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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Nov 29. 2020

취준 후기

 내가 일하게 된 회사의 이름을 포탈 사이트 검색창에 적으니 "xxx 서포터즈 n기" 같은 글들이 블로그에 많이도 올라와있다. 글들을 넘기다가, 그 중 한 글의 글쓴이가 "인턴이라도 시켜주세요 ㅠㅠ" 라고 적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아, 내가 해냈구나.


 합격한 당일 친구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지만, 동시에 어안이 벙벙함과 허탈감이 뒤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대학 합격 때도, 좋은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합격 화면 창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뭐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인생의 한줄기 황홀한 순간은 아니었다. 대신 대입 생활에서 느낀 내 빛나는 순간은 수능 당일 날이다. 가장 잘했기에, 가장 잘하고 싶었던 수학을 100점 맞았던 것이 기억 난다. 나는 하나만 틀려도 불만족스러웠을 수준에 올라가있어, 집에가는 길에 "혹시 내가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떨었던 것이다. 다른 100점짜리 과목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고 정말 원하던 것은 수학 100점이었다. 그것을 얻어낼 때의 쾌감. 해냈다는 것에 대한 자신에게 주는 칭찬, 긴 고행에 대한 보상... 등등 그렇게 나는 인생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내가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내가 취직을 했다는 것이다. 수학을 100점 맞아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토익이 높아봐야, 결국 우리는 결과를 향해 달린다. 결과를, 성과를 달성한 후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들을 즐거이 누린다. 그런데,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회사에 붙고 난 후 내 생일까지 겹쳤지만, 조금 우울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너무 좋은 일이다.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왜 난 이런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자빠져있나?


 그건 내가 결과가 중요치 않은 환경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항상, "환경이 좋으니,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라고 많이들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취직을 1년 반 가까이 준비하며 생활금 걱정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터뜨린 샴페인의 병 수가 두자릿수다. 뭐그리 축하할게 많았는지.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노동에서 가치를 찾고 기쁨과 만족을 느끼기는 앞으로도 쉽지않을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답은 아무래도 예술 아닐까? 하고 싶은 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회사를 다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뭔가를 원한다. 나만의 앨범이 리드머 평점 4.5를 받는 것이랄까 라던지의 것 말이다.


 글을 쓰는 것도 매한가지다. 누구도 공감할 성질의 것이 아닌 이런 글을 오늘도 나는 쓴다. 이것을 통해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본다. 돌파구를 찾았으면 벌써 진작에 나갔겠지만, 모르겠으니 자꾸 글을 끄적이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의 사회적 위신이나 재정적인 여러가지 문제들을 위해서 나는 회사를 다녀야하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만족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다른 쪽에서 내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게, 이번 취준의 후기다. 참으로 기괴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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