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오늘 "코카 콜라 맛있다."를 되내이며 계속 뉴진스의 'zero'를 들었다. 뉴진스란 이름의 뜻을 모르는 것처럼, 뉴진스의 멤버들의 이름이나 생김새도 알지 못한다. 해린이란 멤버가 있다는 점만 아는 정도. 민희진이란 대단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짜놓은 그룹이라는 것도.
그런데 어느날 술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뉴진스 노래인 'ditto'(사실 다 좋아한다.)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길래 무심코 보게 되었다. 그리고 든 생각. 상큼하다, 발랄하다, 젊다, '멀다.'. 그렇게, 뉴진스의 멤버들과 나는 멀어져 버렸다. 그 이유는, 역시나 세대 차이다. 그들의 안무와 외모와 옷차림은 나에게 너무나 멀게 느껴지고 이색했다(오타로 어색이라고 썼어도 맞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초아나 가인을 좋아하던 나는 그녀들을 초아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할 수 없게 되버렸다. 멤버들의 나이를 알지는 못하지만, 대략 고등학생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20대의 나에게도 먼 고등학생들이지만, 20대 때는 걸그룹들을 보면서 이런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다. 난 왜 이렇게 변해버린걸까?
당연히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그리고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김광석은 서른즈음에를 부르며 "점점 더 멀어져간다." 라고 말했다. 그런걸 보면 이 거리감은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서른 즈음에도 아니고 서른 넘어서 아닌가!) 나는 34년을 살아왔고, 이제 20대의 무모함. 특히 사람관계에서의 무모함과도 거리가 생긴 것 같다. 사람들이 좋았다. 막연히 좋았다. 만나고 헤어지고, 연락하고 안고. 그것들의 반복. 지금도 만나고 헤어지고는 여전하다. 어쩌면 안는 것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딱히 원나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술먹다 얘기를 붙어도. 인스타 아이디를 교환해도, 나는 연락을 굳이 하지 않는다. 하룻밤의 상대방에게도 나는 거리를 둔다.
연락을 하지 않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만큼 좋지가 않아서다. 누군가가 나에게 "요즘 맘에 드는 사람 만난 적 있어?" 라고 물어봤다. 나는, "맘에 크게 들지도, 맘에 크게 안들지도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라고 답했다. 사실, 전부다. 그런데 중요한건, 내 마음에 크게 들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나, 내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 조차 없는 것이 문제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 마음의 문은 사실 상수동과 안암에 있는 자동문 같아서, 누가 이 유리문의 존재도 모르고 지나쳐 가더라도 나는 두 문을 센서도 없이 활짝 열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열리지 않는다. 내 자동문은 센서가 고장났다. 아니면 혹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특별한 누군가가 오면 다시 열리지 않을까? 그게 당연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가 결국에 들어온다면, 이번엔 문의 센서를 부숴버리리라. 다시는 내 맘 속에서 나가지 못하게.
다시 뉴진스로 돌아와서, 뉴진스의 뜻을 내 딴에 짐작해본다. New Jeans. 새로운 청바지? 통이 넓은 청바지는 오혁이 처음 입었지만, 요즘은 대세다. 그런 대세와 새로운 흐름을 뉴진스는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거리감은 합당하다. 나는 아직도 스키니진만 입는다. 통이 넓은 바지는 나와 맞지 않다. 아니, 어색하다. 입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자동문 앞을 스쳐간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통넓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라 칭하겠다. 맞지 않다. 맘에 들지 않는다. 문을 열지 않는다. 센서 따위가 아니다. 나는 내 문을 내가 활짝 열고, 내 이상형이었던 스키니진이 잘어울리는 여자를 두 팔 벌려 맞이할 것이다. 그녀를 안고, 연락하고, 만나고,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을 걸어잠글 것이다. 말했듯이, 뉴진스는 좋지만, 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 뭐 어떠랴. Let's Kickin' 올드스쿨. 설레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