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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Jan 03. 2024

아버지의 틀니

새해인 첫날부터 신년회를 하자고 또 모이라고 했다.

친정에 늦게 도착한 것은 우리 가족이었다. 이미 두 개의 큰 교자상을 펴 놓고 옹기종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지난주에도 봤을 때도 괜찮은 모습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어색했다.



옳거니,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이.



부모님들은 온 가족이 모여 시끌시끌, 북적북적 거려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아버지도 어색한 틀니를 드러내고 연신 방긋방긋 웃으셨다. 말씀하실 때마다 반짝이는 그 하얀 치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주 보던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서 여쭈었더니 예전 틀니를 새것으로 교체했다며 쑥스러워하셨다. (아버지 본인도 어색한지 혀가 자꾸 틀니를 향한다고 했다)


한동안 치과에 진료 다니신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어도 안부를 묻지 못했다. 다행히 얼마 고생안하고 쉽게 이제야 끝났다며 빙그레 웃으셨다. 아버지의 얼굴빛깔에 비해 유난히 하얗게 반짝이는 틀니가 눈에 띄었다. 내 눈에 익숙하지 않아서겠지만 새하얗게 빛나도 좋다니 말을 삼켰다. 아무리 보고 또봐도 쪼글쪼글하게 패인 주름살과 어울리지 않았다.



누구나 나이 들면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식사도 잘하시고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세월이 더 안타까웠다. 나이 들면 건강도 한 번에 와장창 무너진다더니 23년인 작년에 아버지는 이곳저곳에 건강 적신호가 켜졌었다.  그동안 엄마 뒷바라지하느라 아플 틈도 없으셨던 것처럼 아주 센 한 방이었다.


그동안 아버지가 건강하셔서 엄마를 보호해 주고 요양해 주셨는데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사진출처 언플래쉬




오랜만에 한자리에 손자들과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모이니 연신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었다. 다른 집에 비해 참 자주 모이는 극성맞은 가족들 때문에 올케들이 힘들고 사위들이 힘든 집은 분명했다. 게다가 손주들도 이제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원 플러스 원처럼 세트로 끌려다녀하니 아우성치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려온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 또 가요?'하며 놀라 물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모두 아버지의 극성 덕분에 자주 만나서 놀아서 그런지 사촌들끼리도 꽤 친한 편이다.

살아계실 때라도 그렇게 좋아하는 손주들 얼굴을 한없이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물질적으로 다른 집처럼 후하게 해드리지는 못해도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는 게 효도가 아닌가 싶다.


얼마나 좋으셨는지 매일 침대에 누워만 계시던 분들이 은갈치 머리카락을 하고 방긋 웃으며 소파에 앉아계셨다.


한 해가 다르게 점점 쇠약해지고 자식들의 손길이 필요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자신감이 사라지셨는지 운전면허 갱신하는 데에도 재검이 나올까 걱정이 태산이다.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그러고 보니 눈, 치아, 다리, 허리, 목, 신장 등 어디 성한 곳이 없는 나약한 모습이다. 몸 안의 수분이 자꾸 증발하는지 눈에 띄게 쪼글쪼글해지는 두 분의 얼굴 주름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가 지구상에 있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고 온전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분들이다. 평생 동안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었던 패기는 온데간데없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는데 바쁘다며 안 찾아뵙는 게 예의가 아니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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