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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May 24. 2016

우리는 망각 속에 살아가는 포로들이다.

오오카 쇼헤이 <포로기>


과거의 자신의 진실을 부정하는 것만큼 오늘 날의 자신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치유가 아니라, 병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라는 책은 쉽지가 않다. 왜 이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기가 쉽지는 않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여러 번 다독하면 조금은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느낀 것이지만 책을 읽으며 이야기라는 수수께끼 속에 숨어 있는 저자의 메시지를 읽어내기란 힘든 것 같다. 결론은 자서전은 어렵다.


나는 이방인의 관점에서 나의 세상을 바라 보겠다.


오오카 쇼헤이가 포로기에서 보인 모습은 어떻게 보면 까뮈의 책에서처럼 '이방인'의 관점에서 책을 쓰려고 노력한 것 같다. '나'라는 존재를 국가로부터 거리를 두고, 민족으로부터 두고, 전쟁으로부터 그 거리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인 병사를 쏘지 않은 이유를 자신의 아름다운 도덕심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이유를 하나하나 해부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모습을 보면, 쇼헤이는 나름 자기 자신 또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자신이 젊은 미국인 병사를 살려준 것은 미군의 아버지 때문이다. 누구나 자식을 잃으면, 슬퍼하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쏘지 않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처럼 오오카 쇼헤이는 자신을 제 3자의 입장으로 분리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과 자신을 바라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이렇게 자신이 처한 2차세계 대전의 모습과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감했던 것이 그의 글에 힘을 주는 것 같다.



포로 그 타락의 가벼움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포로'라는 존재가 이 책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오오카 쇼헤이는 포로라는 존재를 일상에 적응하여 '타락'한 존재로 정의를 내린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군들은 전쟁을 하는 이유가 일본과 천황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움에 나간다. 열심히 싸우고 포로로 잡히게 된다. 포로가 되는 순간 일본의 군인들은 타락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미군들은 일본군 포로들에게 자신들의 병영보다 좋았던 수용소를 제공해주고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준다. 일본군 포로들은 처음에는 미국인들의 이런 호의를 거절하다가 조금씩 포로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적응을 시작하면서 일본군인들은 자신들의 목표와 꿈을 잊고 자신이 누구였는지까지 잊어버리며 삶을 살아간다. 또한 재밌는 것은 포로들이 수용소 안에서 나름의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쇼헤이는 글을 쓰다가 포르노 작가가 되기도 하고, 많은 지식인들은 담배를 화폐로 사용하며 도박에 자신의 삶을 걸어버리는 모습도 보인다. 쇼헤이의 눈에 이들은 더 이상 군인이 아니라 포로 그 자체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본연의 의미를 잊은 우리는 타락한 것이다.


<포로기>의 진 면목은 포로들의 이런 모습이 포로들에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오오카 쇼헤이는 포로들이 수용소에서 하루 하루 일기를 써내려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기라는 것은 그 당시 일본에서 유행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일기를 쓸 때, 정말 열심히 정성을 들이지만 어느 순간 그 글쓰기는 타성이 붙어서 그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포로들의 일기는 일본 대중의 일기와 연결이 된다. 일본인들은 패망을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인들은 과거의 패망에 대해서 잊어 버리게 되고 점점 망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을 한다. 오오카 쇼헤이의 이런 비판은 자신들이 전쟁을 했다는 것 조차 망각해버리는 시대에 대해 자성의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쇼헤이가 말했듯이 과거의 진실은 지울 수 없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망각하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아니, 우리 민족이 무슨 일을 행했는지, 그것에 대해 기억을 못하는 것은 타락이다.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 읽으며 생각한 것은 두 가지다. 첫번째는 나의 글쓰기와 두번째는 우리 나라의 역사의식이다.  첫번째로 글을 쓴 다는 것은 고된 작업이다. 아직도 기억을 한다. 처음에 책을 읽고 서평을 썼을 때 마음이 두근 거리며 설랬던 그 마음...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이 몇 년이 흐르고 어느 정도 틀이 생기고 어떻게 글을 올려야 하는지 감이 잡히니까 글이라는 것을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타락했으니 다시, 비상해여지...

두번째로 역사 의식인데 최근에 설현의 역사의식 문제가 있었다. 솔직히 사건이 복잡하지만 간단히 내 생각을 적으면 무식은 죄가 아니다. 네티즌들의 말도 옳지만 너무 마녀 사냥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솔직히 고백하지만 국사가 1등급이었고 한국사능력검증시험이 1급이다. 이렇게 보면 내가 역사의식이 있을까? 나는 찍끼를 잘한 것 뿐이다. 역사의식이라는 것은 역사 즉 과거를 통해서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아가는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번 설현 사건을 통해서 확실한 것은 그녀가 무식한 것이며 역사의식을 마치 수능에서 답찍는 국사로 평가한 네티즌들이 과연 역사의식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았을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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