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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Apr 06. 2020

어지간히 좋아하나봐

 볼륨 몇까지 썼나 하려고 세다가 세봤자 새로운 볼륨을 추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졌다. 오랜만에 지원이의 인스타를 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어 한층 더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집에서 가사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12년 정도 만에 오늘 일을 그만두신다.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오늘 하루는 도무지 신이 나지 않는 하루다. 아침부터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별 것 아닌 일들조차 나의 머리속을 휘젓는다. 


 환희가 시작되고 나는 정말 사랑에 관해서만 글을 쓴 것 같다. 말그대로 Love Supreme이었다. 그 와중에 힘든 일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힘든 일 또한 종종 있었다. 하지만 Love Supreme, 사랑에 관해서만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지원이밖에 보지 않는 공간에 기분이 안좋다는 글을 올리는 것은 무슨 시위인지… 그냥 이 글이 최대한 늦게 발견되어 내가 “그 날은 그랬구 지금은 너무 좋아~” 라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원이의 슬픔은 서른살이 되었단다. 내 슬픔은 지원이의 그것보다 며칠 어리다.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은 나의 슬픔을 돌아보게 한다. 나의 슬픔을 털어놓을 때가 필요한데 요즘은 그것조차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를테면 오늘 술이 꽤나 취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난 앞으로 그럴 수가 없다. 혹시 그럴지라도, 엄청나게 불편하고 무척이나 염려하며 마음이 어지럽게 취할 것이다. 이것은 시위가 아니다. 설마 오늘 이 글을 보지는 않겠지. 나는 그냥 지금 어지럽다.


 그 까부는 놈이 글을 잘 쓴다고 말한 것이 기억나서 볼륨을 추가하고 싶었다. 내가 더 잘 쓴다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볼륨의 수를 늘려갈 수가 없다. 이건 정말 부당해. 정말 부당해. 맘이 아플 정도로 밉다. 이 글의 시작이다. 난 그냥 또 Love Supreme을 얘기하려 했는데. 어젯밤에는… 그런 말을 했으면 안됐다. 일기가 편지를 말하는 것 일테지. 그런 무기로 나를 몰아세우면 안되는데… 정말…


 어지간히 좋아하나 보다. 멤돈다. 멤돌아. 어지러워. 왜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아? 데이트 때마다, 오늘은 편지를 줄까? 생각을 가지고 지원이를 본다. 나는 보통 만나자마자 편지를 줬는데, 지원이가 만나자마자 편지를 주지 않으면 지원이에게 내 속상한 마음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줄까봐, 그럼 내가 실수하는 것일 테니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받은 적이 없다. 그렇게 꽤 많은 수의 데이트의 끝이 약간 내 마음을 상하게 했다. 똑같은 맥락으로 나는 이런 글을 쓰지 않았는데, 어젯밤 말을 들어보니 이런 글을 써도 되겠다 싶다.


 지원이는 글을 잘쓸테지. 못쓸리가 없지. 하지만 나는 지원이가 어떤 문체를 가지는지, 어떻게 호흡을 가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스럽게 글을 쓰는지 알 수가 없다. 지원이는 내가 바보라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바보가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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