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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Jan 10. 2024

이상한 어른들이 아이를 불쌍하게 만든다

다가오는 말들 은유작가




해피빈에 콩이 모이면 많은 블로거들이 기부를 한다.  나 또한 소멸되는 것이 아까워 열심히 기부를 한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발행할 때마다 콩을 하나씩 주는데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부 코너를 둘러보면 노인들보다는 아이들, 아픈 아이들에 마음이 더 끌린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는 아이들을 돌본다는 사회복지 단체의 홍보문구에 나도 모르게 '기부하기' 버튼을 클릭하게 된다.


아직 사회는 살만한 세상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저녁마다 나오는 뉴스에 친엄마의 폭력, 새아빠의 폭력에 대한 가정폭력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가족이 안전한 울타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미 진즉에 깨져버렸다.




우리는 부모 없이 자라는 게
가여워서가 아니라
부모 없이 자랐다는 말을 듣고
살아가야 할 아이가 애처로워서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부모인가, 돌봄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오직 부모에게만 돌봄이 전가되어 있고,
그것이 아이에게도
비극을 초래하는 것 같다.

                            _다가오는 말들 p.160




아직도 우리나라는 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올바르게 돌봄을 받고 자란다고 생각한다.'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제대로 큰다'라는 이상한 믿음이 대대손손 물려 내려오고 있다. 그래선지 조손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분류한다.


부모가 다 있어야 정상이라고 기준을 삼아놓고 그렇지 않은 가정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스스로 아이들에게 거리를 두게 강요한다. 다 정상처럼 보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불안하고 체벌받고 학대받고 사는 아이들이 많은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유독 정상 가족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개인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가족 내부의 풍경은 생각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삭막하고 각자 맡은 일을 하느라 여유는 없다.ㅠ각각 밥하고 돈 벌고 공부하는 도구적 존재로서 서로를 구실 삼아 정상가족인처럼 살아간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 드는 부모라는 권력


                           _이상한 정상가족 p.10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미안해졌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부모라는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는지 공부라는 잣대로 언어폭력을 일삼지 않았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내 기분으로 아이에게 평생 동안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을 남기는 것은 어김없이 가족이었다.



'너에게 들어가는 학원비가 얼마인 줄 아느냐',

'1등 못하면 네가 가장 좋아는 것을 못 하게 하겠다',

'성적 떨어지면 핸드폰 압수다',

'공부 못하면 힘든 일 하면서 살아야 한다'

(부모들이 가장 편할거라 믿는 화이트칼라는

좋아하고 전문 엔지니어를 하찮게 대한다)



더 많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부로라는 이유로 이런 협박을 한 적이 있는가.

아이들은 학습 노동을 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숨죽여 고통은 깊어간다.

친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해서 정서가 안정되는 것도 아니고 절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부모와 산다고 다 행복하지 않듯이
부모가 없다고 꼭 불행하지 않다.


                       _다가오는 말들 p.162



아이들은 순수하다. 먼저 또래 친구를 이상 싸우고 떠들고 핸드폰 카톡에 정신이 팔리는 그저 또래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어른들처럼 선입견을 갖고 만나지 않는다.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도 어른이다. 어쩌면 부모일 수도 있다. 부모의 부재를 무조건 동정하거나 차별하는 시선만 아니면 아이가 기죽을 일도, 거짓으로 둘러댈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동등하다.  부모 밑에서 자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서부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상한 사회가 빨리 달라져야 한다. 이력서에도 가족관계를 중시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부터 은밀하게 가족관계에 조사하는 것부터 하루빨리 사라지면 좋겠다.


어릴 때 국민학교 다닐 때는 부모의 학벌까지 기록하고 손까지 들게 했다. 그 당시는 고졸, 대졸이 다였지만 요즘은 유학 출신도 많으니 학력이 높을수록 아이들을 더 잘 키운다는 보장이 있는 건가 궁금하다.


어른이라고 다 부모는 아니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고 돌봄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참 현실은 이상한 제도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거 같다.







나는 어떤 부모인가?

나는 어떤 가족을 꿈꾸었는가?

나는 어떤 엄마인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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