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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Dec 28. 2020

여전히 Blue

  내 색깔은 어두운 파랑색이라, 아무리 밝은 색으로 덧칠하려 해봤자 검은색에 가까워지기만 할 뿐이다. 내 고향은  꽤나 넓은 어지러진 내 방구석이라, 오늘도 밖으로 나가 취하고 돌아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취직하면 달라질 줄 알았지. 여자친구가 생기면 달라질 줄 알았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달라질 줄 알았지. 블라블라, 난 언제나 Blue.


 이번주 목요일부터 내 멋대로 정의내린 삶의 덧없음과 생활의 쳇바퀴가 너무나 싫어져 우울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난 여자친구와는 2시간도 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가삿말이 담긴 노래의 볼륨을 크게 키운다. 게임을 하나 샀다.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했다. 1쿼터도 마치지 못하고 그냥 그만뒀다. 석화 요리를 만들어 먹자고 엄마 아빠에게 제안했지만 생굴은 먹기 싫다고 퇴짜 맞았다. 친구에게도 석화를 먹자고 하지만 시큰둥하다. 어디론가 운전해 도망가 하룻밤이라도 자고 오고 싶은데 엄마 차도 누나가 가져 갔다. 술에 취할 9시 이후 바깥의 공간도 없다. 완전히 핀치에 몰렸다.

 

 확실히 해두건데, 나는 이 글을 내 글들이 으레 그렇듯 희망에 찬 인위적 다짐으로 마무리하지 않을 셈이다. 그런 행위들이 내 자신을 더욱 갉아먹는 느낌이 든다. 원인이 무엇인지도 찾지 않을 생각이다. 원인 따위 찾다가는 내가 내 목을 조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 이 기분에 침잠하고 있고 싶지는 않다. 대책을 생각해봐야지... 와인을 사다가 호텔에 갈까. 이런 젠장. 아무 의미 없다. 그냥, 좀 도망가있고 싶다. 선우정아의 노래가 이렇게 울림이 큰 노래라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알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마땅히 같이 도망가줄 사람도, 장소도 없다. 


 이 글에 결론을 쓸 생각도 없다. 아구를 맞출 생각도 없다. 오늘 낮에 아빠 차에서 김윤아의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를 들었다. 내가 아빠에게 준 재생목록에서 나온건데, 김윤아는 "위험한 사랑의 상상은 날 위안한다." 라고 말한다. 절망을 느꼈다. 위험한 상상따윈 내게 위안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뭐가 위안을 줄까? 떠오르는 것이 몇가지 있지만, 지금 내 곁에 혹은 내 곁으로 빠른 시일에 올 수 있는 것이 없다. "식품처럼 소모될 열정" 이라고도 김윤아는 말하는데, 소모될 열정조차 없는 요즘이다. 31살에 번아웃증후군은 좀 심했지. 며칠 후면 32살이니 괜찮으려나. 악기를 사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해본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정도 만큼은 있다.


 감흥을 느끼고 싶다... 소설의 3요소는 인물 사건 장소라고 말한다. 장소는... 있다. 그래도 난 내 집과 직장, 가끔 빌리는 호텔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인물이 없다. 사건이 없다... 하지만 다들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바로 직전에 큰 성취를 하지 않았는가... 왜 이렇게 바라는 것이 많나...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위치한 곳은 발단, 전개, 위기, 결말 중에 어디일까? 결말은 아니길바란다. 인생은 소설이 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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