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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Feb 22. 2021

재즈 2021

  단골 카페인 El Cafe의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다. 아마 내가 살면서 여섯번째로 많이 간 화장실이지않을까 싶다. 적어도 10위권은 너끈할 것이다. 나는 세번의 이사를 기억하고 디스틸을 다닌다. 그래서 첫 집, 둘, 셋 넷째의 지금집과 디스틸 그리고 이 화장실이 순위권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재밌는 점은 내 집의 화장실들과는 달리 El Cafe와 디스틸의 화장실에는 스피커가 설치되어있다. 그리고 그곳들에서는 항상, 재즈가 흘러나온다. 


 다섯번째로 이사 가는 집은 전원주택인데다가 내가 오디오 시스템을 설계할 권리 전권을 이양 받은 덕분에, 아마 그 집의 화장실에서도 재즈는 흘러나올 것이다. 재즈가 어쩌다 화장실 음악이 됐나? 물론 그 집의 본실에도 재즈는 흘러나올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 쳇베이커, 최근에 돌아가신 칙 코리아는 물론이다. 벌써부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그런데 이 선율은 조금 익숙하다. 하지만 서울 각지의 Bar, 아니 세계 각지의 Bar에서 흘러나오는 Kind of Blue나 Chet Baker Sings는 아니다. 기억났다. 이건 Bill Evans 버전의 My Funny Valentine이다! 일전의 여자친구에게 이 버전을 들려주니, 이게 무슨 My Funny Valentine이냐고 했던 그 버전이다. 으쓱, 어깨를 바로 잡고 목을 빳빳히 세운다. 나 재즈 듣는 남자야. 걸어다니는 Shazam이 나라고. 


 그렇게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오니 테이크아웃한 커피가 나와있다. 라즈베리잼 맛이 나는 커피다. 일전의 커피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쓸 시절의 나는 커피에서 딸기 맛이 난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로스팅 과정의 가향을 의심할 정도로 라즈베리향을 느끼니 참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원두도 챙겼다. 틴케이스에 나오는 이 시리즈를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즐거움이다. 


 라즈베리잼 맛이 나는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핀다. 나는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역시나 커피랑의 궁합은 최고이다. 여자친구는 싫어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담배를 끊어야하겠지만 아직은 놓을 수 없다. 카페에서 멀어지며 재즈 소리도 점점 옅어진다. 커피와 담배와 재즈라… 위스키가 빠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위스키가 땡기는 것이다. 나는 디스틸로 간다. 사장님에게 핀잔도 듣고, 현우씨에게 하소연도 하며 시간을 지운다. 이왕이면, 재지하게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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