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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Jan 03. 2024

극과 극인 양가(새해 첫날)

새해라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왔다.


시댁은 언제나 고요하고 적막하다.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아직 두 분이 정정하셔서 업무 현장에서 일을 하신다는 그 자체가 내게는 존경스럽다. 평상시에 두 분은 우리를 집으로 오라 가라는 말씀이 거의 없으시다. 이번에도 조용했지만 친정에만 갈 수 없어 미리 전날저녁에 떡국 먹으러 다녀왔다. 왜냐면 양쪽에 공평해야 하니까. 신정에 벌써 떡국 두 그릇을 먹었다.



양가 모두 설날을 구정으로 쇠는 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새해가 밝았다는 핑계로 신정에도 꼭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떡국을 먹기를 바라신다. 벌써 몇 년째인지.


친정 행사가 시댁 행사에 비해 셀 수 없이 많은 편이다. 형제 많은 우리 집에 비해 시댁은 형제뿐이고 시아주버님이 아직 미혼이라 거의 모이는 날은 명절과 생일로 손에 꼽는다. 


친정은 아버지가 가족이 모이는 것을 좋아한다. 소일거리로 작은 텃밭 농사를 짓는데도 주말이면 도움을 요청한다. 마늘 심어야 한다, 고추 심어야 한다, 배추 심어야 한다, 감자, 고구마 심어야 한다 등등 끊임없이 흩어져사는 아들, 딸을 불러 모은다. 


공휴일과 연휴가 많은 달에는 미리 모이자는 연락이 오는데 그때마다 남편의 눈치가 보인다. 벌써 몇십 년을 살았은데 무슨 눈치를 보며 사냐고 기죽지 말고 살라며 격려해 준다. 


우리 친정식구들은 술을 좋아하는 오빠들 덕분에 '부어라~~ 마셔라~~'  밤새우는지 모르고 노는데 그 분위기를 남편이 좋아해서 다행이다. 반면 시댁은 고요하고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큰 소리가 담벼락으로 나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얌전하시다. 게다가 남편 외에는 술 한잔하자며 술 권하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긴 명절인데도 재미없어한다. 명절마다 양가의 분위기가 극과 극이어서 참 평정심을 찾기란 더 노력해야 한다.



24년 신년인 1월 1일에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 사는 작은오빠 가족만 빼고 한자리에 모였다. 문득 아빠, 엄마의 머리카락을 보니 결혼식 때 주례사가 읽어주는 성혼선언문의 말이 생각났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예"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라면 무조건 대답해야 하는 맹세가 아닐까 싶다. 당연히 부모님들도 맹세했겠지. 


어쩐지 아빠, 엄마의 검지도 희지도 않은 회색빛의 머리카락이 눈에 거슬렸다. 조금 있으면 파뿌리처럼 하얗게 될 게 분명한데 누가 먼저 하얗게 되는지 내기라도 하는 거 같았다.


부모님은 벌써 결혼 55년 차 부부로 살고 계시니 말이다. 아직 70면 채우려면 멀었다. 


우리 부부는 이제 21년 차로 점점 사랑에서 정으로 의리로 살고 있다. 






사진출처 : 언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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