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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Mar 29. 2016

사과 나무를 잘 기르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1) : 정범모 교수의 공학적 개념

대한민국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것이 단지, 좋은 직장을 가지고 편하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 슬픈 것 같다. 그래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비록, 이번에 쓰여질 글들은 이론적일지라도, 교육의 목적을 알고, 공부나 가르침에 임하는 것과 목적을 모르고 임하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들의 중심에는 바로 이홍우 교수님의 <교육의 개념>을 중심으로 쓸 것이다. 이 책에 나온 교육적 개념을 몇몇 소개하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교육의 공학적 개념


정범모 교수의 공학적 개념을 쉽게 풀의하자면 사과나무를 잘 기르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이다. 공학적 개념으로 교육을 본다는 것은 조작적 정의를 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이 된다.  그렇다면 조작적 정의란 무엇인가? 조작적 정의란, 사람이 확인 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상의 진위 여부를 판단 할 수 있는 정의를 말한다. 이렇게 말하니 조작적 정의라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예를 들겠다. 가령, 사람들이 지능을 검사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IQ검사를 받는다. 이것은 인간의 보이지 않는 지능을 숫자로 표현한 것으로 이것에 따라 인간의 지능을 평가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정범모 교수가 보는 교육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진위를 따지 수 있고 증명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Program을 짜는 것... 마치 사과 나무를 기르 듯...


정범모 교수의 관점에서는 교육이라는 것은 사과나무를 키우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정범모 교수의 공학적 개념은 사과나무를 키울 때  사과라는 씨앗은 이미 존재하니 그 씨앗을 어떻게 잘 키우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즉 다시말해, 교육의 목적이 있은 후에 공학적 개념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가령, 영어를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 학생을 영어를 잘하게 만드는데 정범모 교수의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다. 정범모 교수의 관점은 교육이 있은 후 어떻게 학생이 변하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Program은 각각의 목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정말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가?'

그때 아마 정범모 교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문제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 못 만드는 것이 아니냐? 그럼 내가 Program을 짜줄께!'

아르바이트의 목적 VS 인생의 목적


이렇게 본다면 공학적 개념은 완벽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의 색안경을 끼는 것이다. 즉 공학적 개념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다른 것은 흐리게 보일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공학적 개념이 못보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교육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목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생각해 알바의 목적과 인생의 목적에 대해 대조해 보면 놀랍고 신비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알바의 목적은 무엇이냐'물으며 십중팔구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그에 비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냐'물으면 거의 말을 못할 것이라 믿는다. 이 두 질문의 차이점을 알겠는가? 첫번째 질문은 우리가 이미 답을 알고 있고 시작하는 것이고 두번째 질문은 우리가 답을 찾아가며 죽을 때 까지 알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첫번째 질문에서 목적은 수단과 목적의 관점이 강하다. 즉 목적이 뚜렷하니 수단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두번째 질문은 가치의 질문으로 가령, 교육의 목적도 이것과 비슷하다. 여기서 수단은 단일하다.


이런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정범모 교수의 공학적 개념에서 가치는 중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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