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워홀 이야기

#1 우리는 모든 걸 너무 쉽게 본거야

by 욕심많은민지

2018년 11월 25일.


두 달간의 필리핀 어학연수를 마치고 호주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우리의 목표는 이 곳에서 돈을 잔뜩 모아 세계일주를 떠나는 것!


두려움보다는 모든지 다 잘 될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도착한 이 곳은

덥고 습했던 세부와는 달리 공기마저 산뜻했다.


공항에서 시티로 가는 열차 안, 브리즈번에서의 첫 일몰.


도착하자마자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자기, '될놈될'이라는 단어 알아?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말.

난 여태까지 내가 원하는 바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어.

난 나를 뭘 해도 될 사람이라고 생각해. 우린 잘 될 거야."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세컨드 비자를 따자는 계획을 세운 우리.

우리의 기준은 딱 두 가지였다.

1. 워킹비자를 딸 수 있는 것

2.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해놓고 올 수 있는 것


어떤 일이 이 두 가지에 딱 부합할 수 있는가 찾아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바로 일의 강도가 엄청나기로 유명한 농장 일.


하지만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우리가 알겠냐며 농장 일이 힘든지는 우리가 겪어봐야 아는 거다,

우리한텐 잘 맞을 수도 있는 일이라며 겁도 없이 농장행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농장일을 만만하게 봤던 우리가 우습다.

그 당시엔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고생길에 대한 걱정도, 우려도 없었고 심지어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에 설레기까지 했다. 그저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될 모험이 설렜던 거다.


어쨌든 2018년 11월의 우리는 곧바로 번다버그라는 작은 농촌마을로 향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일하게 됐던 농장은 관리자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번다버그에 처음 왔을 땐 TFN(Tax file number) 발급도 도와주지, 은행계좌 개설하는 것도 도와주지 심지어 마트까지 픽업까지 무료로 도와주기에

우리끼리 해결했다면 조금은 복잡했을 일들을 편하게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

숙소도 마찬가지로 (지금 생각하면 꽤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당시에는) 컨테이너 한 칸에 마련된 작은 공간이지만 화장실도 딸려있고, 에어컨도 있으니 이만하면 지내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며칠 쉬면서 마음 좀 가다듬고 일만 고정적으로 할 수 있으면 금방 자리 잡겠다는 기대도 엄청났고.


아무래도 두 사람 다 한국에서의 직업을 제외하곤 새로운 일을 처음 해보는 거라 실망하지 않기 위해 행복 회로를 미친 듯이 돌렸던 것 같다.


하지만 행복 회로를 돌리던 나날도 농장에 투입되는 첫 날로 끝이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농장 차에 오른 우리.

40분쯤 달렸을까? 우릴 태우고 한참을 달리던 차가 허허벌판에 섰다. 멀리 보니 초록색 잎들이 우거진 밭이 보였다. 능숙하게 모자와 연장을 챙긴 후 작업화로 갈아 신는 워커들 사이에서 얼만 탔다.

준비를 마치고 밭으로 향하는 그들을 따라 우리도 어영부영 밭으로 향했다.


일을 나갔던 첫날 일기를 보면 온통 쌍욕이 적혀있다.

쌍시옷으로 시작해서 쌍시옷으로 끝나는 일기를 써본 적은 내 평생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힘들었단 뜻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보고 달려들었던 거다.


애증의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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