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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May 23. 2020

글을 써야 할 운명인가보다

 최근 여자친구가 나의 새 글이 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음에도, 나는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맘의 여유가 없다면 없다. 이것저것 잘풀리는게 없고 일들이 터진다. 불행을 노래하는 글들을 그렇게 썼었더랬지만 이제는 불행을 쓰고 싶지 않다. 지금이 불행하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은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글을 쓰지 못했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글을 잘써야겠다는 압박감도 있다. 여자친구가 보고, 여자친구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을 하니 그렇다. 여자친구가 나에게 빠진 이유가 내 글 때문이기에 더욱 그렇다. 글을 써야만할 운명이라고 위에 써놨다. 내가 잘하는 유일한 창작활동이 글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여자친구에게 잘보이기 위해 더욱 그렇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일단 써보기로 했다.


 생활이 망가진다. 운동을 다시 나가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피폐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며칠 전에는 독서 모임을 나갔는데 전혀 재밌지 않았다. 음악도 그다지 찾아듣지 않는다. 책과 영화는 더욱 그렇다. 힘들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챙기며 기분을 업시켜야하는 것이 맞는데,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오늘은 그래서 기분을 업시키려는 것이다. 지금 내 스피커에서는 Roberta Flack과 Donny Hathaway의 Closer I Get to You가 나온다. 내가 지원이에게 추천했고, 지원이가 무척 좋아했던 노래다. 나는 이렇게 지원이에게 음악을 추천해줄 때가 좋다. 최근은 아니지만 MInnie Ripperton의 Inside My Love를 들려줬을 때는 정말 죽여줬다. 방금 Closer I Get to You가 끝났는데, 다시 틀어야겠다. 끝나고 나면 Inside My Love를 들어야지.


 그러니까 이렇게 의식적으로 기분을 풀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 단점은 자꾸 골몰한다는 것이다. 안좋은 상황에 놓이면 자꾸 그것을 곱씹고 내 상태를 악화시킨다.  내가 글을 써야 할 운명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나를 평생 조심히, 잘 간수해야한다는 뜻이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는 뜻이다. 이 최민성의 기분 맞춰주는데 평생을 투자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음악이 있다. 책이 있고, 영화도 있다. 키보드도 있으니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지원이, 지원이가 있다. 전혀 어려울 게 없는 것이다. 나는 그저, 글을 쓰면 된다. 이제 Inside My Love를 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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