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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May 20. 2018

쉬운 남자

 내 최고의 매력은 역시 ‘쉽다’가 아닐까 싶다. 어쩌다 만난 여성분들이 나에게 호감을 보이시면 나는 무 뽑히듯 끌려 나온다. 나라고 취향이 없지는 않다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니 그럴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더군다나 나는 술에 취하면 정말 아가페적인 사랑을 느끼는 때가 많다. 이런 특성 때문에 나는 밤마다 자주 드라마를 쓴다. 연속극이라기보단, 단편 특선 드라마, 하지만 너무 자주 여주인공을 갈아치워 방영을 하며 스토리가 뻔해 재미있지는 않을 것 같다. 주인공인 나도 이렇게 반복되는 드라마에 지쳤으니, 만약 시청자가 있다면 빨리 채널을 돌리겠지. 

 오늘도 나는 친구에게 말한다. ‘나 또 까였어.’ 친구는 웃으면서 내가 까인 여자들로 책을 써도 되겠다고 농담을 한다. 나는 제목으로 ‘까임의 역사’로 해도 괜찮겠다고 받아 친다. 뭐 까이면 어때, 그래도 어제 그 분과의 시간은 나에겐 소중하다. 방금 그녀가 흔한 거절의 멘트로 ‘누군가를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라고 카톡을 보내왔는데 그렇게 실망스럽진 않다. 아, 그러니까 정말 나는 오늘 까인 것이다. 2018년 5월 19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같이 있었던, 헤어지기 싫어 자꾸 오는 택시를 보냈던, 같이 안고 입술을 맞댄 그녀를 다시 못만나게 된 것이다. 말했듯이 그렇게 많이 실망스럽지는 않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다시 누군가가 나타나겠지라 생각하고 만다.

 문제는 스토리가 매번 똑같다는 데에 있다. 나도 좀 진절머리가 쳐진다. 그리고 항상 단편극으로 끝나는 것도 짜증난다. 그냥 가볍게 만나는 데에 큰 거부감이 없고, 그런 경험이 많아서 그나마 상처를 덜 받는 것 같다. 나는 저번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거진 1년이 넘었는데,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서로의 생활과 감정을 공유할 사람을 만나고 싶다. 물론 그게 쉽지가 않아 문제이다. 나는 좋아함의 표현으로 ‘당신이 궁금해요.’라고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 호기심을 가시게 할 정도의 관계의 진전이 없다. 정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어제 밤은 키스를 하며 달콤한 말들을 속삭였는데! 이렇게 잠을 잔 후 태도가 변하면 기분이 참 씁쓸하다. 물론 나에겐 흔히 벌어지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오늘은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내 최고의 문제는 내 최고의 매력과 같다. 나는 정말 너무 쉽다. 여자들이 나를 만만히 보는 것도 내 이런 생활의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쉬운 건 그냥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라는 의미 만이 아니다. 나는 쉽게 마음을 넘긴다. 어제 그녀가 자신에게 궁금한 것은 없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대답이 가관이다. “오늘은 그냥 느낌만 가질래요, 많이 알고 싶지 않아. 지금 좋은 느낌으로 그냥 밤을 보내고 싶어요.” 진심이긴 하다. 문제는 맨날 좋은 느낌이라는 거지. 이 말에는 또 느낌만 좋으면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매우 쉽게 접근한다는 뜻이 내포되어서 여성분들이 나를 매우 가벼운 남자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좀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여성분들이 좋아할만한 말을 쉽게 잘하는 편이라 더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바람둥이 같이 느끼는 걸까. 

 갑자기 첫사랑 누나가 생각 난다. 내 맘 속에 많은 생채기를 남기고 간 누나는 나에게 예언 같은 것을 하나 한 적이 있다. 그렇다. ‘넌 바람둥이가 될거야.’ 나는 펄쩍 뛰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순애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항변한다. 누나는 웃었다. 그게 내가 22살 때의 일인데, 한 25살이 되니까, 나도 알게 되었다. 순애보와 바람둥이는 공존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29살인 지금의 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다시 순애보를 가질 수 있는 대상을 만날 수 있을까?’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버려지며 너무 쉽게 버리는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어 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나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가 다가오는 시점이 되오니, 무뎌져 가는 내 감정도 거슬린다. 시간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많은 고통들을 감내하다 보니, 많은 일들에 담담해진다. 나는 담담해 지는 내가 싫다. 사랑을 계속 갈구하는 마음이 나에겐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인생의 몇 없는 기회들만 발로 뻥 차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 나는 쉽지 않아져야 하는 것인가? 그런 것 같다. 그럼 어떻게 쉽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테마곡은 ‘I Fall In Love Too Easily’다. 가장 좋아하는 가사 한줄이 있다면 ‘사랑이 많은 것은 전혀 나쁜 게 아니래요.’라는 아이유의 가사다. 사랑이 많은 것, 애정이 많은 것이 정말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다만 그 사랑과 애정이 한 사람을 향해 있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다. 동시 다발적인 지금의 내 행태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지치기도 하고 재미마저 없다. 미래도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방금 담담해지고 무뎌져 간다고 말을 했는데, 그렇다면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조금 더 어릴 때 처럼 성적 욕구의 왕성함도 적어져 이 단편 드라마는 정말 재미있는 요소가 없다. 조금 시청자들에게 재밌다고 느낄 것을 꼽아보자면 ‘얘 또 시작이네’ 하며 웃는 요소일 것이다. 아, 정말 또 이러기 싫다. 그런데 누군가 만나려면 또 시작을 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참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글을 빌어 존재할 리 없는 내 시청자들에게 사과와 양해를 구한다.  


“맨날 똑같은 스토리라서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혹시나 연속극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룻밤이 반복되는 이런 여러가지 일들이 결실을 맺어, 어쩌면 호흡이 길며 엔딩까지 해피한, 그런 연속극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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