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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Oct 17. 2018

어제는 사진을 찍었다

  어제는 뽀뽀를 했다. 뽀뽀를 한 것이 참으로 오랜만인데 날카롭지는 않았다. 그녀는 당황하다 살짝 웃더니 내 배를 주먹으로 쳤다. 생각보다 아팠고, 과장을 하자 싶어 켁켁대었더니 그녀는 나를 일으켜세워 안아줬다. 잠깐의 시간 동안 우린 춤을 더 추었다. 가끔은 익숙한 노래보다 처음 듣는 노래가 춤 추기에 더 적합할 때가 있다. 그렇게 낯선 노래에 낯선 사람과 익숙한 상황에서 춤을 더 추었다. 자리로 돌아간 그녀는 나에게 "전 담배 피는 사람이랑 사귈 생각 없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사귀자는 것 아니에요." 라고 답했고 그녀는 폭소했다.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다. 그녀와 자는 것은 즐거운 일이겠지만 그정도의 만족감을 위해 열심히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자극에 무뎌진 지 오래인 나는 약간의 희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셀카를 찍더랬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고 그녀는 입술을 내 볼에 대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런 사심 없이, 내 폰이 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내 껄로 찍자고 말한다. 이번엔 내가 입술을 가져다댄다. 막차 시간이 다가오자, 조금 과잉의 친절을 부려 배웅을 한다. 술이 꽤 취한 상태라 집에 가는 것이 좋겠다 결론을 내린다. 혼자서 마셔도 좋겠지만 요즘 숙취가 좀 심해 자제하기로 한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계속 걷는다. 딱히 더 잘잡힐만한 곳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걸었다. 담배를 꺼내 문다. 불을 붙이자 빈 택시가 내 앞에 멈춘다. 헛웃음을 지으며 나는 차를 잡아 타 집으로 향한다.


  오늘 일어나니 그녀에게서 카톡이 와있다. 그녀가 지하철에 몸을 실었을 때 바로 보낸 것 같은데, 오ㅃㅏㅏ 라고 카톡이 와있다. 카톡을 놓쳤었나보다. 그렇게 취했었나 생각해보다가 그러려니한다. 내 카톡이 답이 없어서 그랬는지 "잘들어가셨어요?" 라고 하며 약간의 더 메세지를 보내놓았다. 오타가 많이 난 걸로 보아 그녀도 꽤 취해있었나보다.  좋은 아침이고, 좋은 하루를 보내라라고 말을 한 뒤 나는 아침을 먹는다. 아니나 다를까 숙취가 심하다. 엄마에게 아침밥은 매우 신성스러운 의식이라 속이 부대낌에도 밥을 참고 먹는다. 어쩌다 폰의 사진첩에 들어갔는데, 전날의 사진을 본다. 그녀와 나는 실로 연인 같다. 연인과 우리와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나는 바로 그 사진들을 지운다는 것이다.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겠지. 서로에게 사진을 보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녀도 아마 나와 찍은 사진들을 지울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며 조금 씁쓸해진다. 물론 그녀가 사진을 안지우면 오히려 일이 커지고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사진들을 지우는 내 20대가 싫다. 못나온 사진, 잘못 찍은 스크린샷들은 지우기도 귀찮아 남겨놓고 있으면서 여자들과의 사진은 매우 착실하게 지운다. 그녀처럼 잠깐의 놀이가 아닌 사랑의 관계에서도 결국은 사진을 지우게 되더라. 20대의 연애가 뭐 그렇지.


  계속 지운다. 지우고 지운다. 비오는 날의 윈도쉴드 와이퍼처럼 계속 흔적을 지운다. 비는 멈추지 않는다. 기뻐해야하나? 세월이 조금씩 지날 수록 와이퍼의 속도만 높아져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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