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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Jul 09. 2019

취직하려면 인문학 자격증 시험도 봐야해?

지겨운 인문학의 위기에 대하여


2019년 10월 한 언론사에서 대한민국에서 제 1회 인문학 자격증 시험을 주최한다고 한다. 진짜 놀랍고 신비한 대한민국이다. 인문학을 가젹증으로 만드려고 시도하는 사회는 아마 전세계에서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인문학 자격증 시험을 본다고 하니 그 목적을 보았다. 아래에 인문학 시험의 취지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사실 언론사에서 밝힌 취지 자체가 매우 아상해서 번역을 해보았다. 


"글로벌 시대입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글로벌 이슈는 우리 국민에게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때문에 진정한 글로벌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인의 역사와 사유(철학, 문예 등)등에 대해 교류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창의융합적인 사고를 키우고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사고와 통찰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번역)

"지금 글로벌 시대야!  We are the world이기 때문에 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해! 그래서 진정한 글로벌 시민(?)이기 되기 위해서는 서양 철학이나 고전에 대해 교양이 필요해 외국인들 앞에서 Do you know 피카소, 반 고흐를 외쳐야 하니까! 그리고 4차산업혁 시대가 나도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문학적 사고를 중요하데 알겠지? (응시료는 38000원이야)"


사실 따지고 보면 앞 문장에서 인문학은 교양의 영역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두번째 문장에서 인문학은 통합적이로 융복합적인 의미로 사용을 하고 있다. 즉, 언론사에서도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고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인문학의 정의에 대해 집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전)홍익대 진형준 교수님은 인문학을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정의내렸다. 즉 인문학은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다. 이 언론사에서 인문학 시험의 취지에 인간이라는 말이 한 번이라도 나왔으면 그래도 조금은 희망이 보였을 텐데, 인문학 자체의 본질을 전혀 보지도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인문학 자격증 시험이 나오는 것은 인문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사회가 문제인 것인데 도대체 이런 사회는 어떻게 도래하게 된 것인가?



인문학 자격증 시험이 나와서 또 인문학의 위기야?


많은 인문학도들이 인문학 자격시험을 본다고 하며 탄식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언제나 인문학계는 인문학 자격증 시험이 나오면 비슷하게 나오는 레파토리가 '인문학의 위기'라고 탄식만 할 뿐이다. 그런데 탄식만하고 끝나며 어떤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가 신자유주의 시대와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며 인문학을 수단으로만 본다고 비판을 가한다. 언제나 문제를 외부나 남에게서 찾는 것은 아주 쉬운 방법이다. 당연히 신자유주의 시대와 자본주의 시대의 사고가 인문학 시험을 만든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문학의 위기는 내부에 존재한다.  가끔 취미 삼아 내가 읽은 책의 논문을 검색해서 구경을 한다. 그런데 인문학 논문을 보다보면 한글이긴 한데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을 때가 많다.  나는 이런 논문들을 보며 인문학도의 자존심이 있다고 느낀다. 학부 때 인문학을 전공했고 글을 쓰며 인문학 부심을 부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내 인문학도의 자존심을 복기해 보면 '경영학 같은 실용학문은 숫자만 사랑하고 인간 내면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보지 못해, 그리고 글을 조금 어렵게 쓰면 내가 좀 똑똑해 보이겠지?'라는 자만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나의 인문학에 대한 자존심은 20대 때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철부지 아이의 모습이었다. 감히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인문학도들이 탄식하는데는 인문학 엘리트주의가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쓸 수 있는 단어나 문장도 괜히 현학적으로 쓰고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쓰는 것은 교만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없는 사회를 위하여!


인문학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상아탑 속에 숨어 있으며 대중과 소통을 거부한 인문학자들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본질을 알지도 못한 체 사이비 인문학 강사들이 날 뛸 때 인문학자들은 모두 탄식만 하며 대중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 인문학 자격증 시험이 나왔을 때도 인문학도들은 탄식을 하며 끊임없이 사회와 대중을 비판할 것이다. 그럴 시간에 인문학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책과 논문을 쓰며 소통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교 때 배운 인문학에 대해 생각해보면 인문학은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이며 자유로운 사고를 배우는 학문이다. 지구 상에 수많은 인간이 존재한다. 즉, 인문학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그들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지금 인문학은 대중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과거의 텍스트에 묶여서 현실의 변화에 대해 보수적으로 반응을 한다. 인문학 자격시험이 나온 것을 통해 상아탑 속의 인문학도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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