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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Feb 13. 2018

잘들어가

 다시 만난 날, 누나는 내가 오스카 와일드를 닮았다 말했다. 우린 와인 2병을 다 비우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약속했다. 집에 데려다 준다는 내 말을 한사코 거부하던 그녀는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말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나는 매달리며 오늘 밤은 내 옆에 있어달라 청했다. 밤이 아깝지 않느냐고, 내가 아깝지 않느냐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혼자 술을 먹는다. 외로움을 타서도, 고독을 즐겨서도 아니다. 그냥 인생을 때우는 것이다. 진통제를 맞는 것이라고 말을 하면 이해가 쉬울까. 그런 내 옆에 어떤 여자가 앉았다. 그저 내 옆자리만 비어서 앉은 것 뿐이다. 나를 신경도 안쓰는 듯 했다. 나는 그보다는 약간의 관심이 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내 머릿속에다, 불안한 인생의 밑빠진 독에 술을 들이부었다. 어쩌다 얘기가 붙었다. 그녀는 과거의 이곳에서 당신을 본 적이 있다고, 옛날과 스타일이 달라졌는데 이게 더 잘어울린다는 둥, 얘기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각자 처음 보는 서로에게 점점 매력을 느끼며 우린 인간실격을 논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애도했다. 우리는 둘다 신발에 집착했고 술을 좋아했다. 어느덧 취한 나는 자연스레 그녀의 호칭을 누나로 바꾸었고 누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밖에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던 와중에 나는 말했다. 나와 클럽에 가지 않겠냐고, 오늘 밤을 시끄럽게 때우지 않겠냐고,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지 않겠냐고. 누나는 웃으며 승낙했다. 나도 웃으며 누나의 손을 잡아 끌었고 시큐리티는 우리의 손에 도장을 찍어줬다. 가득찬 클럽 안은 시끄러웠다. 서로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그곳에서 우리는 대신 몸으로 대화했다. 내 앞에 있는 너는 너무 매력적이라고, 오늘은 집에 가기 싫다고.

 누나는 기어코 버스를 탔고, 나는 그것을 끝으로 누나를 내 맘속에 묻었다. 잡아 말리는 나를 뿌리치며 누나는 버스를 탔다. 우리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이 났다. 뒤늦게 나는 그런 누나가 고마웠다. 밤은 아까워할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아까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하룻밤을 때우는 것은 좋지만, 누나로 때우고 싶지는 않았다. 누나의 버스가 멀어지고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시끄러운 클럽을 나와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인간 실격을 논하지도,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애도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자신의 불우함을 어필하며 애정을 갈구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매력을 끌기 위한 어떤 공작도 부리지 않았다. 우린 단지 걷기만 했다. 침묵이 이어지다 누나가 말을 열었다. 술이나 한잔 더 하자고.

 누나를 보내고, 버스가 멀어지고 난 후 잡은 택시가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밀렸다. 좌회전 깜박이를 두 번이나 놓쳤다. 밀렸던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눈물을 참으며 나는 택시 기사에게 방향을 지시했다. 내 인생의 방향도 모르면서. 주제넘은 나는 결국 눈물을 흘렸고 나에게 자꾸 말을 걸던 기사는 입을 다물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메시지가 와있었다. 그냥, “민성아 잘들어가.”

 술이나 한잔 더 하자고 했지만 그 새벽에 연 술집은 많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 다니다 지친 나는 누나의 집으로 가자 말했다. 누나는 깔깔깔 웃으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그저, 서로가 잘들어가기를, 서로가 존재하지 않는 서로의 세상으로 잘돌아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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