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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13. 2019

Netflix <킹덤> :좀비와 현실풍자의 이중주

Netflix <킹덤 > 리뷰

넷플릭스에서 조선판 좀비 드라마인 <킹덤>이 등장했다. 1편을 보다 보니까 어느 순간 6편까지 보게 되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새벽의 저주>를 보았을 때, 좀비 영화에 대해 푹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 생각났다. 생존자들이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이 공격하고 그 사이에 인간 군상의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그 후에 <28일 후>, <28주 후> 만화로 나온 <아이엠 어 히어로>를 보며 나름 좀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사실, <아이 엠 어 히어로>가 일본 중심의 좀비 만화였지만 눈길을 끌었던 것은 동양 좀비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킹덤>은 조선시대 좀비물이라는 것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좀비 영화를 리뷰하려고 해도, 좀비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동안의 리뷰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좀비에 대한 논문을 찾아 보았다. 그러니, 좀비에 대한 역사는 역시 서양의 역사와 관련이 많았다.



아이티의 독립과 시작된 좀비


아이티는 원래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아이티의 많은 지주들은 흑인들에에 플렌테이션 농업을 시켰다. 흑인 노예들의 삶은 힘들었고 거주하는 환경도 인간이 살 수 없는 상태였다. 당연히, 흑인노예였으니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은 당연시 되어 있었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물라토라고 하는데, 물라토는 선거권은 있었지만 사회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흑인 사회에 각성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1789년 프랑스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흑인 노예들은 혁명 정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고, 그 중에서 물라토는 식민정치에 대해 불만감을 가지고 앞장서게 된다. 그리하여, 흑인들 사이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성공하게 된다. 그 이후, 프랑스에서 아이티를 다시 점령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으나 종국에 아이티는 독립을 하게 된다. 아이티의 독립은 식민지 국가들에게 불안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식민지로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독립을 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서구국가들과 카톨릭은 안티-아이티, 안티-부두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한다. 아이티인들은 마술을 사용하고, 영아를 살해하며, 식인을 한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그 당시 서구국가들은 카톨릭 및 기독교 중심의 국가들이었는데, 아이티는 반기독교적이며, 신의 뜻에 반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이티에 좀비라는 것은 존재했다. 보커 사제(Bokor)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두 술사하고는 다르다고 한다. 아이티에서는 흑마술이 있다고 믿어고, 인간을 볼 때는 마음과 육체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보았다. 보커 사제는 인간을 흑마술로 되살리는데,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육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좀비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이티에서 좀비가 현실로 있었다고 하나, 확실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티인들은 좀비를 어떻게 보았는가. 아이티에서는 좀비를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티인들은 좀비를 불쌍한 존재로 보았다. 아이티인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아이티의 식민지화와 관계가 있다. 아이티인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곧 자유를 잃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보는 드라마는 죽었고 자유의지를 잃은 존재다. 즉, 자유의지를 잃은 것은 곧 죽은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좀비는 썩어 문드러 진 자아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좀비는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다.


좀비가 할리우드에서 최초로 나온 것은 바로 1932년 <화이트 좀비>였다. 이때 좀비는 현대의 좀비 느낌 보다는 하이티인의 좀비와 매우 흡사하다. 이 당시 좀비는 보커 사제에게 소환을 당해 주인이 있는 좀비들이었다. 그러나, 좀비가 우리가 아는 현대판 좀비로 필름에 나타나게 된 것은 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였다. 이때부터 좀비 영화에는 보커 사제가 사라지게 된다. 사실, 좀비가 주인이 없어진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하이티의 좀비는 신과 기독교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식을 할 때, 예수의 살과 피를 기념하여 성찬식을 하는 것처럼, 좀비는 사람의 살과 피를 탐한다. 좀비는 그동안 보커 사제의 명령을 듣던 존재였다. 그러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보커 사제는 사라지게 된다. 즉, 좀비에게는 신이나 주인이 존재하지 않고, 혼돈 그 자체의 존재가 된다. 이제 좀비는 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후 좀비는 현대 사회의 비판자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새벽의 저주>와 <28주후>에서 좀비는 교회를 더럽히고, 슈퍼마켓을 파괴시키고, 정부를 파괴시켜 버린다. 좀비 영화에서 좀비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혼 없이 일하며 부품같은 삶을 사는 대중, 종교의 억압을 받는 대중, 권력자들에게 억압받는 대중을 의미한다. 이처럼, 현대의 좀비는 노예화, 기독교,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몸부림을 의미한다. 여담으로 이때 좀비가 뛰지 않고 느리게 걷는 이유는 사후경직 때문에 관절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28주후>에서 좀비가 뛰기 시작했다. 좀비의 변천 과정은 의미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좀비 <킹덤>


<킹덤>은 대체 역사다. 조총이 나오고 전쟁을 겪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임잰왜란 이후거나, 양자호란 이후인 것 같다. 즉,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백성에 대한 정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킹덤>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은 바로 죽지 못하는 왕이다. 조선시대에서 왕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왕이 죽게 되면 권력은 붕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씨 가문은 왕을 좀비로 만들어 버린다. 조씨 가문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채위기 위해 자연의 법칙까지 거스르는 일을 했던 것이다. 왕위 계승에서 세자(주지훈)이 아무리 왕위계승자라고 하여도 왕이 되기 전까지는 권력을 누릴 수 없다. 권력을 행사하는 순간 세자는 죽을 수도 있다. <킹덤>의 배경은 조선의 양난 이후로 사회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다툼과 향락을 즐기고 있을 때, 백성들은 굶주리고 죽어나간다. 조씨 가문이 왕을 좀비로 만들고 그 바이러스거 퍼져서 백성 즉 민중들을 좀비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정치가가 정치를 못하고, 민생에 무관심하면 백성은 권력에 저항하게 되고,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비들은 모두 뇌가 없고, 먹을 것에만 집착한다. 그들의 외모는 모두 같아진다. 성난 민중은 좀비 바이러스에 의해 파시즘 즉 전체주의화가 될 수 있다.. <킹덤>은 대한민국의 현실풍자를 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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