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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Jan 04. 2020

중독에 대하여

 중독은 뭐랄까, 뭐랄까… 로맨틱하다. 없으면 못살잖아. 자꾸 찾게 되잖아. 어떤 것에 중독이라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것을 부정적으로 본다는거지만, 계속 옆에 있었잖아. 의지했잖아. 함께 했잖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쪽이 다른 쪽을,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저버리고, 그 관계를 어느새 중독이라고 이름 붙인다.

 담배, 난 이미 중독되어있다. 담배를 처음 접했던건, 어릴 때 호기심에 비행감으로 몇 번 해본 것 말고는 20살 때가 처음이었다. 재수하면서 이래저래 힘들었을 때. 학원이 교대에 있었는데, 가기가 싫었다. 근데 엄마가 보내니까 어쩔 수 없이 다녔지만 안되겠다 싶어서 교대 근처에 독서실을 잡아 학원 가는 척 독서실을 가곤 했다. 혼자였다. 목동에서만 살던 내가 어느새 강남이란 으리으리한 곳에 떨어져서. 혼자였다.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최민성이지만 재수의 중압감은 꽤 컸다. 외로웠다. 가끔 몸서리도 쳐졌다. 하지만 공부는 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쩌랴 난 10시에 집에 가야하는 걸. 시간을 떼울만한 것을 찾아본다. DMB로 야구를 본다. 그 때 처음 넥센이란 팀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엄청 봤다. 그게 하나의 낙이었다. 근데 그것도 몇시간이지. 나는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교대에 들러붙어 있어야했다. 나는 어쩌면 인생의 최악일지도 모르는 아이디어를 떠오른다. “담배나 펴볼까? 커피에 담배라, 이게 간지지.” 그래서 시작했다. 철없는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도 똑같은 생각이다. “커피에 담배라, 이게 간지지.” 그렇게 난 20살부터 9년동안 담배를 펴오고 있다. 한번은 친구가 물어봤다. 야 넌 담배 왜피냐? 난, “너를 위해 몸을 태우면서 까지 옆에있는 친구가 있냐?” 철없는 생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철없는 생각이다. 지금도 쪽팔린다… 그 후 나중에 똑같은 질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 생각해놓은 답이 있다. “그냥 생활을 하다가, 담배 한 대 피면, 그 잠깐의 시간동안 시간이 정지해 버린게 좋아.” 아 내가 봐도 멋진 대사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날 일. 이젠 그냥 중독이다. 

 약물, 뭐 막 닥터 하우스의 바이코딘 중독이나 뭐 흔히 생각들 하는 마약 중독은 아니고, 그냥 병을 치유하기 위해 먹는 약물에 대한 중독. 이게 진짜 짜증나는 중독이다. 어느샌가 부터 시간을 딱딱 맞추어 약을 챙기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왔다. 숨차고 머리 속이 웅웅거리고… 교수님에게 물어봤더니 그냥 약물 중독일 뿐이라고 쿨하게 말하시더라. 진짜 한 대 칠 뻔했다. 나이 29살에 약물 중독이라니!! 내가 락스타도 아니고 Amy Winehouse도 아니고 이게 뭐야!! 이건 정말 불쾌하다. 담배는 다 피기라도 하지… 요즘은 정말 심해져 외출할 때 비상용으로 항상 챙기고 다니고, 혹시나 놓고오면 바로 택시타고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중간중간 살짝 공황증세 오면 그 때마다 먹어줘야하고… 그냥 짜증난다. 세상 참 힘들게 산다.

 애정, 애정에 중독되어 있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 일정한 투입량이 없다면 중독도 없다. 첫 투입은 22살 때였다. 뭐 여기서 연애사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기는 귀찮고, 그냥 흔히 말하는 첫사랑을 만난다. 워낙 어릴 때여서 그게 사랑인지 그냥 단순한 환희와 의존, 집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생 처음 애정받는 다는게 뭔지 알았다. 그리고 너무나 좋았다. 오래가지 못한 연애였지만 후폭풍은 컸다. 방황하고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 병까지 얻었다. 한번 애정을 맛 본 이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꾸준히 여자들을 만나왔다. 모두가 애정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만족했다. 손잡고 거리를 거닐며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같은 공간에서 단둘이, 아무도 신경안쓰고, 사랑을 나누는게 좋았다.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나 정착을 하게되고, 같이 연대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항상 내 주머니에 있는 담배처럼,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사람. 보고싶을 때 볼 수 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없으면 못사는 사람. 자꾸 찾게되는 사람. 내 주머니에 있는 사람. 중독이라 느낄 틈도 없었다. 나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니까. 더 나아가 어떤 대상이 아닌,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 비극은 그 때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하다. 모든 연애가 그렇듯 서로가 서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당연히 여기는 것처럼. 연애는 단조로워졌고, 서로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나는 그 사람이 지겨워졌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그 사람과 나의 연애사를 쓰고싶은 맘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나는 우리 사이에 중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함께 해왔지만, 더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끊고 싶지만 쉽게 끊을 수는 없었다. 용기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건데 나는 그쪽에서 나를 끊어줬으면 했다. 참지못한 나는 결국 지지부진 이어지던 관계를 잔인하게 끊었다.

 중독이라는 단어의 존재 이유는 ‘금단 현상’일 것이다. 단지 사랑이나 술, 담배, 약물을 필요로 하고, 좋아해서 계속 찾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없을 때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지금 여러가지 중독을 가지고 있다. 그말인즉슨 나는 여러가지의 금단 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담배와 약물, 언제든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약간의 불편함 뿐. 하지만 애정은 아니다. 나는 구할 수 없다. 슈퍼에서도 병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구할 방법이 없다. 

 결국엔 금단 현상이란 추한 결말을 가져오는 중독 또한 역시 추악한가?, 그렇지 않다. 결말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채 서로가 서로를 탐닉하는 그 과정, 나에겐 너무나 로맨틱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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