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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May 20. 2018

침대


 어제는 모텔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같이 밤을 지샌 여자친구는 이미 집으로 돌아간지 오래였다. 5시에 그녀가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난 나는 같이 나가자고 말을 했다. 하지만 밀려오는 졸음이 너무 강했고 그걸 알아본 여자친구는 자고 있으라고, 자신은 먼저 가겠다고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같이 간다고 간다고 말을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만류했다. 사실 나도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이 있어 결국 여자친구의 말에 순응했다.  


 8시 정도에 일어난 나는 방안을 둘러본다. 재떨이가 놓여져 있지 않았다. 나는 모텔이니 뭐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담배를 꺼내 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냉장고엔 무슨 음료가 들어있는지 확인한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스프라이트가 있어 담배를 다 핀 후에 한 캔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청량함을 느꼈지만 역시 휑한 모텔 방은 아무리 겪어도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나도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방을 나섰다. 카운터에 카드키를 반납하고 문을 나선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 좋았다. 나는 빈 속에 담배 연기를 한 번 더 채운다. 모텔이 많은 신촌의 거리도 아침엔 상당히 휑해서 기분은 한층 더 어수선하다. 5시에 나간 여자친구는 더 심했겠지. 나는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혼자 쓸쓸히 집에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그녀 혼자 길을 나서게 두면 안됐다.


 집에 도착해 누룽지를 먹고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출근은 잘했냐고, 난 집에 도착했다고. 나는 그녀를 그냥 보낸 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상태여서 조금 무서웠다. 평소에 조금 잘삐지는 그녀가 또 기분이 나빠졌을까 걱정했다. 카톡에서는 그런 뉘앙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살갑게 대하는 그녀의 태도로 보아선 정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 그게 여자친구였다. 나는 그런 면이 좋았다.


 그렇게 카톡을 나누고 있다가 누나는 하나의 소박한 바램이 생겼다고 말했다. 난 무엇이냐 물었다. 누나는 같이 잘 때 내가 항상 등을 돌리고 자는게 섭섭했다고,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 얘기는 같이 안고 잘 때마다 들어온 소리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안은 모든 여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잤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이 오질 않았다. 꽤 깊은 관계로 발전한 이들은 모두 나에게 이 말을 했다. 여자친구는 나에게 이유를 물었고, 나는 항상 그래왔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말을 듣는 누나가 나와 다른 여자가 같이 눕는 것을 상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나는 엄마랑이나, 친구랑 좁은 이불이나 침대를 쓸 때도 항상 돌아 눕는다. 라고 웃긴 부연 설명을 곁들인다.


 여자와 처음으로 같이 안고 잠든 것이 8년 쯤 전이다. 물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여자들, 혼자 모텔을 나가게 내버려두거나 상대를 깨우지도 않고 내가 나가버리거나 하는 그런 여자들에겐 이 등 돌리며 자는 버릇에 대해 크게 거리낌이 없었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안고 자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여자들을 비하하거나 싫어하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그저 내 삶에 들어오게, 가슴에 자리 잡게 만들기 까지는 싫은 것이다. 하긴 그런 여자들이 세상엔 대부분이다. 눈이 너무 높은 것인가. 어쨌든 그런 부류와 안고 자는 것은 매우 거리껴지는 일이다.


 내 마음 속에 이미 자리를 잡은 그녀들에게 등을 돌리고 자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녀들은 항상 나에게 조금씩 서운함을 표시했다가, 포기한다. 웃긴 점은 내가 등을 돌리고 자면서 뒤에서 안아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참 이기적인 인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녕코 내 의도와 내 감정을 함의한 행위나 버릇은 아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인다. 난 왜 그럴까? 이 글을 쓰면서 더 궁금해진다. 난 나를 변호하고 싶다. 나는 애정이 많고 그것을 주는 것에 익숙하고 보람을 느낀다. 그러니까 내가 상대방에게 매정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정도로 사소한 버릇이 나를 9년동안 괴롭힌다. 뭐 심하게 괴롭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연애 초기에 이런 생각들은 꼭 통과 의례 같이 찾아왔다. 아마 나는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 여자친구는 포기할 것이다. 지금까지 다 그래왔기 때문에 나는 그러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잠자리가 될 것이고, 여자친구를 조금은 더 행복히 만들어 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히도 이번 연애가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다.'로 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항상 그래왔듯 이 사람을 떠나보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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