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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20. 2016

이제부터 파리와 나의 대결이야 !

<고리오 영감> 오노레드 발자크


사실주의의 매력이 있을까?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었다. 사실주의 소설이라서 묘사가 세부적이였으며, 돈의 액수와 같은 것들이 정말로 정확했다. 근데, 사실주의라는 것이 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인간의 상심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묘사를 한다면,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게 한다. 사실주의는 마치 사진과도 같은 것이다. 현실을 정확히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사진의 묘미는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주관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사실주의 소설의 묘미도 바로 이것이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여주려 하지만 그 객관성 안에 작가의 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사교계와 그 그림자


<고리오 영감>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으젠 드 리스티냐크라는 청년이 파리로 와서 사교계에 입문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고리오 영감을 만나고 그의 딸들을 이용하여 성공을 하려 한다. 이것이 <고리오 영감>의 큰 맥락이다. 파리의 사교계는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움이 묻어나온다. 누구나 그곳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싶어하며 사교계 인사들을 이용하여 서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한다. 으젠은 시골 청년으로 공부를 하다가 사교계를 이용하여 성공을 하려고 한다. 그가 사교계를 알면 알수록, 사교계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부는 썩어가는 형태였다. 아버지의 모든 돈을 다 써서 자신의 우아함을 과시하려는 레스토 백작 부인이나, 으젠과 서로를 이용하려는 뉘싱겐 남작 부인이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교계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보케르 부인의 집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본다. 보케르 부인의 집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이곳 또한 서로에게 냉혹하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타인들을 무시한다. 즉,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을 통해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세상에 먹혀가며 세상에 휩쓸려 사는 삶을 묘사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의 사랑


으젠은 보케르 부인의 하숙집에서 고리오 영감을 만나게 된다. 으젠은 고리오 영감이 레스토 백작 부인과 뉘싱겐 남작 부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으젠은 고리오의 광적인 사랑을 보게 된다. 고리오 영감이 죽어가면서까지 그 딸들을 찾지만 딸들은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을 때, 고리오 영감의 사랑을 놀랍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사랑인데 딸들이 나쁜 여자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겉만 본 느낌이다. 고리오 영감의 경우 그는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것이다. 즉, 고리오 영감은 사랑을 돈으로 생각하며, 자식들을 이해관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서 부모는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한다. 당연히 돈도 그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고리오 영감과 그 딸들의 사랑에서 돈이라는 것이 사랑을 초월한 것이다. 즉, 딸들의 관점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돈을 주는 기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리오 영감이 외롭게 죽어간 것이다. 고리오 영감이 이런 실수를 범했던 것은 그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그는 살기 위해 돈을 벌어왔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즉, 사랑을 어떻게 주는지에 대해서는 고심을 해보지 못했으며 그것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떻게 사랑을 줄지 몰랐던 노인의 모습과 아버지의 사랑을 돈보다 못한 것으로 본 딸들의 모습을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파리와 대결을 꿈꾸는 남자


으젠 드 리스티냐크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사교계에 입성하여 타락을 맛보고 다시 정신는 듯 하다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인물이다. 마치 소년이 남자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으젠과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보트랭이라는 사나이다. 이 사내는 탈옥수로 보통 파리시민처럼 살고 있지만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으젠을 유혹해서 타락시키려 하였다. 보트랭의 경우 그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그것을 이용한다. 이와 반대로 으젠은 마지막에 양심을 회복하며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정말 중요한 것이 한 사람이며, 도덕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느낀다. 으젠은 고리오 영감의 장례식을 홀로 치루며 생각을 한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대결이라는 것은 혁명을 일으키거나 사회를 파괴시킨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그는 장례식을 마치고 뉘싱겐 남작 부인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가는 장면 때문이다. 즉, 그가 말하는 것은 파리라는 괴물이, 사회라는 괴물이 인간을 유혹하고 영혼을 불태우려 하지만 으젠은 사회에서 양심을 팔지 않고 도덕적이며 타락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젊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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