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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Jan 25. 2019

유튜브에서 '윾튜브'라는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윾튜브의 몰락을 바라보며,



윾튜브의 영상을 처음 보게 된 것은 2018년 9월이었다. 그 당시, 플랫폼을 유튜브로 옮겨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구독자, 조회수 컨텐츠 등을 연구하고 있을 때여서, 윾튜브의 영상을 보았다. 처음 본 영상은 유튜브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유튜브를 시작하라는 동영상이었다. 자신 같은 남자도 유튜브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필역하는 영상이었다. 그리하여, 윾튜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그의 채널을 보았다. 윾튜브의 초기 컨텐츠는 마리오 게임이었다. 그러다가, 가면을 쓰고 20-30대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컨텐츠를 제작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극단적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워마드를 까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윾튜브의 정치 성향은 보수였으며, 안티페미니스트적인 면모를 보였다. 일종의 프레임을 걸었는데, 문재인 정부와 워마드를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 버렸다. 즉, 극단적 페미니즘과 진보를 묶어 버리고, 남성과 보수를 하나로 묶어 버렸다. 사실, 워마드는 골칫거리다. 개인적으로 워마드는 여자 일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워마드가 설치고 있는 가운데, 남성들의 분노는 계속적으로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20-30대 남자들의 경우, 워마드와 같은 극단적 페미니즘 때문에 분노는 계속 쌓여 가는데, 이에 대해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아마, 마재TV가 최초로 워마드에 대한 비판을 날린 유튜버였다.  그런데, 그것을 윾튜브가 도맡게 된 것이다. 윾튜브의 영상을 보며 느낀 것은 논리의 비약도 있지만 타유튜버에 비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많이 보여왔다. 그리하여, 많은 남성들의 우상이 되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장르를 발굴했는데, 바로 가면을 쓰고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윾튜브를 따라하는 수많은 가면 유튜버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게 되었다. 수많은 가면 유튜버들은 윾튜브가 만드는 컨텐츠를 재생산하며, 윾튜브 사단이 되었다. 많은 가면 유튜버들이 안티 페미니스트가 되어 극단적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그런 윾튜브를 더 크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데블스TV를 저격한 것이었다. 데블스TV는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유튜버였다. 윾튜브가 데블스TV를 공격하자, 수많은 가면 유튜버들도 윾튜브에게 동조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데블스TV가 페미니즘을 지향하며, 오히려 남녀갈등을 조장하면서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을 가면 유튜버들이 비판하게 된다. 윾튜브와 가면 유튜버들이 2018년 11월 말 쯤 데블스TV를 공격하자, 구독자수는 계속 오르게 된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윾튜브가 11월부터 구독자가 오르자, 데블스TV의 구독자수도 함께 올라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유튜브의 12월은 그야말로, 남녀갈등의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였다. 12월까지 윾튜브는 50만 구독자를 얻게 된다. 그와 동시에, 가면 유튜버들의 구독자수도 점점 늘어나게 된다. 2019년 1월 21일 쯤에 윾튜브는 한의사들을 조롱하는 영상을 올리고, 60만 구독자를 얻게 된다. 그런데, 주부형이라는 유튜버가 윾튜브의 정체라는 영상을 올리게 되고, 윾튜브가 과거 디씨에서 풍동이라는 유저였다는 폭로를 하게 된다. 풍동이라는 인물은 과거 박원순 시장의 아들 박주신의 병역문제를 비판하는 노래를 만든 유저였다. 주부형은 윾튜브와 풍동의 목소리가 매우 비슷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윾튜브의 얼굴과 신상에 대해 궁금해 했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풍동과 윾튜브의 공통점을 찾아 나서게 되고, 이는 윾튜브 몰락의 시발점이 되었다. 며칠 후, 윾튜브는 자신이 풍동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유저라고 밝힌다. 그런데, 과거 윾튜브가 풍동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썼던 글들이 문제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일반 상식을 뛰어 넘는 글들을 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윾튜브는 구글에게 3번의 경고를 먹고, 윾튜브 계정이 폭발하고, 그와 동시에 그가 운영하던 페이스북 페이지들도 모두 폭발했다. 그 당시 수많은 가면 유튜버들이 윾튜브에 대해 비판을 하기 시작했고, 윾튜브는 네이버 실검에 뜨며, 공중파 방송에도 보도가 되었다. 그렇게 윾튜브는 몰락하게 되었다.



윾튜브의 멘탈리티와 사람들의 불안


카광이라는 유튜버가 윾튜브에 대해 설명을 한 영상이 있다. 그때, 윾튜브는 카광과 함께 있는데, 끝없이 핸드폰만 보며 자신의 페이스북만을 보았다고 한다. 윾튜브를 보며 느낀 것은 윾튜브가 매우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방송의 말투를 볼 때, 그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들어있지 않았다. 사실, 윾튜브를 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해명하는 영상에서도 광고가 달리고, 영상 밑에 자신의 페이지를 구독하라는 글까지 있었다. 카광이 이야기 하기에 윾튜브는 자신의 외모에도 별로 관심이 없으며, 전통적인 것에 대해 눌리지 않는 성격이라고 하였다. 사실 나는 윾튜브를 보며,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를 떠올렸다. 사회의 제도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남을 비판하고 조롱할 때, 넘지 말아야할 선을 쉽게 넘는 것을 보면, 그는 공감력이 평범한 사람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윾튜브를 보면 또 기억이 남는 것은 <아메리칸 호러스토리> 시즌7의 내용과 매우 흡사했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호러스토리> 시즌7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되고, 컬트라는 종교를 세운 남자가 나온다. 그는 윾튜브처럼 여자를 혐오하며, 진보, 외국인들을 적으로 세우며, 나중에는 한 지역의 시의원이 되기까지 한다. 컬트를 세운 남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산 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에 갈등과 불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20-30대 남성들은 지금 매우 불안하다. 인구의 구조적 문제로 취업이 되지도 않고, 매우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다. 또한, 문재인 정권 이후 구심점을 잃은 보수들의 불안 또한 존재했다. 남성들과 보수의 불안한 마음을 알아 본 윾튜브는 끝없이 선동을 하고 보수와 남성 그리고 진보와 여성의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행적으로 그는 몰락하게 되었다. 윾튜브가 다시 복귀할지 아닐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사회가 혼란스럽고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선동당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윾튜브 사건은 유튜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유튜브는 자신이 관심있고 좋아하는 것만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곧 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 싶고 싶은 우리에게 새로운 윾튜브들은 다시 나타날 것이다. 정말 무서운 점은, 새로운 윾튜브들은 윾튜브의 선례를 보고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우리에게 살포시 다가와 우리에게 불안을 심어주고 선동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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