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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Apr 15. 2021

으레 그렇지


 내 존재의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중이다. 하루 아침에 왕위를 찬탈당한 왕은 자신의 영화를 기억하며 살아야할까? 보통은 이미 목이 베여진 후일 테니 잘 상상이 안간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 목을 베인 채 오늘 회사를 나간 셈이고 사람들은 목이 없는 나에게 태연히 “안녕하세요.” 라고 말했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가 치민다. 나는 그럼 예의 그 바보같은 미소를 지을 얼굴조차 못가진 채, 목소리를 주조할 혀조차 못내민 채 고개를 꾸벅이며 내 단면을 보여주었음에도 사람들은 자연스레 하루를 시작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모니터를 본 눈조차 없는 채 나는 일을 하고 점심으로 할 음식물을 씹을 이빨조차 없는 채 밥을 넘기니 나와 우리 회사 사람들은 참으로 비위가 좋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목이 달아났다고 가정을 해보니 참으로 아구가 맞는 것이 나는 오늘 일을 하지도 음식물을 소화하지도 모니터의 글자를 읽지도 못하였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이 글자들을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 타이핑 하면서 흠칫하며 목 부분을 만져보는 것이다. 다행히도 목은 있다. 목은 붙어있다.


 그렇게 목숨을 부지했다는 생각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니 나는 존재하고 나는 존재하니 나는 생각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챕터가 지나간 것 뿐이라고 나를 위로한다. 영화는 아름다웠고 흔하지 않았으며 내가 어지럽혀 놓은 마지막이 조금 아쉬울 뿐이지만 그녀 말 마따나 이게 더 좋은 이별의 양태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렇게 타이핑을 하니 챕터를 써내려가던 우리의 펜대가 그리워 마치 칫솔질을 같이 하던 우리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 챕터를 쓸 종이가 무한히 넓어 보였는데, 그럼에도 그럼에도 혹시나 이 페이지가 부족하지 않을까 최대한 작은 글씨로 우리의 이야기를 세세히 그리고 또 유려하게 적어놓았는데, 미처 다 글을 끝마치기도 전에 페이지를 넘기려 하니 우리의 종이 두께는 너무 얇아 그것으로 마치 내 목을 베는 것만 같은 것이다. 그런 말을 하니 섬찟하게도 생생히 그 베어짐 당하는 느낌이 생각이 나어 내 목 부분을 만져보는 것이다. 다행히도 목은 있다.


 목이 베였다는 사실이 환상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넘어갈까. 이제 내 다음 챕터를 상상해볼까. 존재의 의미를 찾아볼까. 음악을 해볼까. 새로운 연애를 해볼까. 사람답게 살까. 술을 줄일까. 담배를 끊을까. 쉬이 행동하지 않을까. 그게 답인 것을 알고 나는 아직 나라는 왕좌에 앉아 있고 내 왕관은 왕비가 아니었음에 맘을 다잡으니 잠깐 안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그러다가도 문득 목덜미가 간지러워 목을 만져보니,  등덜미 부분부터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으니. 목이 있는 것이 환상이 아닌가도 싶고. 저기 내 목이 굴러다니는 것만 같고. 주우려고 손을 뻗쳐도 아 내가 눈이 없구나 싶어 보질 못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내 발로 내 목을 걷어차는. 이 상황에서 나는 “최민성이 으레 그렇지” 하며 목을 잡아 챌 올가미를 밧줄로 꿰는 것이다. 목을 잡아 채니 내 목이 내 품에 안기고 노래를 부르는 내 목은 La La La 거리고 나는 눈을 감겨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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