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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Jan 11. 2024

그만 포기하는 게 답일까?

남편은 아이가 없이도 충분히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고 사정사정하며 빌었다.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빈대떡 뒤집듯 홀딱 뒤집으니 남편의 표정은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얼굴로 붉어져 있었다. 시부모님께서 손주를 손꼽아 기다리는 데 상처를 드릴 수 없었다. 둘이서 행복하자고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모성이 있는 여성에게는 임신의 기다림이 본능과도 같았다.


몇 년 동안 아이를 기다리며 보냈던 시간과 노력이 한 편의 영화처럼 슬며시 지나갔다. 누가 뭐래도 오뚝이처럼 금세 충전되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견뎌냈다. 의지가 강하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는 점점 희미해지고 멀어져 갔다. 그동안 남편과 함께 누렸던 행복한 시간보다 조마조마하며 숨죽여 기다린 시간과 참았던 날들만 떠올라 씁쓸했다. 주변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엎치락뒤치락 밤잠 지새웠던 날들만 잊히지도 않고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결혼하기 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다가 치약 짜는 사소한 것부터 맞추며 살아야 하는 게 현실 부부이고 늘 싸움이었다. ‘네가 맞네, 내가 맞네‘, 나 위주로 강조하며 서로 잘난 척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울분에 찬 사자처럼 으르렁거렸고 할퀴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다보니 기뻐서 날뛰었던 날들보다 억울하고 분해서 펑펑 울었던 날이 많았다. 그만 우리끼리만 보란 듯이 살자는 말에 단순하게도 그 쓰라린 아픔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어찌 되었건 결혼은 내 선택이었기에 지금의 고난과 불행한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출처 Unsplash



누가 시킨 일이라면 그 사람을 마구 탓했을 텐데. 참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기란 너무나 가혹했다. 힘들고 지친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결국엔 우리 부부는 아이를 그냥 그만 포기하자고 했다. 이렇게 말해놓고도 내려놓지 못했던 돌덩이가 걸려있었는데 이제 그 돌을 꺼내야만 내가 살 수 있었다. 갈수록 우리 부부는 눈에 띄게 말수도 줄었고, 농담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를 살피고 돌볼 에너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언제 먹었는지 모르게 죽지 않으려고 먹는 사람처럼 한 지붕 아래 살면서 하나도 즐겁고 행복하지 않았다.


인공 수정과 시험관 아기 시술은 저 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생각했었다, 우리 부부는 안 생기는 애를 억지로 만든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오죽했으면 인위적으로 병원에서 애를 만드냐며 그들을 방관했었다. 현대 의학의 힘까지 동원해서 아기를 낳을 생각조차 없었다. 긴 시간이 흘러서야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서 배란일을 받아서 자연배란 요법을 시도하는 일이었다. 사람마다 배란일이 다르다면서 병원에서 잡아주는 배란일과 시간에 맞춰서 부부관계를 하면 끝이었다. 그 방법이 우리에게 안 맞았는지 여러 번 실패하면서 다음 단계를 말하는 의사의 말에 속이 상했다.


원인도 말하지 않고 시간만 보냈는데 이 방법으로 임신이 어려우니 다음 코스로 갈아타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벌써 이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1년이 넘었다. 믿고 기대했는데 전문적으로 임신을 돕는 난임병원으로 전원할 수밖에 없었다. 난임병원에서 산전 검사를 하고 나팔관 사진도 찍고 조금 더 전문적인 검사를 받았다. 둘 다 몸에 이상이 없으니 인공수정을 시도하자고 했다. 인공수정은 자연배란 시기에 남편의 정액을 채취하여 자궁내막에 채취한 정자를 삽입하는 방법이다. 다행히 과배란 유도를 하지 않고, 난포 터지는 시기에 남편과 함께 병원에 방문하면 끝이다.



출처 Unsplash


인공수정할 때 남편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액채취였다. 집에서 정액을 받아와도 되고 병원에 방문해서 채취해도 되는데 다행히 남편은 후자를 택했다. 인공수정 날짜가 다가오면 남편도 긴장되는지 은근히 날짜를 계속 확인했다. 한번은 인공수정하는 날에 회식이 잡혀서 병원에 못 갔던 날이 있었다. 본인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 후로 예민해져 여러 차례 남편을 들들 볶았다.



우리 남편만 내 속을 썩이고 서운하게 하는 줄 알았는데 난임병원에서 만났던 다른 남편들의 모습도 떠올려보니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 도살장에 끌려온 가축들처럼 마지못해 끌려와 있는 모습들이 어딘지 모르게 짠했다.


아기를 혼자 낳는 게 아닌데 왜 저렇게 남편들이 비협조적인지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뿐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수치스럽고 더 차가운 수술대 위에 여자로서의 몸보다는 아이를 갖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자존심 따위는 던져버리고 아기 낳을 생각뿐이었다. 부부가 합심해서 노력해도 어려운 일을 여자 혼자서 날 띈다고 될 일도 아니었기에 점점 지쳐가도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마저도 도와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살아서 뭐 하나, 숨이 안 쉬어지고 불행하단 생각에 빠져있을 때 남편의 진심이 보였다. “난 너만 있으면 돼.”라고 “아기는 필요 없어“라고 사정하며 매달렸다. 그동안 아기를 낳지 못하면 남편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속내를 꽁꽁 감추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존심을 지켰다. 당신이랑 살고 싶어서 포기하겠다고 남편의 말에 잠시 동의했었지만, 아기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아있었다.


임신 잘 되는 비법처럼 몸을 만들기 위해 먹었던 엽산제와 다른 영양제와 배란테스트기를 버렸다. 손발이 차서 임신이 안된다는 말에 수지침도 배워서 정성을 다해 쑥뜸을 떴다. 쑥뜸 뜨고 외출하면 냄새난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텼는데 몽땅 버렸다. 즉흥적인 마음으로 남편에게 화가 많이 나서 감정적으로 분풀이하면서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남편은 나를 못 미더워했고 안타까워했다. 위태롭게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내가 그것마저 못 하게 말리면 죽어버릴까 봐 맘껏 분풀이하게 내버려 뒀다고 했다. 차라리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입양을 하는 것도 좋겠다면 일단 쉬기로 했다. 병원에 안 간다고 쉬는 게 아니라 마음을 쉬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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