자신 속에 숨어 있던 또다른 자신이 아니다. 조종사는 어린 시절의 아픔(화가가 되고픈 꿈이 좌절된 것)을 받아들였다. 그 아픔을 잊은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고민을 통해 상처까지 받아들인 것이 진정한 나를 찾은 것이다. 또한, 조종사는 자신이 정말로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이제 더이상 어린왕자는 필요없게 된 것이다. 솔직히, 왕자가 조종사의 분신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조종사가 말하기도 전에 왕자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비행기를 다 고쳤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자신을 찾은 조종사에게는 왕자는 사라져야할 존재였다. 그래서 왕자는 죽었다. 뭐 다른 결말도 있는데, 왕자와 조종사가 타인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결말은 왕자와 조종사의 영원한 관계를 위해서 왕자가 떠났다고 하는 것이다. 왕자가 별에 남아 있으면 언젠가는 나이를 먹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왕자와 조종사의 관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자가 죽어버리면 조종사의 마음에 왕자는 어린시절 그 모습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어린왕자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읽어도 또다른 감동을 주는 것이 어린왕자의 묘미는 아닐까?
https://www.youtube.com/watch?v=r30K7Q2kFyc&t=4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