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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Jul 23. 2024

축제의 밤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예정하고 기다린 후 방문하여 그것을 즐기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뉴욕에 갔을 때는 나도 몰랐던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으며, 부산에 가면 언제나 광안리에서는 불꽃축제가 열렸던 기억이 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축제의 냄새만큼은 기막히도 맡았던 나였던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브루클린에서 수없이 흐트러지는 폭죽들을 보고, 해운대에서 그녀를 떠나보내고 (그 수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나는 "축제 따위.. 흥" 하는 사람이 되버렸다.


 당신과 나의 관계, 그리고 시간은 마치 축제 같았지만 불꽃놀이는 내 머릿속에서 끝나지를 않는다. 한 트윗을 읽었는데, 도쿄 섬머소닉 페스티벌에서 공연이 끝난 후 귀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 폭죽을 터뜨렸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우리를 떠올렸다. 나는 몇차례 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는데, 귀가길은 그저 택시 잡기가 매우 힘든 경험이었다는 것 밖에는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차를 잡는 시간 동안 계속 폭죽이 터져 나를 배웅해주다시피 한다면 그것 또한 참 로맨틱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매일과 내일을 축제 같이 보내고 예정하는 삶은 한정된 삶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걸 유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약소하게나마 있어 우리는 2-3년을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녀의 부모님을 뵌 날이 우리의 축제가 끝나고, 공항에서 하림의 출국을 들을 때가 내가 종지부를 찍은 날이라는 것은 나를 여전히도 슬프게한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 폭죽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나는 누나를 좋아했다. 단발머리를 좋아했고, 작은 사람을 좋아했다. 다정한 사람을 좋아했다. 당신은 반은 맞고 반은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달랐을 뿐이다. 당신은 내 생일에 단발머리로 컷을 해왔고, 마치 내 누나인양 행동했다. 내가 어리다면 어리지. 미숙한 나는 축제가 영원한 줄 알았다. 내가 만약 축제가 그냥 축제가 아니라 이 글의 축제처럼 "축제의 밤"이었던 것을 알고, 우리의 허물, 아니 나의 허물을 고스란히 들춰낼 여명이 올 것이란 것을 알았다면 나는 그렇게 많은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 편지 하나 하나들은 마치 다시 읽을 때마다 펑~ 펑~ 소리를 내며 내 머리속에 남아 있는 그녀를 배웅치 못하게한다. 밤이라면 본디 어두워야 할 지인데, 폭죽들이 동시다발 적으로 터지는 마당에 그녀의 얼굴 같은 달만 훤히 보여 나는 그녀를 읽고, 잊지 못한다.


 왜 이런 글을 쓰나? 어제는 기분이 꽤 좋다고 글을 썼더랬다. 물론 내 비애를 조금 숨겨놓았다지만, 바로 그 부분이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만든다. 나는 비애가 가득하다. 비애를 한 뼘 숨겼다고 어제는 썼는데, 그정도로는 가려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달덩이란 말이다. 당신이 내가 기분이 좋고 유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다. 당신 없이도 잘 산다고 느껴지게 하는 것이 싫다. 물론, 당신은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렇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내 비애를 드러내겠다. 달처럼 뜬 당신 얼굴이 생각 날 때면, 흐르는 눈물 감추려 내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린 후 아무것도 안보이게 만든 뒤 앞을 보지 못한 채 폭죽 소리를 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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