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나메나 Apr 08. 2020

독서 모임


  독서를 그닥 즐기지도 많이 하지도 않는데 독서 모임장은 두번이나 했더랍니다. 23살 즈음 합정에서 20대들의 독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여러 사람들이 모이고 빠져 나가는 것을 반복하다가 어느정도 고정 멤버가 생겼답니다. 저도 그 사람들도 그다지 문예에 깊지는 않았지만 서로 얘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사고가 가능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글에서 보다 많은 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책을 좀 더 읽은 계기이기도 했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많아졌습니다.


  어느새 30살이 되어 다시 학교에서 독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원체 좋아하는 편인데 멋진 책을 가지고 얘기를 나누니 더욱 더 좋았습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원체 좋아해 그 사람들과 열띤 토론 후 삼겹살을 구우며 인생사를 얘기하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다시 한번 독서 모임을 연 것은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곧 인턴을 하게 되어 2대 모임장분에게 책임을 넘겼지만 아직도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모임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구성원분들을 못본지도 꽤 됐네요. 얼른 보고 싶고, 책에 관한 진중한 얘기와 시시콜콜한 제 개그에 핀잔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저는 오늘 첫번째 독서 모임에 관한 글을 쓰려 합니다. 사실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첫번째 독서 모임입니다. 같이 열심히 책을 읽었던,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베프와는 아직도 매주 술을 마시지만 다른 분들과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니 모임이 끝난 후 한번도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습니다. 정말 즐거운 모임이었고 서로에게 정도 들었는데 말이지요. 저와 친구, 남자 두명에 그보다 나이가 어린 여성 세분이 꾸준히 모임을 나왔습니다. 그중에서 한명이 친구를 좋아했는데, 친구가 나오지 않은 날 저에게 고백을 했어요. 친구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저는 비밀로 하겠다 약속했습니다. 아직도 그 비밀은 이어지고 있네요. 하지만 이제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세 분입니다. 매주 만난 장소인 합정 '네이버후드'라는 카페는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저는 오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글을 쓰려 합니다.


  잃어버렸다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일지도 모릅니다. 당시 매우, 그정도로 소중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지나가면 추억이 되듯이, 오늘 갑자기 더욱 더 소중해 집니다. 그 사람들과 연락을 하진 않더라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정도는 알았으면 좋았을텐데요. 아쉽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모임에서도 쏘맥을 그렇게 마셨더랬지요. 자주 가던 버팔로 윙 집 사장님은 저희를 매주 반겨주었습니다. 상수에 있는 옐로우 윙이었나? 그랬습니다. 검색해보니 과거의 블로그 글도 안나오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아요. 점점 힙해지던 그 때의 상수와 다른, 아주머니가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하고 덕담도 주시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 장소 또한 사라진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기억력이 나뻐요. 과거를 자주 잊어먹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게 의미가 있는 것은 엄청 잘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 때의 독서 모임의 장소들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제게 그다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실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의미가, 의미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아름다운 한 페이지였습니다. 아니 그 때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제가 미워집니다. 소중한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꼭 다시 한번 모이자고, 마지막 날 그렇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모임장이니 제가 꼭 모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놓쳐온 것이 너무 많습니다. 놓친 것들이 너무 많아 가슴이 아픕니다. 가슴이 아파도, 놓치길 잘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 20대 시절을, 사건들을,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파편적입니다. 가물가물합니다. 야구 선수들의 과거 기록들은 그렇게 술술 외우면서,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제가 그럴까요. 단순히 저의 문제나 특성은 아닐까요. 바라건대 그 사람들도 저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잊더라도, 가끔은 떠올려줬으면 합니다. 훈구, 훈구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훈구와는 사이가 멀어지고, 서로를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라건대, 우리가 처음 술을 먹은 곳이 학교 앞 '나들목'이란 술집이라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2차로, 대학로의 '믹스앤몰트'를 갔던 것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3차로 가서 우리가 열띤 토론을 했던 장소, 제가 기억 못하는 그 술집의 이름을 훈구는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생각났습니다. 그 여성 세분 중 한분의 이름은 '민수'였습니다. 또 떠올랐습니다. 그 민수님의 친구분이 제 친구를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민수님은 그동안 저를 좋아해왔다고 했습니다. 어벙벙하고 웃어 넘겼습니다. 네이버후드, 네이버후드가 맞습니다. 옐로우 윙도 맞을 것입니다. 아주머니의 따듯한 환대도 기억이 납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잠깐 잊어먹은 것이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많은 것들을 쟁여두고 있습니다. 소중한 것들입니다. 가끔 여닫아 보는 것을 반복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내 맘 속에 많은 추억들이 있다. 소중한 것들이 많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 언제나 내 곁에 있다. 그것들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어지간히 좋아하나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