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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29. 2016

사람을 고치는 글쓰기를 한 루쉰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바라 볼 때가 있다. 루쉰의 <아침 꽃 저녁에 줍다>라는 제목은 참 매혹적인 제목이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수많은 아침 꽃들을 덜어트린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우리의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에 잠길 때가 있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는 <아Q정전>을 썼던 루쉰의 자서전과 같은 작품이다.


내가 우매해서 아버지를 죽게했다.


루쉰의 <아침 꽃 저녁에 줍다>의 초반부에는 어린 루쉰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시절에 쥐를 잡던 이야기, 축제에 가려고 애를 쓰던 루쉰 등, 그의 어린 시절의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어린시절 첫 고비를 대면하게 된다.


아버지!” 나는 계속 불렀다.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지금도 그때의 내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다. 그 소리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아버지에 대한 최대의 잘못이었던 것같이 생각되는 것이었다.


루쉰의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어린 루쉰은 무당의 굿 즉 민간요법으로 아버지를 치료하려고 한다. 하지만, 무당의 굿이 어떻게 아버지를 치료하겠는가? 그리하여, 어린 루쉰에게 마음의 상심이 생시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를 살리지 못한 어린 루쉰의 슬픔이었다.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병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없는 우매함을 깨우치게 된다. 이때부터 루쉰은 의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는 우매한 중국인들을 고통으로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서양의 의학을 들여오는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중국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 듯 하다.


일본 유학과 후지노 선생님


루쉰의 근대 의학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루쉰은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충격적인 일이 또 벌여진다. 그것은 학교에서 TV를 시청했는데, 일본군들이 중국을 정복하고, 몇몇 중국인들을 처형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루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처형 장면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이 자신의 동족들이 죽어가는데 그것을 보고 웃으며 조롱하는 모습이었다. 루쉰의 마음에는 얼마나 큰 슬픔이 있었을까? 그때 루쉰은 다시 마음을 먹어 중국인들의 신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고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런 점을 또한 암시하는 것이 루쉰의 교수님이었던 후지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후지노 선생님은 일본 교수로, 루쉰의 레포트와 페이퍼를 빨간 펜으로 고쳐주는 교수님이었다. 이는 나중에 루쉰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루쉰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후학들의 글을 고쳐주었기 때문이다.



글과 문학이 의학보다 사람을 고치는데  중요하다


루쉰은 자신의 문학을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다. 철로 된 집이 있는데 그곳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그런데, 그 철로된 집이 불타기 시작하고 밖에서는 열수 없지만 안에서는 열 수 있다. 루쉰은 자신이 그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이 깨어날 때까지 열리지 않는 문을 계속 두들길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루쉰에게 있어서 무식한 중국인들의 정신을 고치는 것은 그의 소명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문필가가 되었고 많은 중국인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힘썼다. 아름다운 제목이다. '<아침꽃 저녁에 줍다> 마지막으로 왜 그의 글이 10개 정도의 삽화로 되어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몇 가지 사건들과 몇 가지 선택들이 나를 지금의 나 되게 만드는 것이다. 루쉰이 밤이 되어 뒤를 돌아보니 지금의 그로 만든 10개의 꽃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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