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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Feb 14. 2018

폭죽 소리

 폭죽 소리가 들린다. 간간히 들리는 웃음 소리와 여러 소음은 멀리 떨어진 여기서도 꽤나 선명하게 들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매우 조용하기 때문이다. 내 내면도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원래 이렇게 고요할까. 갑작스러운 죽음은 예고된 죽음 보다는 훨씬 불행한 것이다. 예고되고 의도적인 죽음은 적어도 자신의 내면을, 과거를 그리고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을 우리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절벽에 누워있는 나는 항상 무서워 했던 검은 바다의 파다 소리 마저 평화롭게 들린다. 그리고 나는 예고된 죽음의 선물인 사유를 시작한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명예로운 죽음이고 싶었다. 명예롭진 않더라도, 최소한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죽음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갸결국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선택했다. 다양한 생각이 맘에서 교차되지만 결론은 하나다. 적어도 죽음 직전의 상황에 나에게 평화가 찾아왔구나.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던 내가 드디어 죽음으로서, 아니 죽음에 대한 결심으로서 평화로워 지는구나.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막상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망설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담배를 피며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 불명예스럽겠지만, 평화로운 죽음이다. 손가락질 당해도,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렇게 나는 담배를 태우며 내 발 밑에 있는 바다를 본다.

 폭죽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웃음 소리도 끊이질 않는다. 내 사유를 방해하는 소리가 처음엔 거슬렸다. 하지만 나는 이를 통해 내 사유를 확장시키게 되었다. 지금 모래사장에서 폭죽을 사람들의 인생을 생각한다. 그들의 죽음을 상상한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보냈고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웃고 있다. 폭죽 터트리는게 뭐가 그리 재밌는지. 그들의 인생에 아무렇지도 않게 잊혀질 것이 분명한 페이지. 하지만 그들은 지금 웃고 있다. 나라고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해안가에서 폭죽을 터트린 적은 없지만 높은 빌딩의 옥상에서 누군가와 손을 잡고 폭죽놀이를 보며 희열을 느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터지는 폭죽을 배경으로 키스를 했다. 내 인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니,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는 인생의 페이지다. 하지만 곧 잊혀질 것이 뻔할 걸. 아니 오늘의 나는 여기서 오늘로 끝마칠 셈이니, 잊혀진다기 보단 무로 돌아갈 것이 뻔할 걸.

 나는 언제나 인생은 비극이라 생각했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본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저들과 나 처럼 폭죽이 터질 때 나는 희극을 연기하는 희극지왕이다. 가까이서 보더라도 불행은 존재하겠지만 나는 쾌락을 조금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인생을 비극이라 생각하는 나는 결국 결론을 지었고 여기에 와서 담배를 피고 있다. 폭죽을 터뜨리는 그들에 대해 조금 더 상상한다. 그들은 미시적인 쾌락을 즐기고 있다. 어쩌면 내가 얻었던 쾌락에 비하면 소박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늘이고 그들은 햇볓 아래 즐기고 있다. 나는 지금의 내 사유에 약간의 쾌락을 얻고 있지만, 결국 나는 지금 그늘에 있다. 그늘에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 한 갑을 다 피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의식일테고, 어찌 보면 비겁함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이 무서워 그것을 늦추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다. 한 갑을 다 피고 나면, 나는 숨을 쉬지 못하는 물 속에 잠길 것이다. 아니면 암석에 부딪혀 즉사할지도 모르겠다. 뭐 아무짝에야 상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담배 한 갑의 남은 갯수를 세고 있다. 

 소소한 행복을 무시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게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소소한 행복을 강렬히 원하게 된다. 폭죽 소리는 그 도화선이 된다. 고요했던 마음이 요동 친다. 나도 폭죽을 터뜨리고 싶다. 나는 모든 것을 다해보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많은 환희를 놓치고,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저 폭죽을 터뜨리는 이들은 가족일지도 모른다. 아기는 신나서 까르르 웃고, 부모는 신난 아이가 너무나 귀여워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결혼을 하고 싶다. 나도 아기를 낳고 싶다. 

 결국 비겁한 나는 도망갈 구멍을 생각한 것이다. 나는 아직 죽기에는 아깝다는 어찌보면 허황된 생각을 하며 절벽에서 걸어 내려온다.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는 거리에 나왔다. 을왕리의 바닷가는 식당들의 네온 사인으로 환하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는 담배가 다 타 들어가 손가락이 데일 뻔할 때 까지 담배를 피었다. 미루고 미뤘던 예고된 죽음의 약속이 끝났다. 나는 꺼놨던 핸드폰을 다시 킨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나는 그냥, 을왕리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엄마는 너털 웃음을 지으며 무슨 변덕이냐고, 전화기가 꺼져 있어 신경쓰였다고 한다. 나는 그냥, 폭죽을 터뜨리고 싶었다고, 나는 그동안 내내, 항상, 간절히 폭죽을 터뜨리며 웃음을 짓고 싶었다고. 그래서 여기에 왔다고. 하며 눈물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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