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워홀 이야기

#2 인생이란 건 역시 쉽지가 않구나

by 욕심많은민지

우리의 첫 작물은 토마토였다. 토마토 농장의 픽커(picker)로서 하는 일은 꽤 간단했다.

딱 페인트통만 한 사이즈의 바구니에 토마토를 따서 담고 토마토 줄기를 끊어서 줄기 사이에

내 번호가 적힌 작은 팻말을 꽂아두면 그걸로 끝이다.


처음에는 토마토 밭이 엄청 넓으니 딸 것도 많은데 토마토를 따서 바구니를 가득 채우기만 하면

한 바구니당 1.8불을 받을 수 있으니 예쁜거나 잘 골라보기로 하고 천천히 따보자!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내가 쉽게 갈 수 있도록 가만히 두는가?


이론적으로는 상당히 쉬울 것만 같았는데 토마토 밭 한 줄을 두 사람이 양쪽에서 따다 보니

옆 사람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면 그 기다란 토마토 밭 한 줄에서 토마토를 몇 개 따 보지도 못하고

나오게 되더라.


그뿐이랴?


속도 경쟁에 치이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토마토를 급하게 담다 보면 불량이 섞이기 마련이고

불량이 섞여 나온 바구니는 제 값을 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첫날 얼마를 벌었을까?


처음 토마토 밭으로 출근했던 날 나와 성수는 10 바켓도 못 땄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참아가며 토마토 전쟁에 참전했지만 오전 내내 일하고 20불도 못 번 셈이다.


철저한 능력위주의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한낱 애송이일 뿐이었던 것이다.


첫 날을 마무리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괜찮다"라며 애써 서로를 위로했지만, 입가에 맴도는 쓴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뭐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건 없다고. 여기서도 다 잘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나의 자신감은 단 하루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20181205_182055-01.jpeg 안쓰러웠던 그 때 그 모습

하지만 당장에 도망치긴 싫었다. 어떻게든 이 곳에서 살아남아 주에 1000불 이상을 번다는 탑픽커(Top picker)가 되고 싶었다.

농장에 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얼굴엔 기미와 주근깨가 잔뜩 꼈고, 허리와 무릎이 아작 난 듯이 아팠지만

알량한 오기를 떨쳐버리지 못한 나는 당장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권하는 성수의 의견을 애써 무시하며 이 악물고 일을 나갔다. (성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토마토를 시작으로 우리는 다른 채소 / 과일 밭으로도 왕왕 투입되었는데, 한동안은나는 캡시컴(피망) 밭, 성수는 수박 밭으로 작물 배정을 받아 일을 나갔다.


피망을 따는 작업은 개인 간의 경쟁이 아니라 한 팀이 작업을 함께하는 구조였는데, 목욕탕의 이벤트 탕 만한 사이즈의 큰 통에 피망을 채우고 총 몇 통을 채웠는지에 따라 그 날의 일당이 결정되고 그 일당을 팀원들끼리 나눠서 지급받는 방식이었다.

경쟁이 없으니 일이 좀 더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급여 면에서는 토마토를 딸 때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내가 뒤쳐지면 내 몫 까지 누군가가 더 고생을 해야 하기에 단 1초도 쉬지 못한 채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피망은 그늘도 없는 뜨거운 땡볕 아래서 하루 종일 허리를 수직으로 수그리고 따야 하는 일이라 허리는 완전히 맛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나중에는 아픈 허리를 수그리는 대신 무릎을 꿇고 작업을 해 무릎에 늘상 멍을 달고 살았다.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최악의 작물을 꼽으라면 피망을 꼽을 정도로 일이 힘들었었다.

차라리 토마토가 백 배, 천 배가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20181219_162703-01.jpeg 내 무릎...


성수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수가 수박밭에서 배정받은 일은 밭에서 트럭까지 수박을 깨지지 않게 옮기는 단체 작업이었다. 며칠간 힘들다는 이야기 없이 잘 다니는 것 같았는데 하루는 얼굴이 심하게 그을려왔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일을 하는 중간에 모자가 날아갔는데 단체 작업이다 보니 갑자기 대형을 이탈할 수 없어서 모자 없이 수박을 날랐단다.

쉬는 시간이 되고 나서야 모자를 찾으러 갈 수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날아간 건지 찾을 수가 없어 일을 마칠 때까지 모자 없이 그 직사광선을 오롯이 다 맞았다고 했다.

강하기로 유명한 호주 자외선을 종일 맞았으니 얼굴이 성할 리가 없었다.

허물이 벗겨져 한동안은 얼룩덜룩한 흉을 달고 살았다.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속상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농장에서의 2개월이 전부 힘들었던 건 아니다.


1개월 차에 갖은 고생을 다 했다면 2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는 급여도, 일도 전보다 훨씬 좋은 시급제 농장에 투입이 됐었다.

아시아인 대부분이 있다는 망고 알레르기가 없었던 성수는 망고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망고는 시즌제 작물이라 망고 시즌 동안 반짝 일을 하는데 시즌이 짧은 대신 하루 업무량이 많아서 돈이 꽤 벌렸다. 물론 업무시간이 긴 만큼 수입도 좋았고.

성수가 망고 농장에 투입됐을 무렵, 나 역시도 번다버그에 몇 없는 시급제 고구마 농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피망에 비하면 업무강도도 괜찮았고 고구마 농장에는 오전에만 잠깐 밭에서 일하고 오후 내내 무려 실내에서 일을 했다. 좋은 조건에 괜찮은 급여를 받으며 일을 했다.


그러던 와중 우리에게 차가 생겼다.

둘 다 안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니 슬슬 여가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질러버린 것이다!

200만 원짜리 싸구려 중고차였지만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기분에 행복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확실히 차가 있으니 삶도 윤택해졌다.

휴무를 받은 날이면 근교 바다마을에 가서 바람도 쐬다오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차를 타고 나가서 사 먹을 수도 있었다. 처음 토마토 밭에 투입됐을 때 절망스럽다 여기던 내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행복의 길이는 불행의 길이에 비해 턱없이 짧은 것일까?


이제 막 윤택한 삶을 즐겨보기로 다짐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쳤다.

.. 성수가 망고 농장에서 잘려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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