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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Dec 21. 2020

브레이킹 배드

 자다 일어나니 목이 칼칼하다. 내 자그만 원룸은 암막커튼 덕분에 시간을 잊게 한다. 얼마쯤 잤을까. 커튼을 연다. 햇빛이 가득하다. 다시, 커튼을 친다. 언제쯤 잠들었을까? 갑자기 올라오는 역함에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낸다. 물을 마시고 티비를 튼다. 두둥 하는 소리와 함께 ‘Netflix’가 화면에 채워진다.. 요즘 티비엔 고향이 없다. 예를들면, 원래 티비란 어쩌다 틀면 5번 SBS, 11번 MBC가 나와야 한다. 그렇게 지상파를 넘겨보다 케이블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OCN에서 하는 ‘인크레더블 헐크’를 1시간 5분 쯤부터 본다거나, 이런 일이 없는 것이다. 선택을 강요받는다. 나는 인도받아왔다. 평생에 걸쳐... 흔히들 보는 브레이킹 배드나 보면서 맥주마시는 주말을 상상하지만 흔히들 보는 것을, ‘보기로 결정’하는 것이 막막하다. 더 재밌는 것을, 최고로 재밌는 것을 보자는 심리는 아니다. 나는 그냥, 미룬다. 오늘도 한 영화를 ‘보고싶어요’에 등록한다.


 나에겐 주말이 없다. 세상엔 주말이 있지만, 나에겐 토, 일요일이란 의미가 없다. 나에겐 숙취가 해소된 시간과 잠들어있는 시간, 숙취로 고생하는 시간 밖에는 없다. 숙취가 해소된 때에 나는 술을 마시며 글을 쓴다. 잠들 때는, 이미지를 그린다. 자의는 아니지만 나는 글의 소재를 꿈에서 많이 찾는 편이다. 꿈을 많이 꾸는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오늘도 긴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어린 여자아이였는데, 마치 내 딸인 듯했다. 백번 넘게 공이 오간 후,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공이 너무 빠른 것이다. 내 글러브에 뻥!뻥! 하고 들어오는 공은 점점 무거워진다. 내가 던진 공은 점점 멕아리 없이 땅에 떨어져 여자아이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자 눈물이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결국 아이 앞에 공이 도달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공은 계속 날라온다. 뻥! 뻥! 나는 낑낑거리며 받고 다시 던지기를 반복한다. 데구르르... 데구르르....


 머리가 아프다. 다시 자야겠다...


 과거의 악몽보다는 현재의 악몽이 경쾌한 법이다.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할 때는,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이미 결과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악몽, 즉 현재진행형의 고통은 희망이 있기에 더욱더 활기차다. 이제 곧... 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 할 것이다. 공은 이미 내가 한손으로 들지조차 못할 정도로 무거워져있다. 어깨가 망가진다. 던지기는커녕 들지도 못한다. 하지만 공은 온다. 여자아이는 깔깔깔 웃으며 경쾌하게 강속구를 뿌린다. 이제는 받지조차 못한다. 나는 쇠구슬 같은 공을 맞는다. 퍽! 퍽! 이제 그만...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깬다. 30분 남짓 잠든 것 같은데, 꿈은 길게만 느껴진다. 다시 물을 마시고, 속을 게워낸다. 컴퓨터를 켜 웹브라우저를 열자니 이제는 빌어먹을 뉴스마저 커스텀 하라신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컴퓨터를 끄고, 티비를 켠다. 또 등장하는 ‘Netflix’를 무시하고 외부입력을 IPTV로 바꾼 후 OCN을 찾다 찾다 찾아 들어간다. ‘인크레더블 헐크’가 하고 있다. 시간을 체크해보니 시작한지는 1시간이 조금 넘었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내가 보고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가 끝났다. 숙취가 가셨다. 나는 맥주 캔을 딴다. 워드프로세서를 연다. 오늘 하루를 기록한다. 이내 멈춘다. 나는 ‘브레이킹 배드’같은 시나리오를 적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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